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공식웹사이트/파리올림픽 현수막이 걸린 개선문
예상과는 달리 파리 올림픽이 열리는 파리에서는 연일 승전보가 들려오고 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메달리스트들의 서사는 약속한 듯 감동의 도가니이다. 단체전 10연패를 이룬 여자 양궁 대표팀에 이어 대한민국의 역대 100번째 금메달을 최연소로 따낸 여고생까지 등장하면서 올림픽 중계는 정규 뉴스 시간마저 밀어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일본 국적 대신 한국 국적을 택한 유도선수의 값진 메달과 겸손한 천재의 사지가 타들어 가는 수영 메달까지 연이어 나오면서 국민 대다수는 어느 인기 프로그램이 결방되어도 불평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초반 돌풍이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의 현시점 메달 순위는 세계 5위이다. 이런 상황이 폐막하는 날까지 이어진다면야 너무나 좋겠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어떤 날은 메달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에 따른 우리의 순위도 위쪽으로 오르기보다는 아래쪽 어딘가의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동계 하계를 합쳐 스무 번 가까운 올림픽을 지켜본 나의 경험 예측으로도 그렇지만 최대한의 주관적 긍정을 내비치는 전문가들의 예상도 그렇다.
사흘 동안 나온 다섯 개의 금메달을 산술적으로 남은 날을 곱하여 수십 개의 금메달을 바라던 어린 날도 있었지만, 그런 결과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어른이 되기도 전에 깨달았다. 메달을 따더라도 금메달이 아니면 실망하고 대한민국의 최종 순위가 세계 10위를 넘나들어도 더 높지 않음을 아쉬워하던 때 나의 올림픽엔 약간의 기쁨과 큰 실망감으로 채워졌다. 열 손가락이 남을 정도로 몇 개 되지 않는 금메달의 순간만을 기다리던 때에 올림픽 정신이나 아름다운 패배가 보일 리 없었다.
그렇지만 올림픽을 가득 채운 대부분의 선수는 금메달과 관련이 없는 선수들이다. 그들은 최종 챔피언은 아니지만 결과와는 상관없이 뜨겁게 도전했고 활짝 웃는다. 오열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러한 장면도 그에게 또 우리에게 올림픽을 완성하는 과정이고 부분이 된다.
조금 더 자란 나의 올림픽은 볼거리가 풍성하다. 순위권과는 관련 없지만 첫 출전을 하는 선수들의 도전이 보이고 화려했던 전성기를 마무리하는 은퇴 선수들의 시간이 보인다. 분쟁 중인 나라들의 불편함도 보이지만 그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잠시간의 평화가 보인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은 여전히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이지만 백 년 넘는 시간의 올림픽의 역사 속에서 그것은 너무나도 작은 부분일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시간도 올림픽을 많이 닮았다. 상을 타고 큰 성취를 이루는 주목 받는 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렇지 않다. 순간으로 보면 나의 존재가 누구보다 커 보일 때도 있었지만 긴 시간으로 보면 그것은 잠시일 뿐 이런 날 저런 날들이 모여 적당한 자리에 내가 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슬픈 날도 있었지만, 그 또한 내 삶을 채우는 순간일 뿐 큰 시간 속에서 작은 부분일 뿐이다.
내 삶에서 금메달의 순간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을 필요도 또 다른 금메달을 목매고 쫓을 필요도 없지만 잠시 패배의 시간에도 의미를 둘 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파리에서 올림픽의 시간이 흘러간다. 금메달의 환희에 가려진 진한 배움들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