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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는 눈치가 없어요.

by 안승준

내 아내는 학교 급식 메뉴를 맞추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식단표를 본 적이 없는데도, 아침에 주꾸미를 먹은 날이면 점심 급식에도 주꾸미가 나오고, 보쌈을 먹은 다음 날에는 점심상에 역시 보쌈이 올라온다. 며칠 전엔 시원한 보리차를 끓여 텀블러에 담아 주었는데, 그날 학교 간식으로 유기농 보리차가 나왔다. 학교에서 보리차가 나오는 일도 드물고, 우리 집에서도 오랜만에 끓인 것이었는데 그 우연이 같은 날 일어나니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동료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그분 역시 미역국을 먹은 날엔 미역국이, 된장국을 먹은 날엔 된장찌개가 급식으로 나왔다며 웃으셨다. 더 흥미로운 건, 옆에서 듣던 몇몇 선생님들도 “나도 그래요!” 하며 공감했다는 것이다. “영양사 선생님이 혹시 몰래 전화를 돌리시나?”라며 한참 웃었다.


하지만 따져보면, 아내가 학교 급식을 맞춘 건 1년에 200번 중 다섯 번도 되지 않는다. 확률로 치면 3%도 되지 않는 일이다. 우리가 평소 먹는 음식 종류가 한정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된장국을 먹은 날 된장국이 나올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다만 그런 우연이 마치 특별한 일처럼 느껴지고, 그 몇 번의 기억이 그렇지 않은 수많은 날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학교 메뉴를 기가 막히게 맞춘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은 눈치가 없어요.”


어느 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근거라고 내세운 것은 몇몇 시각장애인과의 식사 경험이었다. 비싼 음식을 눈치 없이 더 달라고 했다거나, 앞접시에 덜어준 음식을 금세 먹고 다시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와 식사한 시각장애인이 몇 명이었냐고 물으니, 고작 서너 번의 자리였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들이 음식을 더 달라 한 건 단순히 음식이 맛있었거나, 전체 양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나 또한 가끔 양이 적은 음식을 혼자 많이 먹거나, 반대로 충분한 음식이 있는데도 조금만 먹고 배고픔을 느낀 적이 있다. 식탁 위 음식의 전체량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만난 시각장애인들이 정말 ‘눈치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눈치 없는 비시각장애인들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경험은 특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단지 시각장애인과의 식사 경험이 그에게는 드문 일이었기에, 그 기억이 유난히 강하게 남았을 뿐이다. 나는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각장애인을 만나왔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이 비시각장애인보다 유난히 눈치가 없다는 증거를 발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시각장애인들이 시력을 제외한 어떤 공통된 성향을 가진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시각장애인은 착하다”, “시각장애인은 순수하다”, “시각장애인은 사교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답답하다”, “건강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시각장애인의 공통점은 단 하나, 시력이 좋지 않아 문자 읽기나 보행 방식을 달리한다는 점뿐이다.


시력을 잃었다고 해서 성격이나 태도, 성향이 비슷해질 이유는 없다. 상식적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같은 특성을 공유하게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내 아내가 학교 급식을 ‘기막히게 맞춘다’는 것이 단지 몇 번의 우연에서 비롯된 것처럼, 시각장애인에 대한 그 사람의 인식도 몇 번의 경험에 근거한 착각일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소수자에 대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실제 그 집단의 특성이 아니라, 자신이 만난 몇 안 되는 사람들의 특성을 일반화한 결과다.


나와 아무 공통점이 없는 누군가가 갑자기 시력을 잃는다고 해서, 그가 나처럼 변하거나 내가 그처럼 변할 이유는 없다. 대한민국의 시각장애인들에게 공통된 ‘특성’이 생기려면, 그런 우연이 수십만 번은 반복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시각장애인은 눈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단언컨대 그것은 아무 근거 없는 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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