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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킴 May 18. 2024

책 선택에 실패하지 않는 법(2)

2. 공부하는 작가를 찾아라.

 서점에 가보라.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빛 밝은 조명 아래 진열된 베스트셀러다. 각 분야별로 나눠진 구간에 잘 팔리는 책, 화제의 책, 신간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 주위에만 기웃거린다면 정말로 좋은 작가들을 만나기는 힘들다. 자기 분야에 성취를 이룬 자들은 화려한 진열대가 아닌 책장 구석지고 후미진 곳에 숨어있다. 이들을 발굴해 내고 읽어내는 눈이 필요하다. 서점에 갈 때는 안경을 끼고 렌즈를 껴라. 라식 수술을 해서라도 눈을 밝히자. 숨어있는 가치 있는 책들을 찾아내야 독서가 깊어진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평생을 공부하고 연구에 매진한 사람들이 있다. 지적 호기심과 앎의 즐거움을 생의 동력으로 삼는 학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글은 정말 값지고 보배롭다. 그들의 글에서는 면학의 냄새가 난다. 그들은 하나의 주제에 인생을 건다. 도를 닦는 스님처럼 하나의 화두에 천착하여 끝없이 파고들어 간다. 광맥을 찾는 광부처럼 자신만의 갱도를 파는 것이다. 험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도, 도를 구하는 구도자처럼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마침내 그들은 그 끝에서 누구도 이르지 못했던 지식과 지혜에 다다른다.     


 이런 사람들이 쓴 책들을 보라. 공부를 진하게 한 사람의 책은 농도가 높다. 농도 높은 책은 천천히 희석해서 읽어야 한다. 읽고 바로바로 넘기기보다는, 생각을 진중하게 하면서 살살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글에는 대량의 사고가 담겨있다. 이 대량의 사고를 한 번에 흡수하면 탈 난다. 빨리 읽으면 체하고 배탈이 난다. 책이란 게, 글이란 게 글쓴이의 경험과 지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큰 학자의 책은 내용적으로 부피가 크고 중량이 무겁다. 절대 빠르게 읽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공부를 많이 했음에도 대중의 눈높이로 내려와 글쓰기를 하는 학자들이 간혹 있다. 그런 사람이 존재함은 독자에게는 축복이다.     

 

 그런 축복의 존재가 나에게는 국문학자 정민 교수님이다. 그는 다양한 고전들을 해석하고 풀이하여, 현시대에 필요한 지혜들을 솎아내어 우리에게 쥐어준다. 그의 책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정말로 세게 공부하여 쉽게 풀이해 냈다. 쉽지만 알차다. 이런 책을 읽을 때는 미소가 절로 번진다. 이런 책을 쓰는 분들을 보면 명예나 돈을 바라기보다는 정말로 즐거워 공부하는 케이스이다.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 공부의 동력이다. 호기심이 들면 그것이 풀릴 때까지 파고드는 집요함, 이 것이야 말로 좋은 학자이자 작가의 조건이다. 문유석 판사의 <쾌락 독서>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야간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중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관한 시간, 교수님이 처음에는 정해진 자료에 따라 강의하다가 점점 관련 연구 이야기를 신나게 하셨다. 당시 인도에 간 구법승이 혜초 외에도 많았는데 그들이 얼마나 살아서 돌아왔는지가 궁금해졌단다. 그래서 온갖 고문헌을 추적하여 구법승들의 생환율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쾌락독서>, 문유석     


 문유석 판사는 강의를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 아름답다’ 그리고, ‘아, 그런데 쓸데없다’. 문유석 판사의 말처럼 구법승들의 생환율은 우리에게 하등 쓸모없다. 그러나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님에게는 무엇보다도 즐거운 탐구의 영역이었으리라. 이런 즐거움이야 말로 공부를 지속하게 만들고 깊이 있게 만드는 원천이다. 이런 즐거움으로 자신의 분야를 파고드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얻은 바를 기꺼이 나눌 때 우리 사회의 지적 토양은 비옥해진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다시 말한다. 책을 고를 때 공부하는 작가를 찾아라. 작가가 공부하며 터득한 지식과 즐거움을 같이 맛보아라. 그런 글을 보면 시야가 커지고, 관점이 늘어난다. 나의 독서 생활에도 그런 작가가 무수히 많았다. 그중에서 내 세상을 넓게 만들어준 대가들을 몇 명 추천하겠다.     

인류 발전을 독창적인 관점으로 조망하고 싶다면 유발 하라리와 재레드 다이아몬드

언어의 구조와 미국의 본모습을 알고 싶다면 노암 촘스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문명의 병폐를 알고 싶으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

창의성의 원리를 알고 싶다면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세상과 인간의 원형인 신화를 알고 싶다면 조지프 캠벨     


 세상에 대가는 많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책을 고르자. 내 눈이 뜨이고. 세상이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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