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워할 이유가 많지만…

by 안승준

중고등학생들에게 학교 급식 메뉴는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데 오늘 아이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은 식당의 메뉴가 청국장이기 때문이다.


"청국장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데! 한 번 먹어보는 거 어때?"라고 권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진심이세요? 저희 먹이려고 꼬시는 거 아니구요?"라고 반문한다.


직접 담근 신김치에 보글보글 끓여 낸 된장찌개보다 치킨과 피자가 몇백 배는 더 맛있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에게 오늘 당장 청국장의 깊은 맛을 공유할 방법 같은 것이 나에게 있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제자들을 사랑하는 교사로서 세상엔 달콤하거나 기름에 튀긴 음식 말고도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이야기 정도는 전해주고 싶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말이야… 쓴맛이 달아지고 퀴퀴한 음식 냄새가 향긋해지는 과정이야!"

"믿을 수 없겠지만… 뜨거운 찌개를 먹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도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진심이라니까!"


목소리 높여가며 간절하게 설득하려는 나의 태도에 아이들은 약간의 호기심을 보이는 듯했지만 아직은 깊이 공감할 수 없다는 듯 큰 흥미를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들의 논리대로 맛없는 음식을 나열한다면 젓갈은 짜고 씀바귀는 쓰고 청국장은 냄새나고 순두부는 물컹하고 매운탕은 맵고 게장은 짜고… 끝도 없이 말할 수 있다. 사실적인 표현이고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런데도 그런 음식들은 나에게 있어 모두 입맛 다셔지는 맛있는 음식들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내가 그런 다양한 음식들이 가진 각각의 진가를 알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음식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재료들의 조합이라는 면에서 볼 때 어느 맛을 부각해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평가를 다르게 말할 수 있다.


청국장은 냄새가 독특하긴 하지만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좋고, 씀바귀는 쓴맛을 견뎌내긴 힘들 수 있지만 쌉쌀하게 입맛을 돋워 준다. 묵은김치는 시다기보다는 알싸하고 해물탕은 맵기도 하지만 얼큰하고 개운하다.


달콤한 사탕이나 바삭한 튀김도 그 나름으로 맛있는 음식이긴 하지만 그것만 먹고 살기엔 나의 식탁은 너무나 단조롭고,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도 너무 달고 느끼하고 또 다른 단점을 찾게 될 수 밖에 없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다양한 맛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동료의 푸념을 들었다. 상사는 그를 함부로 대하고, 어떤 동료는 화를 잘 내고, 또 어떤 이는 믿을 만하지 못하고… 청국장과 신김치를 불평하던 학생들만큼이나 그의 불평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평가의 단서들 또한 내가 듣기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화를 잘 내고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게 환영받을 수 있는 특성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한두 가지의 불편한 면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시작한다면 누군가를 미워할 이유는 차고 넘치도록 많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도 단점 하나 찾을 수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이는 술버릇이 좋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밥값을 잘 내지 않는다. 말투가 예의 바르지 않은 이도 있고 실수가 잦은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들은 그들의 전부는 아니다. 짜고 맵고 쓴 음식들처럼 그들을 포용할 이유는 차고 넘치도록 많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세상 모든 이에게서 미워할 이유를 찾아낼 수 있지만 그것은 내 삶을 단조롭게 만드는 지름길이 된다. 다양한 음식의 진가를 알아가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처럼 미워할 이유 뒤에 감춰진 함께 할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 관계가 풍요로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각장애인는 눈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