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승준 Oct 28. 2024

성장통

©Pexels/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생후 60일을 지나고 있는 햇살이는 신장 63cm, 체중 6.3kg을 기록하고 있다. 하루 평균 40g 일주일 평균 1cm가 넘는 성장 속도를 내 몸무게와 키로 환산하면 매일 체중 500g 매주 키는 3cm씩 자라는 것과 비슷하다. 하루하루가 새로울 만큼 빠르게 자라는 아기는 급격한 성장 속도를 겪어내느라 밤마다 울고 매 순간 아프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먹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자기 몸무게의 15%를 24시간 안에 소화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상태로 환산하면 4시간에 한 번씩 2l 우유를 먹어 치워야 하는 것인데 나름 대식가 자부하는 나로서도 며칠 지나지 않아 두손 두발 다 들 만큼 굉장한 일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먹고 싸고 울고 누워만 있는 것 같은 아기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스스로에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중이다. 아비로서 다른 집 아이보다 조금 더 빨리 자라게 하고 싶고, 밤마다 잠 안 자고 우는 녀석이 '왜 이러나?' 싶을 때도 있지만 크느라 애쓰는 햇살이의 노력을 숫자로 생각해 보니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내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는 과거 중에서 제일 많이 키가 크고 자랐던 열서너 살 때를 생각하면 무릎이며 가슴이며 팔뚝까지 이유 없이 뭉치고 아프곤 했다. 어른들은 '성장통'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이곳저곳이 당장 아픈 내게 그런 막연한 단어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언제까지인지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도 모르는 통증들을 견디는 것은 키가 자라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에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못 되었다. 짜증도 부리고 과장된 엄살도 표현했던 것 같다. 그나마 그때의 난 말도 할 수 있고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말도 할 수 없고 이렇다 할 표현 방법도 모르는 햇살이는 그런 나보다 몇 배가 자라고 있는 중이라 훨씬 아프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답답할 것이다.


‘성장통' 이야기하며 내게 위로를 건네던 어른들처럼 나 또한 아기를 안고 "괜찮아! 자라느라고 힘들지? 애쓰네.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게 위로가 되거나 납득이 될 리도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시간을 이렇게 빠른 성장 속도를 견뎌내야 하는지 상상도 못 할 아이에게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아프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쑤욱 자라나서 몸도 커지고 힘도 세졌었다는 말을 해 주고 싶지만, 전달할 방법도 없고 전달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 녀석에게 곧바로 믿음직한 위로가 될 리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40년 조금 넘게 살아 본 내가 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도 아픔은 늘 성장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성장하기 위해 꼭 아플 필요는 없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어른들의 '성장통'에 대한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조금 더 살아보니 나도 동의하게 되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던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성장통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청년의 아픔을 무책임하게 당연시하는 폭력적 제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나도 내 아들에게 '아프니까 갓난아기야'라고 단정 지어서 매몰차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픈 만큼 자라고 있다는 위로의 말은 어떻게든 전하고 싶다. 바람 한 점 만나지 않고 자라난 온실의 화초도 있지만 숱한 비와 바람에 흔들린 들판의 꽃들은 그만큼 더 아름답다. 부모님께도 선생님께도 정말 많이 혼나면서 자랐지만, 그때마다 난 분명히 자랐다.


예의를 배웠고 도리를 배웠고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만 하는 것들을 깨달았다. 믿고 지냈던 이가 믿음을 져버리기도 했고 가까이 지내던 이와의 관계가 깨어지기도 했지만, 나의 인간관계는 그때마다 조금씩 나아졌다. 감히 확신하건대 아픔 없는 성장은 있지만 성장 없는 아픔은 없다. 내가 지나온 아픔과 상처와 슬픔 그리고 나의 장애는 매 순간 내게 성장통이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나마 사람 구실 하며 살고 있는 것은 적지 아니 찾아온 성장통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아기의 지금처럼, 나의 사춘기처럼, 내게 장애가 처음 찾아왔을 때처럼 아픈 순간에는 그것이 성장통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저 아프고 힘들기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픈 만큼 자란다.


매일 매 순간을 성장하느라 힘든 아들에게 오늘도 작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매일의 육아에 힘들어하는 세상의 모든 새내기 부모들에게도 동병상련의 박수를 보내며 아프게 자라고 있는 나와 내 아내에게도 위로를 전한다. 지금 아픈 모든 이들이 힘든 것 이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