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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등반

by 안승준

매년 열리는 학교행사인 여름수련회에 올해도 학생들과 함께 참가했다. 명목상 나는 인솔자이고 학생들은 참가자이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즐긴다는 면에서 함께 참가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물놀이도 즐기고, 레크레이션도 하고, 장기자랑까지 함께했던 그동안의 수련회는 내게도 꽤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했던 활동들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준비된 프로그램들은 시각장애인인 내게도 새로운 경험이 되곤 했다. 도자기도 구웠고, 스노클링도 했고, 보트도 탔고, 갯벌에서 마음껏 뒹굴기도 했었다.


사흘 밤낮 동안 각기 다른 특성 있는 학생들의 식사와 잠자리를 돌보고, 한껏 들떠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살펴 가며 안전하게 인솔한다는 건 큰 부담인 것이 분명하지만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건 솔직히 내게도 설렘일 때가 많다.


이번 도전은 야외암벽 등반과 레펠이었다. 둘 다 어릴 적 캠프에서 한두 번 경험해 본 적 있는 것이긴 했지만 보이지 않는 내가 아무 때나 하고 싶다고 쉽게 해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은 아니기에 내심 기대가 되었다. '교사인 내게도 기회가 있을까?'를 살짝 걱정했는데, 행사를 진행하시는 선생님은 참가한 모든 사람에게 안전 장비 착용을 지시하셨다. 어떤 선생님들에겐 부담으로 다가왔겠지만 내겐 그만큼 반가운 지시도 없었다.


벽부형 레펠은 사다리와 공중 징검다리를 여러 번 거치고 나서야 12m 높이의 도움판에 다다를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해 주셨다. 암벽등반은 야외에 설치된 12m의 벽을 중간중간 돌출된 돌기들에 의지해서 오르는 시설이었다. 구조물은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쳐 시각장애인들도 안전하게 도전할 수 있다고 했지만,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서 하네스와 안전모 착용은 필수였다. 진행하시는 분은 아이들의 주의를 당부하기 위해 혹시 모를 사고들의 유형에 대해 말씀해 주셨지만, 아이들도 도전할 수 있는 시설물이 나에게 있어 큰 위험이 될 것이라는 염려 같은 것은 들지 않았다.


적극적인 학생 몇몇이 레펠을 향한 사다리를 오른 뒤 나의 하네스도 시설의 고리와 연결되었다. 생각했던 대로 사다리를 오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없었다. 성큼성큼 오르는데 첫 번째 제지 신호가 들렸다. "그쪽 아닙니다." 적당히 오른 뒤 옆으로 옮겨가야 했는데 갈림길을 지나쳐 위로 더 올라갔던 모양이었다.


좁은 판자에 발을 대고 앞쪽의 가느다란 줄을 붙잡고 살금살금 옆으로 가는데 살짝 긴장되기 시작했다. 내가 잡고 있는 줄은 내 몸을 버티기엔 너무도 가늘었고 디디고 있는 발판은 발을 옆으로 붙여야만 겨우 올라설 수 있는 너비였다. 다시 나타난 사다리는 그런 면에서 반가울 지경이었다.


다음 관문인 징검다리는 말 그대로 띄엄띄엄 놓인 철판이었다. 잘못 디디면 허공으로 떨어질 것도 걱정해야 했지만, 그 철판이라는 것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구조여서 내 체중을 버텨낼 수 있을까가 더 아찔했다. 그 와중에 진행하시는 분은 "천천히 가셔야 합니다." "왼발 말고 오른쪽 발을 내딛으셔야 해요." "아! 그쪽 아닙니다. 돌아오세요."라는 지시를 계속해서 보내셨다.


