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빅 Jul 27. 2022

로스코가 말을 걸었다

런던 | 테이트 갤러리


계절은 여름 한복판을 가르고 있었고 날씨는 ‘매일이 맑음’이었다. 런던에서 여러 날을 보내고 맞은 어느 일요일 오후, 숙소에서 느지막이 나온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전날 예기치 못한 이슈로 인해 뜻하지 않게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테이트 모던을 다시 찾는 것 말고는 정해놓은 일정이란 없었다. 다만 달리는 차 안에서 살랑살랑 마음이 바뀌긴 했다. 런던 시티는 햇볕이 비추는 곳마다 활기가 흘러넘쳤다. 이런 날씨에 종일 사방이 막힌 전시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썩 좋은 생각 같지 않았다. 테이트 모던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는게 어떠냐는 나의 제안에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오랜동안 런던에 체류중인 지인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테이트 갤러리 입장을 불허했던 전날의 '예기치 못한 이슈'는 보기 드문 사고라고 했다. 하루 전 우리는 테이트 모던 주변에서 경광등을 켠 채 어수선하게 늘어서 있던 경찰차와 응급차 대열을 맞닥뜨렸다. 지근거리에서 예사롭지 않은 일이 생겼음을 알리는 방증이었다.





특정이 되지 않았던 사고의 근원지는 금방 드러났다. 테이트 모던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건물 안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 나오고 있었다. 반면에 출입구를 향하는 방문객들은 경찰에 의해 제지를 당했다. 그중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테이트 모던 내부에서 걱정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


쏟아져나오는 이들 중 한명이 단문을 뱉고는 이내 말을 아꼈다. 전망대에서 아동 추락사고가 있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10대 소년이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는 믿기 힘든 말은 이후에 접했다. 햇볕 찬란한 주말 오후 런던 시티 한복판에서 흘러나와선 안 되는 이야기였다.





다음 날 다시 찾은 테이트 모던 안팎의 공기는 다른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전날과 같은 출입 통제는 이루어지지 앟않았지만 사고 현장이었던 10층 전망대로 향하는 승강기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신관 전망대에서의 시티뷰는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어차피 우리는 마크 로스코 컬랙션만 보고 나오기로 했으므로 곧장 2층의 마크 로스코 방으로 향했다.




마크 로스코. 거장 혹은 대가와 같은 지칭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깊고도 강한 예술세계를 견지하며 온전히 그에 집중했던 로스코가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무게감 또한 상당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9년 여름, 당시 나는 4년 만에 런던을 다시 찾았었다. 이번 방문에 테이트 모던의 마크 로스코 컬렉션을 만나고 싶었던 데에는 2019년 방문과 관련이 있었다. 먼저 여름에 런던을 여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2019년 초, 서울에서 5연의 막을 올린 연극 <레드>를 관람했던 것이 단초였다. 테이트 모던에도 일부 전시되어있는 마크 로스코의 씨그램 뮤럴스. 연극은 바로 씨그램 뮤럴스와 연관된 로스코의 실제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이다. 연극을 통해 남다른 철학을 지닌 한 예술가의 자기 번민과 통렬한 삶의 자취를 따르면서 그동안 흘려보던 그의 작품에 다시금 관심이 갔다.


테이트 모던의 로스코 방은 런던에 갈 때마다 경험이 있긴 했다. 그중 직전에 방문했을 당시 로스코 방에서의 인상적인 일화도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일조했다. 7~8년 전쯤이었을까. 당시 나는 씨그램 벽화 중 대작을 마주하고 앉아있었을 것이다. 그때 나와 벤치를 공유하며 나란히 앉아있던 관람객 중 한 명이 낮게 흐느끼는 걸 보았다. 간간이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꽤나 긴 시간 동안 작품 앞을 지켰던 그의 모습과 침잠한 듯 모호한 분위기에 사로잡힌 전시 공간 내부의 공기가 그저 고단한 다리를 접에 잠시 쉬고자 했던 내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씨그램 뮤럴스의 신비로운 색채를 마주하면 어쩌지 못하는 감정에 휘말려 알 수 없는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고들 한다. 왜 사람들은 로스코의 그림이 훌륭하다고 하는 걸까. 왜 그의 작품은 그토록 높이 평가되고 있을까.


옆 자리 관람객의 들썩이는 어깨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나는 붉은색으로 채워진 커다란 캔버스로 다시 시선을 옮겼을 것이다. 코앞에서 작품을 독대한 나의 생각은 이랬다.


'난 내 옆의 그녀처럼 로스코가 안내하는 깊은 내면에 이르는 비밀의 키를 건네받지 못한 것 같아. 이번에도 그가 전하는 힌트나 어떤 메시지도 내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어'


런던 테이트 갤러리는 물론 미국 내셔널 갤러리 등 로스코의 작품이 전시된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장면이라고 들었으며, 주변 지인들에게서 유사한 경험담을 직접 듣은 바도 있다. 감동의 눈물이 왈칵 솟구쳐 주저앉고 말았다는 내면의 고백, 나아가 작품을 앞에 두고 종교적인 체험에 이르렀다는 둥 하는 일종의 고해성사는 나와는 무관한 것들이었다.





