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개도리 Feb 22. 2024

나는 '이상한 여자'였다

- 이주민 생활에서의 적응기 - 

인생은 때론 예상치 못한 감정과 상황이 마주하게 된다. 내가 떠난 북한과 한국에서의 삶은 두 개의 세계에서 비롯된 이상한 감정들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새로운 세계에서 내가 '이상하다'라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상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세상이 달라 보였다. 

'이상하다'는 말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과거의 감정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타향에서 마주한 사투리의 그림자 


제가 살던 함경북도의 사투리는 톤이 높고, 빠르며 된소리, 거센소리의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북한에서도 함경북도 사투리를 보고 "솔라솔라"한다고 말합니다. 중국 연변 사투리와 비슷합니다. 언어학자들은 말을 빠르게 하는 것은 함경도의 추운 날씨에 몸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생존과 연계되었다고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자유의 몸이 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는 고향의 사투리를 다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30년간 사용한 사투리를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도 사투리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 입국한 지 1년 만에 사랑하는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이별의 슬픔 속에서도 어머니의 사투리에 웃던 생각이 잊히지 않습니다.


저는 그 당시 대한민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북한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꼭꼭 숨기고 싶어 가능하면 말을 하지 않고 지냈었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생활하던 어느 날 저는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같이 오고, 국정원, 하나원을 함께 보낸 친한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야~ 내다 숙경이. 오랜만이다."


"어마나 숙경이구나. 니는 어디서 사니? 그래 뭐 하고 있니? 난 서울에서 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뿔싸! 저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지하철 안에서 고향의 사투리를 쓰면서 온몸으로 전화를 받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주변이 집중되고 저를 보면서 키득거리는 느낌이 들어 순간 주위를 휙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4호선이었고 낮이라 사람이 몇몇 없었습니다. 저를 이상하게 보고 있는 모든 분들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고 두 여학생이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코믹을 보듯이 웃고 있는 여학생들이 괘씸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저 나이 때면 낙엽이 날리는 모습 보고도 깔깔대던 나이인데 나보고 웃은 게 아닐 거야 하면서 자체 위로도 했지만 부끄러움이 온몸에 휩싸였습니다.


왜 부끄러웠을까요? 


이곳에서 저는 대한민국의 사람들과 다른 말, 이상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는 제가 '이상하다'라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사람들로부터 차별받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몇 년 동안 저는 지하철에서 전화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 서면 왜서인지 움츠러들고, 말을 더듬고 온몸이 얼어붙는 트라우마가 생겨났습니다.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사람들 앞에서 무엇인가 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자기소개 10 분하기 VS 친한 친구 1년 만나지 않기' 


요즘 MZ세대들이 즐겨하는 밸런스 게임 중 하나입니다. 고향에서 이 물음에 선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자기소개 10분 하기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저는 1초의 고민도 없이 후자를 선택합니다. 


이 트라우마는 꾸준히 저를 따라다녔고, 저는 이와 마주하기를 싫어했고 피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현재 지난날 사투리의 어색함과 부조화로움은 저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답니다. 어색한 말투가 아닌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다름을 알았고 저만의 아이덴티티로 다양성을 배우고 있답니다. 




 '이상한 나'를 만나다  


북한이탈주민은 대한민국에 입국하면 국정원에서 3개월, 하나원에서 3개월, 이렇게 6개월간 집단생활을(2012년 당시) 하게 됩니다. 해마다 잠정적으로 바뀌는 부분이 있습니다. 


국정원 3개월간은 조사를 받습니다. 일부 중국의 조선족들이 북한사람으로 위장해서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 북한 사람이 맞는지, 혹은 간첩은 아닌지 등 엄격한 조사를 받습니다. 


조사받는 기간 중에 일주일간 독방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매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저는 우리 집에서 키우던 바둑이(개 이름)까지 생각하게 되었고, 바둑이의 외로움을 공감하며 슬피 울기도 하였습니다. 하루종일 울타리에 갇혀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다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던 그 바둑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일주일 독감방은 정말 모든 슬픔이 생각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모든 것이 애달파 마음속에 눈물로 가득 채웠습니다. 


봄 노을 피는 저 하늘가에 기럭 기러기 줄지어 나네
서로 다정히 찾고 부르며 나의 마음도 싣고서 가네
보고 싶은 고향에 가고 싶은 조국에
아 내 마음 기러기 끼르륵 까르륵 가네

- 북한노래 '기러기떼 날으네' -


저는 일주일 중에 4번 정도 국정원 선생님을 만나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선생님은(그렇게 불렀습니다.) 어떤 때는 갑자기 질문을, 어떤 때는 겁을 주기도 하면서 제가 정말 북한이탈주민인지 탐문하였습니다. 


"남산지하실에 끌려가고 싶어?" 


어느 날, 그분이 저에게 무섭게 화내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남조선의 안기부가 남산지하실에서 별의별 고문을 다 하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겁에 질렸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저를 시험해 본 것입니다.


"지금도 지하실이 있는 줄 아는구나. 지금 시대에 고문 같은 거 했다가는 큰일 난다."


저는 그렇게 국정원 조사와 하나원 적응기간을 통과해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행운이지만 행운인지 모르고 북한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은 새로운 문화, 언어, 그리고 새로운 사람,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가득 있었습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던 모든 것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저일상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존재하는 마음, 북한에서의 경험과 한국에서의 경험을 기초로 저는 튼튼한 저만의 삶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심리학 수업시간 교수님께서 한 학자가 정의한 '이상하다'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중에서 제 마음에 와닿았던 표현은 사람들은 '환경에 적응 못하거나, 나와 다를 때 이상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 당시 제가 알고 있는 '이상하다'는 것은 정상이 아닌 사람을 보고 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와는 거리가 먼, 관계가 없는 표현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상하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기준에 저는 지극히 정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과 완전히 다른 북한에서 30년을 살았고, 여기서는 막 적응 하고 있는 상황이라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는 '이상하다'라고 볼 수도 있고, 저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순간순간 '이상한 나'를 발견하고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나이가 어리고, 띠동갑이 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새로운 곳에 가거나, 누구나 다 아는 연예인 이야기를 할 때도 저는 공감하지 못하는, 공감하는 척하는 하는 '이상한 여자'였습니다. 


영어학원에 영어 회화를 위해 영화 이야기를 할 때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다 아는 '해리포터 이야기'를 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저는 다른 세계에서 온 '이상한 여자'였습니다. 

 

제가 '이상하다'라고 받아들여진 그 순간부터 저는 평범해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에게 별로 재미없는 개그콘서트를 보고 웃음코드를 찾으려 노력했고,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는 말은 저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자 도전이었습니다. 


두 세계에서 온 감정들이 교차하고 공존하는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여정은 때로는 어렵기도 이상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상하다'는 어색함과 부조화스러움은 저에게 다양성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었고, 저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주었고, 저만의 삶을 쓰게 해주는 시작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나는 나를 이해하고 나를 소중이 여겼을 때 나만의 독특한 세계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작가의 이전글 한반도의 추운 겨울과 따뜻한 겨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