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발상력
양양 서퍼비치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7시이후 19세 이하의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서 있었다. 한낮의 파도위엔 웃음을 터트리며 서핑을 배우고 있는 무리들이 보였다. 해변에 들어건 카페엔 멋진 몸매와 문신을 드러낸 젊은이들이 바다를 바라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다소 무료해보였는데 서핑보다는 불타는 밤을 기다리고 있는듯 했다. 해변의 중앙엔 ‘레드불’을 새긴 파란 자동차가 쿨한 모습을 연출하며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밤이 되면 서로가 서로를 위한 배경이 되줄 것이다. 속초로 가면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조용한 산책로와 박물관과 식당가가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청초호엔 조선소 건물을 그대로 살린 카페, ‘칠성조선소’가 있다. 도착했을 때 카페의 2층창에는 오락가락 소나기가 때렸고 비슷한 옷을 차려입은 남녀 커플들은 서로의 머리를 만져주며 사진을 찍거나 스마트폰을 봤다. 가족들도 많았는데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스마트폰을 보며 각자의 시간을 즐겼다. 나도 그렇고 누구도 그렇고 모두 마찬가지다. 어딜가나 스마트폰이다. 액정속에 갇혀 폭력성은 늘고 활동성은 줄어버렸다. 마약 판매상들의 창구도 이곳이란다. 대세를 이루는 또 한 가지가 있다. 반려견이다. 양양의 서퍼비치나 속초의 칠성조선소, 두 곳 모두 반려견 동반이다. 속초에서 양양으로 가는 도로옆의 지경리 해변이나 유료의 멍비치, 대포항의 이름난 머구리횟집과 최근 분점 이 생긴 속초의 현대장칼국수집도 그렇다. 서울의 한 백화점엔 반려식물코너도 생겨 손님맞이에 나서고 있다. 속초 시내로 들어오니 청초호를 돌아가며 족히 열집이 넘게 마사지샵이 보였다. 동남아 관광의 습성과 동남아 출신의 인력이 옮겨 놓은 여행 문화인 듯하다. 구십분에 10만원 정도하니 결코 싼 가격이 아니지만 주말이나 성수기엔 예약을 해야한다.
여행은 세상의 트렌드를 몸으로 확인하는 단련장이다. 이런 소비 문화 트렌드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혹시 만들어지는 아닐까? 오래전 아도르노나 호크하이머는 자본주의 대중문화는 가진 자에 의해 의도되고 조장되고 소비된다고 했다. 빼빼로데이의 쵸콜릿에서, 한정판의 운동화로, 그리고 오픈런의 위스키로 뛰어다니게 만드는 조종자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소비에 대한 주관적이고 건강한 가치관이다. 부르디외가 ‘구별짓기’로 갈파했듯이 쓸데없는 욕망을 절제할 수 있다면, 브랜드와 명품이라는 미신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행복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된다. 신발장으로 가서 신발의 갯수를 세어보라. 장식장으로 변해버린 책장을 기억해라. 당근마켓과 알라딘이라는 착한 공유경제의 모델이 뜨고있다. ‘100가지만 가지고 살아가기’라는 뉴요커들의 생활문화도 곱씹어 볼 대목이다. 비교하지 말고 따라하지 말고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미 가득차 있다면 버리며 살아가자. 서퍼비치를 떠나며 누군가의 글이 떠올랐다. “재물이나재산, 의식(儀式), 선행, 지식, 생각 등 일상의 모든 것이 갈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것에 집착하고, 결국 그것이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는 일종의 사슬이 될 때 나쁜 것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