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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형 May 05. 2016

자존심

인정과 자존심

예전부터 자기 자랑은 좀 거북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게 단지 겸손한 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자기 자랑을 꺼려하면서 속으로는 기분이 좋거나 이런 상태를 지나서 상대방의 인정을 더 바라고 있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점점 나도 모르게 자기 자랑하는 걸 즐기는 모습을 본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해줄 때 기분이 좋다. 때로는 칭찬이나 인정이 나와야 할 상황인데 안 나올 때 실망을 숨기지 못할 때도 있다.


내가 뭘 잘난 건 없다는 생각은 사실 알고보면 실망이나 비난을 피하려는 교묘한 자기 기만이다. 우리는 누구나 상대방의 인정을 원한다. 그런데 그런 인정 앞에 우쭐대는 모습을 너무 가볍다고 여기거나 아니면 금세 실망했다는 말을 들을까봐 두려워 그 인정이나 칭찬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 인정은 우리에게 소속감이나 성취감을 주며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인정과 칭찬을 부정적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적 성향을 갖고 있기에 자신감을 가지려면 타인의 긍정적 피드백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남의 인정이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원인일까?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자신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자기 만족으로도 충분한 경우는 없을까? 자신이 세운 목표를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했다면 그것에 대해 타인의 반응이 부정적이거나 냉소적이라고 하더라도 무시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기 만족이 가능한 경우는 자신의 결정과 노력, 그리고 결과가 자기충족적이 될 때이다. 이 세가지 모두 자기충족족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외부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만일 자신감이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주로 나온다면 그건 자기 내면이 약하다는 증거이다. 자신의 결정, 노력, 결과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외부의 기준이나 판단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의미가 긍정적이면 다행이지만 부정적이라면 자기 행위에 대한 의미는 그 존재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만다.


자기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은 자아정체성이 불확실하여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 어렵다. 존중은 다름과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을 전제로 하고 이런 수용은 정체성이 갖는 내면의 힘을 바탕으로 한다. 내면의 힘이 없을 경우 공격 또는 방어에 열중하게 된다. 두렵고 불안해서 언제나 자기보호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기이므로 부모나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이 많이 필요하다. 긍정적 피드백은 자신에 대한 의미 부여를 가능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 피드백이라도 자랄수록 줄어야 하며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타인과 환경에 대입하며 수정 보완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어야 한다.


자기 의미를 만들 기회가 많으면 자존심보다는 존중을 선택할 수 있다. 자기 의미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의미도 존중할 만큼 내면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입장에 반대하더라도 그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자존심이 강할수록 자기 의미를 만들 기회가 별로 없었고 어릴 적 인정보다는 비난이 많았으며 그래서 그 인정에 허덕이는 삶의 양식이 그대로 정체성에 녹아들어가 있다는 뜻이 된다. 가까스로 부여잡은 타인의 인정을 너무 강하게 부여잡은 나머지 그것 자체에 대해 자기 스스로 수정 보완하지 않는다. 이런 인정을 잃지 않으려고, 그리고 더 확고히 얻기 위해 완벽해지려고 한다. 이것이 자존심의 본질이다.


완벽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온전히 충족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언제나 의미는 바뀔 수 있으며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과 그 의미에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자존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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