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코딩교육에 할애하는 시간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작업은 내 또래 친구들에겐 학원에 가거나 전공을 해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부터 경험하는 기본 과제가 되었다.
한 줄 한 줄 명령어와 함수를 외워서 정확히 적어야 했던 예전의 프로그래밍 언어는 예쁘게 생긴 블록들을 조합하는 접근성 좋은 형태로 변하면서 아이들에겐 공부라기 보다는 놀이기구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코딩을 전혀 모르는 아이도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다양한 블록들을 순서에 맞게 조합하다 보면 무언가의 작품이 탄생한다. 시행착오를 겪기는 하지만 블록의 순서를 바꾸거나 다른 조합을 찾다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원하는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곤 한다. 적어도 눈이 보이는 대다수의 아이에겐 그렇다.
그렇지만 나처럼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 텍스트가 그래픽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반대로 할 수 있던 것이 불가능의 영역으로 변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명령어를 외워서 텍스트코딩을 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컴퓨터 키보드를 다룰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겐 그래도 접근은 가능한 영역이었다. 필산 가능한 정안인들보다 암산으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어려웠던 것처럼 텍스트 코딩 또한 시각장애인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비장애인들과 함께 경쟁하는 대회에 나갈 수 있을 만큼 가능의 영역에 있었다.
아이들의 교육에 사용되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그래픽 기반의 블록 코딩이 대세를 이루면서 시각장애 학생들에겐 어렵고 불편했던 것이 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바뀌고 있다. 아직도 '파이선' 같은 몇몇 언어들이 텍스트코딩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긴 하지만 연동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교구들은 블록 코딩 가능한 소프트웨어들 위주의 제한적 호환성을 갖는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조작할 수 있는 교구를 찾는다 해도 움직이는 자동차나 날아가는 드론을 보이지 않는 눈으로 비장애인처럼 컨트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모든 학교에 코딩교육의 비중을 높이라고 할 때에 그 대상에서 특별히 시각장애 학교가 제외되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세부적인 교육 방법이나 교구의 계발에 있어서는 서서히 교육 대상에서 바깥쪽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단순한 코딩을 넘어서 AI와의 연계수업으로 확장되어 가는 요즘은 그 밀려남의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얼마 전 학교 선생님들의 연구공동체에서 소개한 로봇 코딩 연수에서는 교사인 나조차 보이지 않는 눈과 최근 교육트랜드와의 괴리를 실감했다. 탁자 위에 놓인 단순한 블록들을 조립하는 일은 설명을 들으면서 그래도 따라 할 수 있었다. 설명서에서 제시하는 대로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으로 만들라고 하면 그런 것쯤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앱과 연동하는 것에서부터 접근성은 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의 노력으로 많은 부분 접근성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어찌저찌 가능한 것이지 편하게 조작할 수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었다. 작품을 만들고 스마트폰에 표시된 조이스틱을 사용해서 결과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더더욱 난관이었다.
역시나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어렵게나마 바퀴를 앞으로 굴리고 왼쪽으로 돌리고 뒤로 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기기를 탁자 위나 바닥에 내려놓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조종할 수는 없었다. 어디로 움직이는지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내 명령이 정확하게 전달되었는지 알 방법도 없었다. 작은 꼬마 녀석들에게조차 코딩과 AI를 즐기면서 친해질 수 있게 만드는 도구가 기기 좀 만져봤다는 시각장애인 어른에겐 불편함과 불가능으로 가득한 너무도 어려운 과제가 되고 말았다.
시각장애 있는 학생들에겐 이런 교구들은 사용하기도 어렵겠지만 이런 경험들로 인해서 관련된 교육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쌓일 것 같았다. 센서 몇 개를 더 달고 스크린리더가 접근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은 제작자에겐 번거로운 일일 수도 있고 기기의 단가를 높이는 일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우리 일상 속엔 이미 그런 기술을 도입한 기기들이 많다. 자동차의 센서는 신호가 바뀌거나 앞차가 출발한 것을 알려주고 차선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로봇 청소기는 방 이곳저곳을 스스로 찾아다니고 그 위치는 스마트폰으로 전송된다. AI 스피커는 음성명령으로 제어가 가능하고 생성형 AI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시각장애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코딩언어나 교구들을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금 더 품이 들고 돈이 들 수는 있겠으나 적어도 공교육에서만큼은 그런 것을 이유로 배제되는 대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코딩 로봇이 말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위치와 주변 상태를 알리는 것은 장애 없는 학생들에게도 더 재미있는 활동 교구가 될 것이다. 그들은 코딩 과정에서 유니버설한 디자인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도 있고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주어질 자리에서 장애 포괄적인 사고를 할 수도 있다.
내가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간판이 내게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눈이 보이는 사람처럼 주변의 모든 변화를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드론을 조종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에겐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존재하는 기술을 아직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들려고 한다면 간판이 말하는 것도 지팡이 없이 혼자서 걸어 다니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런 것까지 만들려고 생각하는 개발자가 없었을 뿐이다.
코딩교육은 대한민국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창의성을 불어넣어 주는 시간이다. 눈이 보이는 아이들, 몸이 건강한 아이끼리 즐길 수 있는 도구들로 그들끼리 공감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든다면 장애 있는 학생들의 교육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이고 세상의 변화도 더딜 것이다.
말하는 코딩 로봇, 시각장애 아이들도 조작 가능한 AI 로봇이 모든 학생의 교구로 만들어지는 것은 내가 원하는 말하는 간판이 대중화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교육받을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가 편안한 세상을 꿈꾸는 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