누군가 멀리서 나를 본다면 담담하게 지시에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가까이서 나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면 나의 상태가 그리 안정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3층 높이가 넘는 높이에서 "그쪽이 아닙니다."라는 지시가 보이지 않는 내게 어떤 두려움으로 와 닿았을지는 약간의 상상만으로도 공감될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날씨가 많이 덥긴했지만, 나의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땀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때 "출발!"이라는 구호와 함께 12m 높이에서 나는 빠르게 아래로 하강했는데, 레펠 과제 중에서 그 추락의 경험이 내게 가장 쉬운 도전이었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사다리와 징검다리를 오르는 것은 그만큼 난도가 있었다.


암벽등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룩 튀어나온 몇 개의 돌기를 발로 디디고, 손으로 잡고 오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모든 돌기가 그렇게 불룩 튀어나와 있지는 않았다.."한 시 방향 돌기를 잡으세요!"라고 말하는 쪽의 무언가를 잡긴 했는데 '설마! 이걸까?'하는 정도로 납작하고 작았다. "왼쪽 살짝 위 돌기에 발을 올려놓으세요!"라는 지시에 발을 디뎠지만 역시나 '설마 이걸까?'하는 정도로 납작했다. '이걸 말하는 건 아니겠지!'하면서 손과 발을 휘저어 보았지만, 다른 것은 없었다.


괜스레 여기저기 찾느라 손과 발을 움직이다 보니 버티고 있던 다른 한 쪽 팔과 다리에 힘만 빠졌다. '내가 오르지 못하면 여길 누가 오르겠어?'라고 생각했던 자신감은 몇 걸음 떼어 놓기도 전에 없어져 버렸다. '아이들도 보고 있는데 조금은 더 올라야겠지!'가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끙!'하고 힘을 더 내어서 몇 번 더 올라가긴 했는데 절반 정도를 오른 것이 겨우 나의 성적이었다.


나보다 먼저 도전한 제자도 나의 다음으로 올라갔던 녀석도 나보다는 더 높이 더 쉽게 오르고 있었다. 처음이라 그랬다고 하기엔 다른 아이들도 대부분 첫 경험이었다. 운동 좋아하는 나에게 힘과 체력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이건 그런 것만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 때문이지?'라고 핑계를 찾고 있었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는 나보다 나은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다리와 징검다리를 오르는 레펠에서도 부들부들 떨면서 땀을 흘리던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한 번 더!'를 외칠 만큼 즐기고 있었다. 아이용의 시설이라고 얕잡아보았는데 내가 아이들보다 나을 것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객관적이고 자신 있게 내가 제자들보다 나은 것은 몇 가지 없었다. 수학 문제 조금 더 빨리 풀 수 있는 것과 운동 좀 몇 년 더한 것, 나이 먹는 동안 녀석들이 하지 못한 몇 가지의 경험 더한 것을 빼면 학생들이 나보다 못할 이유는 없었다.


레펠을 오르고, 암벽등반을 할 때까지 아이들은 배우고 나는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 가진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교실을 벗어나는 순간 난 제자들보다 못하는 것이 많고 배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내가 가진 하나의 장애를 근거로 나의 모든 것에 약자성을 부여할 때 나는 저항했지만 나 또한 교사라는 한 가지 지위로 교사 아닌 학생들의 모든 부분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단정 짓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잘 오르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고 목청 높여 부르짖던 나의 또 다른 오만과 착각이 부끄러웠다.


난 보이지 않지만, 다른 이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 또한 나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나보다 어리다고 해도 그렇고 제자라고 해도 그렇다. 그 또한 분명하다. 열심히 살다 보면 우리는 몇 가지 성과를 얻게 되지만 그것은 단지 몇 가지일 뿐이다. 한두 가지를 잘하게 되었다고 해서 다른 이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할 수도 없고 그리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쳐 줄 수 있지만 조금 더 수월하게 벽을 오르는 방법은 아이들에게 배워야 했다. 우리는 모두 그렇다. 어떤 면에서 내가 누군가보다 나을 수 있지만 다른 많은 면에서 난 다른 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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