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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랑 Jan 12. 2024

깊은 물에 뜨는 배

마케팅 트렌드 아이디어


춘천의 한림대 겸임교수를 그만뒀다. 전 직장의 후배가 중견 기업의 마케팅 총괄이 되며 공석이 되서 대타로 맡은 수업이었다. 두과목을 가르쳤는데 교통 시간까지 합치면 꼬박 하루가 걸렸다. 몸 담고 있는 광고 회사의 일이 늘고 신문사까지 맡게되어 올해는 맡기 어려워진 것이다. 일년동안 새벽에 일어나 춘천행 청춘열차에 몸을 싣고 편도로 두시간반이 걸리는 통학길을 오가며 1학기에 118명, 2학기에 84명의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들은 취직해서 서울로 입성할 가능성에 대한 열패감에 빠져있었다. 먼저 자신감을 일으켜야 했다. 광고는 마음의 연금술이라 뭘 외우는 능력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마시며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들이 유리한 종목이고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디지털 광고회사는 학벌보다는 근성과 맷집을 따지는데다 유수의 종합광고회사도 온라인 광고를 거친 인재들을 선호하니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취업의 문은 열린다고 전했다. 디지털 광고주 협회에 연락해서 삼개월간 무료 교육을 받게도 했다. 비슷한 과정과 난관을 헤쳐가며 디지털 광고회사에서 씩씩하게 일하고 있는 부산 동서대학교 학생들도 알려줬다. 이제 그들과의 인연을 정리한 마음은 착찹하다. 몇몇 학생들의 반짝이던 눈빛 때문이다.

광고홍보학과 졸업생 박윤진도 그 중 하나다. 남양주에 살고있어 청량리로 돌아갈 때 역에서 만나 자신의 진로를 물어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학기중 윤진이는 일년간 다녀 온 뉴욕여행과 관찰의 중요성에 대해 두 번 발표했는데 두번째 기말고사에선 일취월장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여행의 느낌을 정리한 소감문 정도였던 중간고사 발표때와는 달리 기말고사 때는 자신만의 유니크한 관점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녀는 김환기 작가의 그림을 감상했던 경험을 통해 일상에서 유심하게 기억하고 기록한 데이터나 정보가 어떻게 잠재의식속에 남아 인간의 판단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 오분동안의 스피치속에 똑부러지게 설명했다. 종강 때 박윤진은 편지 한장을 남겼다. “4학년이 되도록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방법론이나 심리적으로 교수님 수업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광고계에서 일을 할지,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잘 모르지만 제 자리를 찾아 멋진 사회인이 돼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고 타인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일전에 밝힌 계획대로 디자인과 코딩공부를 병행하며 사방으로 문을 두드린다면 멀지않아 자기 자리를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보내 올 것이다.

水之積也不厚,則其負大舟也無力 (수직적야불후, 즉기부대주야무력). 장자(莊子) 소요유(消遙遊)편에 나오는 말로 물이 깊어야 큰 배를 띄울 수 있다는 뜻이다. 대학 은사이신 이정춘교수께서 훌륭한 선생이 되라며 주신 말씀이다. 하지만 지금 대학은 이런 고담준론을 논할 여유가 없다. 줄어드는 학생수를 유지하려면 취업율 랭킹을 올려야 한다. 교수들도 큰 돈이 걸린 나라의 프로젝트를 따내야 우대받는다. 학생들도 돈벌이와 포트폴리오가 되는 일거리를 찾아 불철주야다. 대학은 취업 양성소로 변하고 사제지간은 각자도생이 되었다. 여기에 코로나도 한몫했다. 교수들의 시시껄렁한 사담을 듣지 않아 줌수업이 좋다는 학생도 생겼다. 수업 평가 기간이 되면 불신의 벽은 더 단단해져 아예 서로의 의견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학의 기업화는 가속 일로다. 거대한 빌딩으로 학교의 위상을 뽐내지만 푸른 초원의 낭만은 사라졌다. 휘장처럼 드리운 현수막에 나라 돈을 따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지만 속빈 강정처럼 보인다.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일이 학교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사람이 자원인 나라이지 않은가.

인공지능의 시대,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다. 융합적 사고의 유연성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다. 자기 소개서를 작성하거나 면접 때 발휘해야 할 역량도 이것이다. 이는 경험과 연륜을 겸비한 교수가 헌신적 태도로 학생들의 손을 맞잡고 진지하고 충실한 대화와 연구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바람에 휘지 않는 나무를 위해 단단한 뿌리가 되줘야 한다. 겸임교수가 할 걱정은 아니지만 반론을 제기할 교수님도 없을 듯해서 몇 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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