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날씨가 좋은 지난주 주말 우리 가족이 택한 나들이 장소는 놀이공원이었다. 돌을 갓 넘긴 아기와 함께 가기엔 여러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지만, 갖가지 모양의 캐릭터와 구조물을 레고블록으로 만들어 놓은 그곳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걱정을 이겨냈다.
공원에 진입하는 다리에서부터 알록달록한 장식들을 보고 흥분을 표현하는 햇살이 덕분에 우리의 판단이 옳았다고 자평했다. 장애인 우선 탑승 제도와 조그만 아기들에게도 탈 수 있는 몇몇 놀이기구 덕분에 그 평가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높은 점수를 유지했다. 아기는 전에 없이 공간을 뛰어다녔고,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처음 가는 장소라는 낯섦에 대한 호기심은 우리 부부에게도 적지 않은 즐거움으로 작용했는데 덕분에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우리의 나들이는 큰 휴식 없이 오후가 늦도록 이어졌다. 마침 특별 행사로 열린다는 불꽃놀이가 폐장 시간인 9시가 무렵에 열린다는 정보를 알게 된 후부터 우리의 귀가 목표 시간은 자연스레 9시로 연장되었다.
가을 저녁 춘천의 밤공기는 생각보다 쌀쌀했고, 체력이 떨어진 아기는 안은 채로 재워야 했다. 넓은 공간에서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챙겨 먹이는 일도 쉽지 않았다. 물론 이런 어려움이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게 하거나 기쁨을 사그라들게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체력적으로는 분명 부담이 되었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식사를 챙겨 먹지 못한 것도 우리의 체력이 조금 더 빨리 고갈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늦은 밤하늘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불꽃놀이를 햇살이에게 처음 보여주는데 성공했고 수많은 인파와 함께 폐장 시간을 공유하는 것으로 소중한 추억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남은 체력을 짜내어 아기를 안고 주차장으로 걸어갈 때 옆쪽에서 걷던 다른 일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분은 몸이 불편하신가 봐! 저런 엄마도 힘을 내서 하루 종일 아기랑 놀아주러 왔는데 우리는 아기한테 좀 더 잘해야겠다.”
아내가 돌아본 한쪽 끝에는 팔다리의 움직임이 불편한 한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놀이공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말을 꺼낸 사람 때문인지 몇몇 다른 사람들도 그녀의 희생과 의지에 대해 나름의 감탄과 칭찬 그리고 자신의 반성을 늘어놓고 있었고 함께 걷는 이들의 의견은 대체로 비슷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동의 주인공이 된 아기 엄마는 정말 엄청난 결심으로 주말 계획을 놀이공원으로 정하고 커다란 희생을 감내하며 하루 반나절을 눈물겹게 견뎌냈을 수 있다. 그것은 오로지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기인한 초인간적인 고결한 인내였을 것이다.
정말 그랬다면 그녀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뇌와 결심과 인내와 희생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걷는 것은 불편하지만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용기를 내야 하고 안아주는 것이 힘들지만 온 힘을 다해 수행해야 한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지체장애인들이 매일 그렇게 눈물겨운 감동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다른 이들처럼 가을 나들이의 장소를 여러 후보 중 놀이공원으로 정하고 마침 늦은 시간 불꽃놀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힘들지만, 폐장 시간까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체력적으로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더 힘들 수는 있지만 그런 정도는 이미 익숙한 일상일 것이다.
늦은 밤 어두운 곳에서 아내의 팔을 잡고 가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시각장애가 있는 것을 빠르게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내 상황을 알았다면 내게도 아이 엄마에게 느꼈던 감동과 비슷한 말들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아빠도 저리 열심히 쫓아다니는데 우린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까? 결심하기가 어려웠을까?”
그렇지만 난 보통 사람들보다 특별히 많이 고민하지 않았고,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 큰 희생과 인내를 동반하지도 않는다. 놀이동산 안에서 가고 싶은 장소를 찾아다니고 안내 표지판을 보는 것은 불편하긴 하지만 하루 동안의 가족 나들이에서 그 정도의 어려움은 그리 큰 비중이 아니다. 12시간 정도의 일정이 육체적 피로를 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시각장애를 이겨낸 감동적인 아빠’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지만 그 엄마의 오늘도 그리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나들이 중 하나였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상을 크게 다르지 않게 공유하며 살아간다.
보통 사람들이 수백조 가진 부호의 삶을 동경하며 날마다 어렵게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나의 삶도 예상 밖으로 잔잔하고 평온하다. 처음 본 아기 엄마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이야 자유지만 그녀의 일상도 평범한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다음 주엔 햇살이와 축구 관람을 갈 예정이다. 만약 그곳에서 나를 보게 된다면, 보이지 않는 아빠의 축구장 나들이가 생각만큼 눈물겨운 결심과 희생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