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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보는 나만의 방법

by 안승준

요즘 인터넷에 공유되는 영상들은 화면을 보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출연자끼리 어떤 대상을 보면서 대화하기도 하고 진행자가 그림을 놓고 이것이나 저것처럼 대명사를 써서 설명하기도 한다. 수학 강의에서도 "그러니까 여기에서 여기로 갈 때 이것을 요렇게 뒤집어서 이렇게 선을 그어보면 답이 나오죠."라고 말하고 특정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그 사람의 사진이나 이름은 자료 영상처럼 배경에 떠 있기만 하다.


영상 제목을 보고 궁금해서 클릭하는데 대화를 듣다 보면 더 궁금해지기만 하고 실제 내용은 파악할 수가 없다. 짧은 영상 여러 개를 보면서 늘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장면 하나하나를 AI 기술로 파악하기는 번거롭다. 궁금하지만 참기도 하고 스스로 대략 상상하기도 하고 가끔은 지인들에게 공유해서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나만의 영상 파악 최적의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댓글 읽기이다. 인기 있는 영상이나 궁금증을 유발하는 영상들일수록 댓글이 수백수천 개가 달리는데 천천히 읽다 보면 영상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진행자들이 말해주지 않았던 특정 대상의 이름이 언급되고, 강사가 이것저것 요것하면서 설명하던 풀이의 내용을 재차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영상에 대해서 파악하는 데에는 대체로 무리가 없고 때로는 추가적인 배경지식을 얻기도 한다.


예전에 야구장에 갔을 때 주변 사람들의 환호 소리나 탄식 소리 혹은 말소리를 듣고 경기 내용을 파악하던 것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시각장애인끼리 우스갯소리로 "야구장에 가면 만난 지 오래되지 않은 연인 옆에 앉아야 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여자 친구에게 최대한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남자 친구의 설명을 엿들으면 경기 내용 파악하기가 쉽다는 뜻이었다.


인터넷 영상이나 야구장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난 다른 사람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방법들로 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길을 찾을 때 바닥의 느낌이나 주변의 냄새 혹은 소리를 이용해서 랜드마크를 정하고 상대방의 표정을 보지 못하는 대신에 목소리나 숨소리를 듣고 현재의 기분이나 컨디션을 파악한다.


보통의 사람들에겐 시각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인 나를 떠올리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해냈을 때 신기하고 특별하게 평가하는 사건들이지만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장면이 이런 모습이기도 하다.


눈이 보인다면 영상은 눈으로 보고 파악하는 것이라는 생각 이외에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는 없으므로 다른 방법에 대한 고민은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지만 나는 보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므로 보지 않고도 내용을 파악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일상이다.


길을 찾을 때도 안내표지를 보고 애플리케이션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 가능한 사람들은 그런 방법 외에 다른 것을 고민할 필요가 없으므로 다른 방법은 시도해 본 적도 없겠지만 내게 그런 방법은 해당하지 않거나 매우 부족한 정보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낯선 곳을 혼자서 갈 때엔 길을 찾는 다른 단서는 없는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


나의 귀가 그리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주행 중인 차량에서 살짝 열린 창문의 방향을 파악할 수 있고 멈춰 서는 버스의 엔진음으로 타야 할 버스를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스크린 야구장에서 날아오는 공을 받아 치고 목소리만으로 상대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주어진 상황이 많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세상일에는 한 가지 해법만 존재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다른 사람처럼 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상황에서 내게 맞는 답을 찾는 방법도 한 가지 이상은 존재하고 그런 방법들을 하나하나 찾아낼수록 다음번 방법 찾기도 조금씩 수월해져 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보지 않고도 다른 방법으로 하면 된다는 쪽으로 사고를 전환하는 것인데 그것은 한 번 한 번의 다른 방법 찾기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을 높이고 답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했다.


수학을 가르치다 보면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은 교과서의 풀이 방법을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그 모양 그대로 풀어내곤 한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은 공식을 잊어먹거나 교과서의 풀이가 기억나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드문 경우이지만 어떤 학생들은 문제를 보고 자신의 방법을 만들어내려고 꽤 오랫동안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녀석들은 처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다른 아이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때의 방법을 잊어버리더라도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곤 한다.


수학 문제가 가지고 있는 정답은 하나이지만 그 답으로 가는 과정은 문제가 복잡할수록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학생들이 해야 할 일은 교과서의 풀이 과정을 그대로 외우는 것보다는 배운 개념을 활용하면 답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과서의 친절한 풀이 방법 소개는 그런 고민을 할 기회를 오히려 막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삶은 수학 문제보다 몇 배는 복잡하다. 하루를 살아내는 방법도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고민하기에 따라서 수없이 많다. 난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없다는 생각 대신 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교과서의 풀이 과정이 그렇듯 다른 이들이 눈으로 보고 살아가는 방법은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자신의 방법을 찾아본 사람만이 낯선 과제가 주어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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