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356일째가 되던 며칠 전 햇살이는 어떤 도구나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걷는 것에 성공했다. 111일 되던 날 누웠던 몸을 뒤집었고 290일 되던 날엔 사지의 협응을 익히고 처음 기었다. 326일 되던 날에 아무 지지대의 도움 없이 10초쯤 서 있었고 겨우 몇 걸음이긴 하지만 이젠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햇살이가 하나하나의 작은 성공을 이뤄낼 때마다 우리 부부는 감격의 환호를 내질렀고 함께 바라본 가족들과 영상으로 공유받은 지인들도 비슷한 크기의 감정을 내보였다.
매일매일을 스스로 움직이는 우리들에겐 구르고 일어나고 움직이는 일 따위는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당연한 일이지만 아기의 성장을 바라보는 요즘 이런 작은 평범함은 엄청난 기적의 연속임을 깨달아 가고 있다.
아이가 이유 없이 40도의 고열을 오르내리고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밤새 비명을 지를 때 나의 걱정은 수십만 가지의 부정적인 경우의 수를 따지고 있었다. 감기를 앓고 장염에 걸리고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할 만큼 경기할 때엔 나의 세상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기는 것이 늦어질 때엔 혹시나 그때 그 일 때문인가 싶었고, 움직이는 모양이 일반적이지 않을 때엔 나 때문인가 하는 마음에 남 모르게 마음고생했다. 소리 내 웃는 것도 의미 없는 옹아리를 시작한 것도 “아빠!” 하고 부르는 것도 때가 되면 다 하는 것이라고 다들 말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하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햇살이 또한 300번이 넘는 평범한 날이 이어진 기적으로 이룩해 낸 소중한 성취이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초조하고 긴장되는 날들을 지내왔기에 햇살이의 하루하루 달라짐을 보는 우리 부부의 반응은 매번 격한 환호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우리의 모습이 호들갑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갓난 생명의 성장을 처음 근거리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경이로운 순간들이기도 하다.
지난주엔 햇살이가 처음 비행기를 탔고, 바닷물에 발을 담갔고 복숭아를 먹었다. 아직 대부분이 처음인 아기에게 낯섦은 매번 극도의 짜릿함으로 표현된다. 파도를 마주하고 작은 과일 한 조각을 입에 물고 그토록 기쁘게 소리 지르고 폴짝폴짝 뛸 수 있을까 싶지만 언젠가의 나도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1센티미터 밖에 안 되던 세포 덩어리가 햇살이라는 태명을 받고 태어난 것도 꼬물꼬물대는 것도 힘들어하던 갓난아기가 스스로 발걸음을 떼어놓기까지도 엄청난 기적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 비슷한 모습의 아기였던 내가 오늘까지 살아내고 있는 것은 더 많은 감사의 사건들이 없이는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매일 먹는 식사와 평범하게 이어지는 일상들을 지겨움과 지루함으로 폄하할 때가 많지만 그것은 나에게 있어 매 순간 감사의 증거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눈에 때로 속상함을 느끼고 남들만큼 아닌 것에 아쉬워할 때가 있지만 수박 몇 조각에 세상 다 가진 듯 기뻐하는 아들에게서 오늘 내게 주어진 셀 수 없는 특별함을 돌아본다.
가지지 못한 것, 할 수 없는 것을 말하자면 줄줄이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할 수 있는 것과 가진 것은 그보다 몇 배는 더 많고 설령 가진 것이 좀 적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충분히 매 순간 환호하며 살 수 있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햇살이가 많은 가족의 축하 속에서 첫돌 잔치를 했다. 평범한 기적들이 조금 더 이어진다면 머지 않아 아기는 말하고 뛰고 더 많은 경험 속에서 활짝 웃을 것이다. 매일매일 작은 것으로도 까르르 웃는 햇살이의 삶이 앞으로도 평범함만으로 그대로 환하게 이어지길 바란다.
햇살이를 바라보는 우리 가족과 많은 이들도 햇살이의 성취에 기뻐하듯 스스로 이뤄낸 소중한 것들을 이따금 돌아보며 살아가기를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