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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형 May 22. 2017

감정적 폭발과 휴우증

감정에 대한 개인적 지식

영어 문법을 교사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끼리 직접 서로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수업을 하고 있다. 평소 좀 소란스럽고 잡담을 많이 하는 듯 보이는 반의 수업이었다. 지난 번 그 반에서 1명은 반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 정확히는 그 아이가 수업하는 태도를 지적하다가 - 끝내 수긍하지 않는 모습에 좌절했고 다른 1명은 교무실로 데리고 와서 5분간 역시 수업태도에 대해 지적했다. 그 후 수업시간이 좀 조직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반에서는 시간을 분배해서 할 일을 알려주고 그대로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월요일 1교시 다시 그 반 수업이 되었다. 


지난 번 좌절이 떠오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시간을 분배하고 할 일을 알려주고 이렇게 한다고 말한 후에 모둠활동이 시작되었다. 내가 차가워진 탓인지, 아니면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 건지 충분히 말해주지 못하고 모둠활동이 시작된 후에 자꾸 주의사항이나 할 일을 추가로 알려주었다. (사실 그런 부분이 자꾸 생기면 내 자신감은 좀 떨어지고 평온한 상태는 깨지게 된다.)


문제는 설명을 하지 않고 있는 몇몇 아이들로부터 출발했다. 5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약간 소리를 높여 얼른 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대부분 시작했다. 그런데 10분이 좀 지났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애들을 발견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안 하고 있냐고 물어봤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나서 나가라고 했다. 우물쭈물하고 있어 더욱 크게 소리질렀다. 애들이 나가고 난 후 조금 있다가 불러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해야 시작할지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 적어도 나한테 그런 얘기는 해야 하는 거 아냐? 잘 모르겠으면 물어봐야지. 어떻게 시작하냐고?"

"잘 못하겠다 싶으면 그냥 안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고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그래야 뭔가 배울 수 있는 거잖아."


속사포처럼 쏘아붙였다. 한 아이는 울 거 같은 표정이었다.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 다음 시간에 약간 시간 줄테니 해보라고 했다. 사전에 서로 연습도 하라고 했다. 아이들은 그러겠다고 하고 들어갔다. 


사건이 일단락 된 후, 나는 내 행동에 후회를 느끼고 있다.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대신 뭐가 어렵냐고 묻고 이렇게 해보라고 얘기를 왜 하지 않았지? 간단한 일이었는데... 더구나 그 아이들은 다소 소극적이고 잘 못할 거 같다는 짐작은 이미 하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한 원인은 이렇다. 

첫째, 난 당위가 크다.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때가 많다. 그리고 안하면 왜 안하냐고 소리를 높인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에 위축이 된다. 혹시 내가 그런 위압감을 갖고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아직 나는 애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고정된 사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둘째, 나는 좌절을 충분히 부드럽게 다루지 못한다. 좌절이 올 때 -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 - 회피하고 도망가고 싶거나 아니면 내 뜻대로 그 자리에서 관철시키고 싶다. 그런 좌절 속에 상대방을 이해하고 내 입장을 내려놓기가 잘 되지 않는다. 

셋째, 화가 조금 나 있는 상태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항상 나중이 되어서야 알아차린다. 화가 조금 난 상태에서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누군가 왜 그러냐고 하면 알아차리고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데, 화가 난 생각이 지속되는 환경이라면 화가 점점 치밀어 오른다. 목소리는 높아지고 아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 

넷째, 어떤 상황이 생기면 그냥 두지 않고 꼭 해결하려고 한다. 학교에서는 개입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을 늦게 할 경우 생기는 문제는 훨씬 더 커진다. 하지만 아이들의 내적인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게 더 많다. 그런데도 나는 개입해서 하려고 한다. 잘 되지 않으면 그런 나의 노력을 거절하는 아이들을 비난하게 된다. 이건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삶은 나보다 훨씬 더 크다. 그것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요즘 계속 느끼는데 교사로서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감정의 영역이다. 내 감정과 아이들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섬세하게 대처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이 내가 화를 냄으로 인해 한번 마음이 갇히면 나와의 관계나 배우는 내용에 대한 관계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배움은 관계이다. 좋은 관계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상태에서 나온다. 그것이 오늘 내가 배우는 사항이다. 그리고 이것이 감정에 대한 내 개인적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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