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아람 작가의 <공부의 위로>를 가끔 들춰서 다시 본다. 그러다 보면 대학시절 공부를 게을리 했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학교다닐때 공부 안했던걸로 후회하기에는 이제 너무 먹어버린 나이인데! "열심히 산다"는 얘기 듣고 살았지만 나는 안다. 사실 보여지기에만 그랬지 그 시절,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다. 무언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없는 후회를, 잠깐 했다.
곽 작가님의 학창시절을 엿 보며,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그 이후는 헬조선이었으니까) 나의 이십대초중반을 자주 떠올렸다.'학점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작가님도 내용이 잘 기억 나지 않는다고 하는 부분이 책 곳곳에 있는데(당연하다), 원하지 않는 경영학 전공을 하게 된 나는...부모님께 죄송스러울 정도로 기억이 안난다. 첫 대학 수업이어서 그런지 1학년 수업들과 복수전공으로 선택했던 디자인과 영문학의 몇몇 수업들 정도만 기억에 날 뿐이다. 몇몇 추억들이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그 추억들이 나의 기분을 좋게 한다. 이 추억을 남은 인생 내내 가끔 떠올리기 위해 대학에 간 것 같다.
이달 말에는 대학원 졸업식이 있다. 놀랍게도 그렇게 하기 싫어했던 학부 전공과 이어지는 경영학 석사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 벤처투자에 큰 관심이 생겼고, 관련해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어 시작했다. 워낙 관심사여서 대체로 유익하고 즐거웠지만, 졸업을 위한 필수 과목에는 경영학 원론과 같은 수업들 들어야만 했는데, 그 수업을 들으며 왜 학부 전공을 싫어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도대체 교수들이 만든 모델을 어디에 쓸 수 있다고 배우는걸까?
어쨋든 찌들어버린 사회생활 속에서 상대적으로 느슨한 이해관계의 사람을 만나고 함께 공부하는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다. 이런 시간 또한 공부가 주는 위로일 것이다.
밑줄을 그은 문장은 너무 많은데, 처음으로 별표를 쳤던(외우고 싶으면 별표를 그린다) 아래 문장을 함께 읽고 싶다.
...사람을 사귈 때면 항상 마음속 지층을 가늠해 본다. 이 사람은 어느 층위까지 내게 보여줄 것이며, 나는 내 안의 어떤 층위까지 그를 허용하고 인도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층위마다 차곡차곡 고인 슬픔과 눈물과 어두움과 절망과 상처와 고통, 기쁨과 웃음과 약간의 빛의 흔적...... 나는 손을 내밀며 상대에게 묻는다. 더 깊은 곳까지 함께 내려가 주겠냐고, 그 어떤 끔찍한 것을 보게 되더라도 도망치지 않을 수 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