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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Sep 10. 2022

생일 축하해 엄마.

엄마, 여기는 이제야 한여름처럼 더위에 잠을 설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한국은 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것 같더라. 그래도 아직 9월 초인데 추석이라니 올해는 추석이 많이 이른 편인 것 같네. 비록 여기는 한여름보다도 더 덥지만 그래도 추석이라고 하니 왠지 한국의 가을, 엄마가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에 대해 생각할 일도 많았고 엄마 양력 생일과도 바짝 붙어있어서 요즘 엄마 생각을 조금 더 많이 했어.


지난 6월, 엄마 기일 즈음에 글을 쓰면서 나는 엄마 기일이 아니라 생일을 기념하고 싶다고. 그러니 기일을 이렇게 어물쩡 넘어가는 걸 이해해 달라고 했었지. 그래서 엄마 생일인 어제는 많이 슬프지 않게, 엄마 생각을 많이 하며 보냈어. 

새벽 6시에 맞춰둔 알람에 일어나 대충 옷만 걸치고 꽃시장과 피시마켓에 가려는데 조금 더 자도 되는 빙수가   굳이 일어나 나와 함께 가겠다고 말해주었어. 엄마,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 딸이 결혼을 참 잘했지. 엄마의 하나뿐인 사위는 엄마가 알던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참 다정하고 포근해. 


꽃시장에서 엄마에게 어울리는 연보라색 수국과 회녹색의 작은 이파리들이 달린 가지를 샀어. 피시마켓에서 연어도 사고 주차장으로 나오니 아침부터 벌써 기온이 30도에 가까웠어. 더위와 출근 시간의 교통량을 견디며 겨우겨우 집에 왔지. 보리와 구름이는 밥을 내놓으라고 울고, 더위에 꽃과 연어를 걱정하느라 신경이 조금 예민해졌지만 그래도 꽃과 가지들을 정리해 화병에 꽂고 식탁에 테이블보를 깔아 엄마가 좋아할 만한 작은 화분들과 함께 올려두니 마음이 너무너무 좋더라. 새삼 엄마와 참 잘 어울리는 걸 잘 골랐네 싶어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어. 


연어의 가시를 뽑고, 소금물로 헹궈 물기를 닦고, 생강술과 물을 섞어 불린 다시마를 덮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간단히 아침을 먹으며 한참이나 꽃을 봤어. 엄마 생일을 핑계로 이렇게 예쁜 꽃을 사서 보고, 맛있는 걸 먹으니 엄마에게 늘 그래왔던 것 보다 조금 더 고마운 날이라고 생각했어. 꽃을 핑계로 에어컨을 조금 더 많이 틀게 될 것도 같았고 말야. 수빈이가 아침을 먹는 동안 커피를 마저 갈고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지. 수빈이와 아침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혼자 엄마 생각을 하다 보면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는건 어쩔 수 없잖아. 


그런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수빈이가 갑자기 '바로 나가야 겠다'며 서둘러 옷을 입는거야. 꽤 오래 전부터 간간히 수빈이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수빈이가 조금 더 마음을 쓰고 있던 담당 환자가 갑자기 심정지로 중환자실에 가게 되었다고 했어. 수빈이가 아직 정식 의사는 아니지만 꽤 오래 전부터 의사가 된다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성장해온 과정을 나는 바로 옆에서 듣고 지켜보았잖아. 가끔은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멋진 순간들이 있기도 한 모양이지만 의사 일 중의 대부분은 그런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포착되지 않는 고되고 지치는 순간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 엄마는 언상이와, 삼촌과, 할아버지를 간병한 경험이 있고 엄마 역시도 항암치료를 하느라 병원생활을 오래 했으니 알았던 거겠지. 병원에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중에서도 의사는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또 그보다 큰 책임을 짊어지고 일하는지. 그래서 수빈이를 많이 예뻐하고 난 다음에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의사 말고 다른 걸 하는 건 어떤지 이야기를 했을 테고 말야. 


엄마, 수빈이는 엄마가 알던 그대로 여리고 순하고 무던한 사람이지만 긴 공부와 고민과 훈련을 통해 많이 강해지기도 했어. 내가 보기엔 말도 안되는 일정과 중압감을 견디며 성장하고 강해지는게 순간순간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놀라워. 그런 혹독한 과정 속에서 어쩌면 수빈이가 가진 다정한 마음씨와 섬세함이 무뎌지면 어쩌나 조금 걱정도 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 엄마가 우리 사는 모습을 모두 보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럴 거라 믿지만, 그래도 꼭 말해주고 싶어. 엄마 딸이 참 좋은 사람을 만나서 살고 있다고. 내 부족하고 못난 점도 사랑으로 감싸주고 예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나 스스로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고. 살아보니 엄마 말이 틀린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머쓱하지만, 수빈이와 함께 겪고 배우며 살아가는게 아직 재미있고 참 좋다고. 엄마도 계속 편한 마음으로 잘 지켜봐달라고 말하고 싶어. 


어제는 모처럼 엄마 목걸이를 하고 요가도 했어. 평소에는 요가 할때 어떤 악세서리도 다 거추장스러워서 하지 않는데 모처럼 엄마 목걸이가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면서 요가 하는게 나쁘지 않았어. 다운독 자세를 할 때마다 십자가가 입술에 스치는게 재미있기도 했고 말야. 엄마를 많이 떠올리고, 엄마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면서도 울지 않으며 엄마 생일을 보낸 내가 참 기특해.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엄마,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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