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이글스는 26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플레이오프를 어렵사리 통과한 이글스는 오늘 열린 1차전에서 큰 힘을 써보지 못하고 지고 말았다.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고 감독과 선수들을 향한 원망의 댓글들이 인터넷 공간을 채워가는 중이다.
오랜만에 가을야구를 관람하는 내게도 장면들을 돌이켜보면 아쉬운 장면들이 없지 않다. '투수를 조금 더 빨리 교체하거나 다른 선수를 기용했으면 어땠을까?' '그때 그 작전은 쓰지 않아야 했어!'라고 가정에 가정을 더하다 보면 내 생각대로 했으면 이겼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뱉게 되지만 그건 결과론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감독과 선수들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야구 전문가이다.
야구 좀 해 봤다거나 오래 봤다는 전문가급 팬들의 분석들이 한가득 있는 가운데 내가 주목한 댓글은 공감 몇 개도 받지 못한 짧은 글이었다. 글의 요지는 올가을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선수들과 감독님께 감사드리며, 남은 경기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끝까지 응원할 테니 최선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글스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것이라고 시즌 초에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팬심을 가득 담은 바람으로야 매년 우승이 목표겠지만 현실적인 목표는 가을에도 야구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정도였다. 팀은 이미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결과를 이뤄냈고, 그것은 새로 부임한 감독과 현재 선수들의 노력으로 이뤄낸 것이다.
마지막까지 1등으로 남을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승 문턱에서 미끄러진다 하더라도 그 원망의 화살을 감독과 선수들에게 여과 없이 퍼붓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경기를 복기하면서 비판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까지 프로 스포츠를 즐기는 영역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이해하기엔 선을 넘은 표현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만약 2등으로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결과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를 지내다 보면 삶 속에서도 더 나은 오늘을 가정하며 불평할 때가 종종 있다.
'더 많은 것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더 좋은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면!'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면!'
‘로또만 당첨되었더라면!'을 가정하면 지금의 내 모습은 불만족의 결정체인 초라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룬 것도 감사해야 할 것도 셀 수 없이 많다.
처음 아팠을 때를 생각하면 '목숨만 건져낼 수 있다면'을 바랬었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땐 '학교를 다시 갈 수만 있다면'을 꿈꿨었다. 대학에 가서도 수학을 공부할 수 있을지를 부단히 고민했던 적도 있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리라면 어디서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미 그것들은 목표와 예상을 뛰어넘어 한참 초과 달성한 지 오래다.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은 때때로 무거운 책임감을 동반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독거 장애인으로 살던 나를 생각하면 분에 넘치도록 감사해야 하는 일임이 틀림없다. 40년 넘게 살면서 당연히 이루지 못한 것도 후회스러운 것도 셀 수 없이 많고 오늘의 일과 중에도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것들을 불평하기엔 감사할 것들이 너무 많다.
한국시리즈에 가기만 한다면 어떤 장면이 나오더라도 매 순간 신이 날 것 같았지만 응원하는 팀이 지는 장면에서 그동안의 팀 성과는 너무도 쉽게 잊힌다. 작은 다툼이나 결핍 안에서 내 삶의 감사들도 그렇게 가려지곤 한다.
일주일 6경기 중 절반만 이겼으면 정말 좋겠다고 바랬던 우리 이글스를 최고의 무대로 이끌어준 감독님과 선수들에게 오늘은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독거 장애인인 나를 한 가정의 가장으로 만들어준 아내와 햇살이에게도 마음 깊이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오늘이다.
야구는 아직 6경기나 남았고 내 삶은 그에 비할 수 없이 길게 남아있다. 또 질 수도 있고 어느 날 다시 힘들 수도 있겠지만 짧은 현재의 시간이 긴 감사를 가리지 않도록 노력을 다짐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