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덕에 프린트 딜리버리는 나, 팩스 딜리버리는 아빠다.학교 기출문제들을 뽑아달라던 동생이 어느새부턴가 자신이 직접 쓴 글을 보낸다. 그 덕에 어디로 갈지 모르는 글들을 먼저 읽어 볼 특권을 갖게 됐다.제목은 '입시를 마치며'. 정말 동생은 입시를 마쳤다.
어릴 때는 하나뿐인 언니의 방황을 지켜보며 조마조마한 초등학교 6년을 보냈다.중학교 때는 성실하고 바른 학생으로, 친구들과 큰 트러블 없이 3년을 잘 보냈다.어느덧 고등학생이 되더니 학급 반장에, 동아리 부장도 하고 상장도 맡겨둔 것처럼 줄줄이 받아왔다.
우리는 유별난 사교육 없이 자라왔다. 무슨 일이든 본인의 생각과 의지로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치관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 밥상 앞에 앉아 부모가 떠먹여 주는 밥을 '잘' 받아먹는 건 소용이 없다. 입과 옷에 묻히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숟가락을 들고 떠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살면서 절대적인 것이 많지 않지만 그것만은 절대적으로 옳다. 동생도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 쌓아 올린 성취에 대한 결과를 얻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참 다르다. 교육의 질에 관계없이 따박따박 학자금을 받아가는 대학은 올해 동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무조건 차례가 올 은행 순번표도 아닌 추가모집 대기표를 동생에게 겨우 던져줄 뿐이었다.
동생은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이라는 미생의 말을 택했다. 주저앉아 엉엉 울기보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글로 마음을 쓸어내렸다. 짐작은 했지만 채 알아차리지 못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보여 슬프고 아팠다.
누구나 과정 속에선 알지 못한다. 내 뜻과 길이 비극적 결론 앞에 도달했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 때, 그때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도 늘 흔들리고 있다. 그런 흔들림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리고 기회를 준다. 갈 곳 없이 헤매다 막다른 길 끝에 다다랐을 때, 우연히 발견한 수풀 너머처럼. 수풀에서 다음 수풀로, 또 그다음 수풀로. 수풀을 넘어다니기만도 삶은 벅차다.
딱히 최고의 순간이랄 것도 없이 마음속 3순위쯤 되는 것들이 계속 반복되는 일.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당장의 좌절이 최악도 아니고 방금 낚아 올린 것이 전부도 아니다. 그냥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뜬구름 잡으며 허공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보다, 뭐가 중요한지 알 수도 없이 목적지로만 후다닥 달려가는 KTX보다 하늘과 논두렁, 그리고 사람 사는 집에 시선을 옮길 수 있는 무궁화호가 훨씬 좋다고. 그래서 우린 아직도 무궁화호에 타고 있다고.길은 계속 이어진다고.
p.s.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동생은 대학을 졸업했고, 서울의 월세를 감당하며 검소하고 건강하게, 건설적으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