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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

by 안승준

다수의 사회에서 소수로 살아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불편하고 속상한 일을 마주하게 된다. 길을 걷다 보면 아무 데나 세워놓은 전동 킥보드에 걸려 넘어지고, 사무실에서는 누군가가 쓰고 닫아놓지 않은 도장 인주가 손에 잔뜩 묻을 때도 있다. 늘 제자리에 있던 샴푸와 린스는 바쁜 아침에 서로의 자리를 바꾸고 지하철 옆자리의 아기엄마는 나의 보이지 않는 눈과 내 어릴 적 행실과의 연관관계를 아들에게 이야기한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는 일이긴 하지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화를 내는 것이 내가 당면한 문제의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화를 내어서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 대가로 나를 포함한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이 불편해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입학시험이나 취업 시험에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고 공공시설에서 배제되거나 정당한 출입을 제한받을 때처럼 강력하게 항의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장면에서 화를 내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킥보드에 걸려 넘어지는 시각장애인을 본 사람들은 아무 데나 킥보드를 주차하는 것은 장애인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 장면을 목격하는 것만으로 깨닫게 된다. 내가 어릴 적 엄마 말씀을 잘 듣지 않아서 장애가 생겼다는 말로 장애의 발생 원인과 관련한 새로운 학설에 계몽될 지하철 승객도 없다.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우리가 모두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공공질서를 말하고 왜곡된 장애인식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이 당장의 상황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시키고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 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방법은 시각장애인은 화를 잘 내는 프로불편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더욱 효과적이다.


갑자기 뒤바뀐 샴푸와 린스 때문에 출근이 늦어지고 손바닥을 벌겋게 물들인 인주 때문에 기분이 상할 수는 있지만 그 또한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어떤 원인으로 어떤 결과가 발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반성은 목격한 모든 이가 공유하게 된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지내려면 물건은 쓰고 난 후에 잘 정리해서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화를 내는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보다 '장애인과 함께 지내는 것은 불편한 것이구나'를 깨닫게 하는 쪽으로 효과를 발생시킨다.


나도 사람이기에 불편한 말과 상황 앞에서 화가 나는 것마저 막을 수는 없지만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천지 차이다.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는 나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미안함이나 안타까움이지만 화를 내는 순간 불편한 감정들로 변해간다. 한 번의 화를 참아내는 것으로 한 사람의 관계를 얻을 수도 있고 한 번 화를 내는 것으로 관계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내가 마주하는 불편함은 대부분 화를 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 난 전동 킥보드의 주차에 관한 규칙을 건의할 수 있고 부모들의 올바른 장애인식 형성에 관해 글을 쓸 수도 있다. 가족과 주변 동료들에게 물건을 정리하고 제자리에 둘 것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고 대체로 그 정도의 조치로 많은 일들은 해결된다. 때때로 그 정도의 노력으로 아무런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라면 화를 낸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도 없다.


시각장애 덕분에 오늘도 나는 남들보다 더 많은 불편함과 가까이 지낸다. 화가 나지만 참아내야 하는가와 화를 내고 감정을 표출할 것인가의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아직도 다스리지 못한 화가 입 밖으로 표출될 때가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나의 참아내는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화를 내는 것이 더 옳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은 불편함 전문가의 다수 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들 또한 화가 없거나 속상함이 없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그들은 단지 화를 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많이 알고 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눈과 함께 원만하게 사는 방법도 화를 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잘 찾아내는 것이다. 나의 화는 나의 불편함을 다른 이에게까지 옮기는 매개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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