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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은 웹툰을 좋아할까?

by 안승준

“시각장애인들은 웹툰에 관심이 있나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어느 회사 대표님이 내게 던진 질문이다. 어린 친구들이 즐겨보는 웹툰을 시각장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은데 막상 만들었을 때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아 의미 없는 결과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웹툰을 엄청나게 좋아하지 않나요? 그럼, 시각장애 학생들도 당연히 좋아할 거예요.”


아직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도록 접근성이 마련된 웹툰은 그리 많지 않다. 단기 이벤트로 만들어진 작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독자들이 체감할 만큼 다양하지는 않다. 대표님의 고민도 그런 연유로 출발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독자들의 반응은 그가 생각하기엔 너무도 불확실했다. 그런데도 난 잘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시각장애인들도 분명히 웹툰을 즐겨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근거는 비장애인들이 웹툰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면 충분했다. 시각장애 학생들에겐 아직 웹툰이라는 자극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 같은 자극이 주어진다면 그 반응 또한 비슷하리라는 것이 내 확신의 근거였다.


우리는 동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살아가는 같은 종류의 생명체이다. 비슷한 종류의 자극이 주어지면 그에 뒤따르는 반응 또한 유사하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한 번도 달콤한 간식을 먹어본 적 없는 아이에게 사탕을 주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우리는 굳이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가 사탕을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처음 사탕을 맛볼 아이도 역시 좋아할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던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웹툰을 소개한다면 그들의 반응은 어떨까? 우리는 웹툰 전문가도 아니고 마케팅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이견 없이 같은 의견을 모을 것이다. 대표님의 질문은 그 대상에 단지 시각장애라는 작은 차이를 입혔을 뿐이지만 많은 이들은 그 사업의 결과물에 대한 당사자들의 반응을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수학을 좋아하나요?”

“보이지 않는 분들도 이성의 외모에 따라 호감도가 변하나요?”

“장애인 분들도 술을 드시나요?” 라는 질문을 살면서 숱하게 들었지만 그 답 또한 쉽게 생각하면 너무 간단하다.


“요즘 아이들은 수학을 좋아하나요?”

“당신은 이성을 판단할 때 외모가 영향을 주나요?”

“주변에 술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의 답과 특별히 다르지 않고 다를 이유도 없다.


나에게 피카소 그림을 좋아하냐고 묻거나 센강의 저녁노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인해 곤란할 수 있지만 그 또한 내게 적합한 그림 설명이나 장면 해설이 없었기 때문일 뿐, 그와 관련한 해설 방법이 마련된다면 난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상을 말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난 어떤 이들의 기대처럼 아름다운 마음의 눈으로 본 감동스러운 감상을 특별하게 내놓지는 못하겠지만 그건 내가 그들의 생각과 달리 많이 다르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내가 맛 본 맛있는 음식의 맛을 아직 모른다면 그는 그것을 맛볼 기회가 없었다는 뜻이다. 내가 그에게 그 음식을 대접한다면 그가 분명 기뻐하리라는 것을 난 큰 의심 없이 확신한다.


시각장애인에게 웹툰의 감상을 이야기했을 때 함께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웹툰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에게 같은 작품을 감상할 방법을 만들어준다면 그도 나처럼 즐거워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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