붉은색은 임팩트가 강한 컬러다. 1950년도 당시에는 훨씬 더 강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붉은색이 퍼진 캔버스 바탕에 또 다른 붉은색이 흐르고 번지면서 생겨난 직사각 표현들. 그 무엇이, 어떤 이유로 사람들로 하여금 두드러진 심리적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앞선 나는 잘 봐주려고 해도 그저 컬러의 콤비네이션과 불규칙한 사각형 자체가 좋아 보인다는 느낌 외에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작품이 그저 아름다운 작품으로만 비치는 걸 경계했다고 하니 따지고 보면 작가의 의중이 무색해지는 감상평이 아닐 수 없다.


가늠조차 안 되는 현대 미술의 난해함이라는 큰 벽에 가로막힌 채 너머의 심오함을 읽어낼 수 없는 자의 불편한 마음만이 작품 위를 떠돌 뿐이었다.


4년 만에 번지듯 혹은 흐르듯 채색된 거대한 붉은 캔버스에 더해진 붉게 물든 직사각형의 그림 앞에 다시 섰다. 세월의 간극을 넘어 같은 공간에서 마주한 동일한 작품. 나의 마음 한편에 전에 없는 꿈틀거림 증상이 발현되는가가 내심 의문이었다. 처음에는 마치 색 자체가 목적인 듯 본연의 컬러에 매료된 점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반면 대작이 뿜어내는 위용에 압도되어 마음이 살짝 납작하게 눌렸다는 게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을까. 붉은색 캔버스는 침잠한 심연의 바다 같기도 했고 살아 있는 듯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일렁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평평한 그리고 거대한 레드는 명쾌하고 선명한 듯 보이다가 급작스럽게 탁해지고 가로막힌 듯했다.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오가며 어둡고 갑갑한 어떤 지점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이것은 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에 관한 재미있는 글을 기고하는 박상현 작가의 최근 신간에서 내가 느낀 기분에 가장 근접한 표현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느꼈던 마음이 납작하게 눌리는 기분은 이유를 하나만 집어낼 수 없는 바로 "먹먹함"에 가장 가까웠다.


"작품에 등장하는 어둡고 희미한 색면은 그렇게 설명하기 힘든 사연과 다양한 감정을 머금어 언제라도 눈물이 되어 쏟아질 수 있는 먹구름 같다"     

   - 도시는 다정한 미술관(박상현 저) 중 -


추상작품을 보면서 작품이 말을 걸어올 수 있다는 것, 아울러 작품을 통해 나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하기엔 이르다. 다만 나의 낯선 경험은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작가의 마음이 살짝 닿았던 것이라 이해하기로 했다. 먹먹함이라 표현할 수 있는 잔뜩 낀 먹구름을 이고 진 채 무언가에 의해 휘저어진 알 수 없는 감정을 떨치지 못하고 전시공간을 빠져나왔다.





전시실 밖 생기 넘치는 런던의 도심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오감을 톡톡 깨워내고 있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런던은 관광객 행렬에 수만 명의 라이더들이 물결이 합류하면서 역동적인 에너지가 더해진다. 속도를 유지한 채 노련하고 깔끔하게 코너링을 하는 라이더들을 향해 응원을 아끼지 않는 인파가 뿜어내는 열기 속에 있으니 눌린 마음과 무거워진 머리가 식는 기분이었다.





1950년대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던 현대미술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 세상과 쉽사리 타협하려 들지 않았으며, 평생을 예술계의 주류에서 한 뼘쯤 물러나 있던 사람. 한없이 얕은 나로서는 평생을 걸쳐도 모를 예술의 깊이에 대해 사유하고, 결과물을 작품으로 증명하는데 바친 사람. 그래서 자신의 깊은 내면 속으로 부단히 우리를 이끌고자 했으나 정작 고독을 끌어안은채 생을 마감해야 했던 사람.


마크 로스코는 50여 년 전 테이트 뮤지엄에 자신의 작품 일부를 기증할 뜻을 밝힐 당시 생전에 그가 좋아했던 터너의 전시실 옆에 자신의 전시 공간이 자리하길 원했다고 한다. 터너의 전시실은 영국 출신 작가의 작품만 전시한다는 방침을 지키던 테이트 브리튼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로스코의 바람이 뒤늦게 현실이 되었다는 기사를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배어 나왔다. 테이트 브리튼에 있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전시공간을 찾아간다면 이제는 왼편에 나란히 마련된 로스코의 전시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이젠 테이트 브리튼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만일 당신이 낮은 채도 일색인 그림들, 그 속의 희미하고 모호한 색채 속을 유영하면서 특정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 옛날 화가가 보낸 비밀스러운 싸인이 당신에게 닿은 것이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에든버러 근교의 크래몬드 비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