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xels/한화이글스 페이스북
올해도 프로야구의 긴 여정이 모두 끝났다. 전통의 강호인 타이거즈는 12번째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고 시즌이 시작되기 전 꼴지 후보로까지 언급되던 라이온즈는 2위를 차지했다. 트윈스와 위즈, 베어스에 랜더스까지 올해는 5위 결정전 덕분에 10팀 중 6팀이나 가을야구를 경험했지만, 이글스는 또 한 번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특급 메이저리거인 류현진이 돌아왔고 160km를 던지는 문동주도 있었다. 홈런왕 노시환과 FA 안치홍 최은성이 있는 타선도 나쁘지 않았다. 수비도 불펜도 최근 몇 년 중 가장 짜임새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높았다. 실제 개막 이후 7경기에서는 지는 법을 잊었고 잠시 휘청이긴 했지만 그래도 포스트 시즌 막차를 타는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희망이 점점 사라지던 후반기 때엔 다시 7연승을 하면서 '역시 올해는 다르겠구나!' 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받아 든 성적표는 겨우 꼴찌를 면한 7위였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올해의 전력을 감안할 때 납득할 만한 성적표가 아니었다. 1, 2위는 아니더라도 가을 점퍼 정도는 입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특별한 강팀은 아니어도 순위표 바닥에 있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인 어느 유명 캐스터의 강연에서 나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을 질문으로 던졌다.
"이글스의 선수 구성이 제가 볼 때엔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캐스터님이 보시기에 객관적으로 이글스가 10개 팀 중 몇 위에 있는 것이 적당하다고 보세요?"
이글스와 자이언츠의 성적 관련 질문은 받지 않겠다며 너스레를 떠시던 강연자는 솔직히 "올해 이글스가 못 하긴 했지요."라며 뼈를 때리는 팩트로 답변을 시작했다.
"질문하신 분의 말씀대로 이글스의 선수 하나하나의 실력은 참 좋아요. 노력도 많이 했고 실력도 나아졌죠. 그런데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못하는 건 다른 팀도 그만큼 노력하고 그런 선수들을 데려왔다는 거예요."
너무도 정확한 지적이었다. 프로선수라면 프로팀이라면 누구나 우승을 꿈꾸면서 노력한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나아졌다면 다른 팀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작년에 우승했으니, 올해는 좀 쉬어가야지!'라고 생각하는 팀도 없을 것이고, '우리는 약팀이니 적당히만 이겨봅시다.'라고 생각하는 팀도 없다.
모두가 노력하고 실력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이글스만 나아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7위가 된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7위이기 때문에 노력도 안 하고 실력도 형편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 팀이 6팀 있었을 뿐이다.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차를 타고 있을 때 창문 밖의 더 빠른 차를 보면 내가 타고 있는 차가 뒤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너무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 차는 분명 빠르게 달리고 있지만 다른 차가 더 빨리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차는 느리게 보이지만 나름 최선을 향해 목적지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이글스는 내년 시즌에 다시 달리겠지만 순위표에 어느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당연히 올해보다 더 나아지고 싶고 우승도 하고 싶겠지만 그건 팀의 노력만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더 많이 노력한 팀이 있다면 노력과 실력의 크기만큼 순위가 붙여질 것이다.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최선을 다했다면 7위이든 10위이든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의 다른 결과로 여겨야 한다. 다른 차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해서 엑셀러레이터를 무작정 끝까지 밟을 필요는 없다. 나는 내가 가야 할 목적지에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속력으로 달려가면 된다.
우리는 삶이라는 긴 리그를 겪으면서 살아간다. 다른 이들에 비해 못하는 것 같을 때도 있고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 작은 결과들이 내가 노력하지 않았다거나 실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열심히 살았지만 나보다 더 노력한 이들이 주변에 있었을 뿐이다.
이글스는 올해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고 7위를 차지했지만, 충분히 멋지게 시즌을 소화했다. 내년에도 어떤 성적을 거둘지 강연자는 장담할 수 없다고 웃음으로 비관을 전달했지만,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면 내가 응원할 이유는 충분하다. 7위이든 8위이든 10위이든 누군가는 있어야 할 자리이고 최선을 다했다면 어느 위치든 괜찮다.
어느 곳에 있거나 우리가 상위권일 수는 없지만 그 또한 괜찮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나보다 더 많이 노력한 이와 조금 더 실력 있는 이와 약간 더 운이 좋은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캐스터에게 질문 금기어가 되어버린 이글스와 자이언츠의 팬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인사를 전하며 언젠가는 두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날을 살짝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