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아이디어 트렌드
마케팅 공부를 하는 남대문포럼 회원들과 일본 도쿄로 2박3일의 짧은 브랜드 여행을 다녀왔다. 둘째 날은 세상에 여섯 개밖에 없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를 들러 오모테산도의 쇼핑거리를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이세이 미야케숍과 디올이나 불가리, 구찌와 보스의 빌딩은 자신들의 로고를 번쩍이며 존재감을 뽐냈다. 유니클로 입구에는 젊은이의 꿈을 공모하는 이치로의 등신대가 세워져 있었다. 매장 안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디자인이 즐비했다.
일본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웹툰의 주인공이 티셔츠 위로 큼직하게 그려져 있었다. 최근 그들은 사계절 옷을 사계절 꽃과 함께 파는 매장을 늘리고 있다. 꽃과 옷은 생활에 색채를 더하고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주말 인파로 뒤덮인 하라주쿠를 따라 메이지 신궁으로 가는 길엔 이강인 선수가 활약하는 파리 생제르맹의 브랜드 스토어도 눈에 띄었다. 브랜드의 진화는 대중문화를 누리려는 사람들의 심미적 감수성에 의해 좌우된다. 파르코 백화점 6층엔 캐릭터 상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댔고 지하 1층 혼돈의 식당가(Chaos Kitchen)에선 악어고기를 팔고 있었다.
도쿄역 부근 키테빌딩에서 맛본 사자(SAZA)커피의 유래, 디지털 테크를 결합해서 편리한 관람을 제공한 시오도메 덴츠 광고박물관의 도쿄 카피라이터스 클럽(TCC)수상작 전시회,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 옥상에서 내려다본 구글 재팬, 닭 볏 모양의 요요기 경기장도 꽤 인상적이었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관광객이 장관인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와 한국 식당가를 옮겨 놓은 듯한 신오쿠보 거리에선 기지개를 켜는 일본 경제의 일단이 엿보였다.
하나라도 빠트리지 않겠다며 달려온 여행이었다. 오사카와 교토를 관광 삼아 설렁설렁 다녀온 것과 달리 집주인의 이름을 이마에 줄줄이 아로새긴 빌딩 타운과 위풍당당한 명품 브랜드의 행렬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서 학생들 강의록으로 쓰려 했다. 물론 일본에서만 일 년에 백 박을 지내며 일본문화 전문가이드로 활약 중인 신현암 선배의 살신성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여정이었다. 이런 의무와 강박감이 맥없이 풀려버린 곳은 도쿄 도심 속 5000평 남짓 아름다운 정원이 자리 잡은 네즈미술관 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대나무 통 앞이었다.
쓰쿠바이(つくばい)라고 불리는 이 물그릇은 툇마루 가까운 뜰이나 다실 입구에 손을 씻기 위해 놓아둔다. 네즈미술관의 쓰쿠바이도 단층의 작은 다실 앞에 있었는데 흐르는 물이 차면 저울처럼 통이 기울어져 물이 쏟아졌다. 낮은 쪽에 만들어 놓아 손을 씻으려면 허리를 구부려야 했다. 신 선배는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좋으니 느긋하게 살라는 와비사비(わびさび)의 철학이 스며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순간 헉헉거리며 거리를 누비고 다녔던 일행은 탁, 탁 소리를 내며 정적을 깨고 한가롭게 물을 내려보내는 쓰쿠바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여행은 밖에 나가 안을 보는 거울의 행로다. 완강한 두께감의 몸체를 지축에 단단하게 뿌리박은 건축물은 두텁고 튼실해서 부러웠다. 더 강렬하게 남은 것은 그 볼품없는 대나무 통에 비친 삶의 태도였다. 충족이나 충만이 아니라 부족함이나 비워냄 같은 것, 서두르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태도, 겉치레가 아닌 기본에 충실한 인생관 말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이나 번쩍거리는 명품 브랜드가 없다고 큰일 날 일은 없다. 아니, 없는 대로 잘 살아갈 수 있다면 행복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된다. 필요한 것을, 있을 만큼 지니고 사는 소박한 새해를 설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