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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Apr 30. 2020

유튜브 검색창에 '프리미어 강의'를 치기 시작했을 때

영상 편집 배우는 일기 1


  브런치에 영화 리뷰가 아닌 글은 처음 써본다. 블로그의 가장 최근 글도 근 두 달동안 업로드를 쉬다가 겨우 올린  한 편이었다. 글쓰기도 쓰기인데, 보는 영화 자체가 적어졌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극장을 가기에도 애매해졌다는 이유 이전에 사실 영화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오랫동안 사랑하고 있던 무언가에 대한 회의일 수도 있겠고, '오랫동안'이라는 기간 자체에서 오는 피로감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1년 365일 눈 뜨자마자 그리고 자기 직전까지 폰을 쥐고 있는 이 와중에 내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보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게 단지 영화가 아닐 뿐이지.




  쓰기를 완전히 손 놓은 것은 아니다. 물론 밀어닥쳐오는 '현생의 파도'에 의해 올해 초 정신없긴 했지만 블로그에 글이야 계속해서 써내려갈 것이다. 대신에 영화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특히 드라마 속 인물들. 아니면 내가 느낀 소회들. 그 중 쓸만한 문장으로 다듬어질 가치가 있는 생각들. 그것도 아니라면 자투리 시간을 내어 읽다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책의 한 구절에 대해서도 기꺼이 써볼 것이다. 이제까지 영화만을 좋아했고 그 짝사랑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즈음 한 번 생각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세상에는 영화 말고도 수많은 영상들이 있고, 나는 다행히도 아직 영상을 보는 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럼 그것대로 그만의 세상을 넓혀보자고 말이다. 생각이 바뀌자 숨통이 좀 트였다. 그렇게 내 새로운 취미 생활이 생겼다. 3월부터 독학으로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요한 계기는 덕질이었다.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 사이, 한 없는 애정이라고 하기엔 민망하니 애증 어린 시선쯤으로 해두자. 아무튼 그 안에 눈에 보일만한 어떤 결과물이 생겼음 했다. 그것이 다만 나만이 알고 지나갈 한 시절이 될지라도 말이다. 어떤 이에겐 그게 그림이겠고 어떤 이에겐 그게 이야길테고. 그 다양한 갈래에서 나는 100일된 아이가 멀뚱한 눈으로 돌잡이를 하듯 하필이면 영상을 잡았다.



  라고 쓰며 한 가지 더 현실적인 이유를 붙이자면... 사실 먹고 사는 일과도 관련이 있었다. 먼저 사회로 나가, 글이라는 창과 방패로 싸우던 친구의 전언이 그 계기였다. "친구야 이 바닥은 글만 써서는 안 되겠더라. 글 잘쓰는 애들은 이미 너무 많고, 사람들은 더 이상 지나치게 길고 어려운 글은 읽지를 않고. 살아남기 위해선 '저 글 말고도 이거 할 줄 알아요' 덧붙일 수 있는 뭐라도 있어야겠더라" 장렬한 피가 묻은(?) 편지를 쥐고 밤낮없이 도대체 어떻게 빌어먹고 살아야 하느냐 부들대던 나는 어느 날 잠들기 직전 생각했다. 뭐라도 기술을 배워야겠다. 이 바닥에 붙어있을 만한 것이라면 뭐든. 그게 영상이었다. 이러저러한 여러 시기가 나에게 동시에 도래했고,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그것을 '해야만 했다'. 꼭 운명처럼.




  영화를 곁에 두고 배우는 것과, 영상을 직접 잘라 이어붙이는 일은 하늘과 땅차이였다. 그리고 그 머나먼 거리만큼이나 바로 곁에 붙어있는 일이었다. 컷편집을 하고 포인트가 되는 부분에 클로즈업이니 풀샷이니 마우스휠을 조절하다 문득 생각했다. 요 몇 년동안 내 일상은, 더 거창하게 덧붙여 내 인생은 '클로즈업과 풀샷의 의도'며 '해석'이며 영화를 조각내어 헤집는 과정의 연속이었는데 지금 그것을 그대로 역행하는 중이구나. 조금이라도 일찍 이런 기술을 배워볼 생각을 왜 못했을까. 후회는 늦다. 더 늦은 후회가 즐비할 미래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더 부지런히 손을 놀려 뭐라도 해야 한다. 이런 말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뱉는다니 정말 꼰대라도 되어버린 것일까? 카페인의 힘을 빌려 타자기 위에 놀리고 있는 손을 다음날 아침이면 흑역사의 후회로 내리치는 것은 아닌가? 그만하자. 말이 잠시 샜다. 아무튼 비장하다면 비장한 마음으로, 그런데 그만큼 무기력해져서 옆으로 기대 누워 노트북마저 옆으로 눕혀세운 백수의 지조로 유튜브에 프리미어 독학을 치기 시작했다. 세상은 넓고 스승은 많다. 길거리에 세 명의 행인이 있다면 그 중 두 명에겐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아 명언이 이 내용이 아니던가. 아무튼 간간히 써보려고 한다. 편집을 배우고, 배웠고, 그래서 나름대로 발버둥치며 느낀 점이든 뭐든 간에 이곳에 일기처럼 간간히 올려야지.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뻔한 나의 덕질의 한 시기에 일은 이렇게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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