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주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이번 경주 여행은 우리의 2021년 사계절 여행 중 마지막 겨울여행을 장식하는 여행이었다. 그래서 여행 장소를 정할 때도 평소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어 정했다. 여기서 필자와 친구 S의 공통점이 또 하나 등장하는데, 둘 모두 계획파보다는 즉흥파라는 점이다. 여행 관점으로는 여행 기간 내내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보다는 마음이 가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유형이다. 이러한 두 사람이 카페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미 가본 곳인가?, 겨울여행으로 가고 싶은 곳인가?, 교통이 편리한가?’ 등 여러 장소 선택 기준을 세워 몇 시간 가량을 이야기했다. 모든 기준을 만족하진 못했지만, 여타 장소보다도 온 마음으로 정한 결론은 바로 경주의 야경이었다.
사실 야경 자체는 수도권에 사는 우리에겐 굉장히 친숙한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도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인 서울에선 언제든 원하는 때에 밝은 밤을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야경에 목말라 있는 우리가 경주의 야경에서 기대하는 점이라면 경주에 잔재한 예스러움, 근대의 발명인 조명 빛, 그리고 한결같은 달빛이 만난 그 특유의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로운 풍경이다. 그리고 경주는 이러한 우리들의 기대에 한없이 풍요로운 답례를 해주었다.
이번 경주여행에서 뽑은 야경 스팟은 사진 순서대로 동궁과 월지, 월정교, 그리고 첨성대다. 경주의 야경은 마치 그 공간 자체가 타임머신이 되어 과거의 그 어느 시간으로 돌아가 현재로선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든다. 달이 비친 연못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는 누군가의 그림자, 아닌 밤중에 횃불을 들고 바쁜 걸음을 옮기는 심부름꾼, 첨성대에 올라 머나먼 하늘의 별을 관측하는 관료… 시각적인 즐거움뿐만 아니라 상상으로 펼쳐지는 재미 또한 얻을 수 있는 곳이 경주의 야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아쉽게도 동궁과 월지는 2022년 3월 말까지 내부 공사로 인해 연못에 물이 다 빠져있어 이름 그대로 ‘달이 비치는 연못’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경주에 머무는 이틀 밤 내내 달이 너무나도 어여뻤던지라 더욱이 동궁과 월지에서의 달의 연못을 볼 수 없어 정말 아쉬웠다. 휘영찬 달의 모습을 마음껏 보고 싶은 자들은 그 옛날의 신라의 달밤 그 자체였던 경주의 달밤을 보러 가보면 좋을 것 같다.
한 가지 더,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경주는 산책하기 정말 좋은 스팟이라는 점이다. 지대 대부분이 평지이고 마치 제주도의 오름처럼 경주 곳곳에 고분들이 위치해 있어 산책하는 동안 볼거리들이 풍부하다. 고분이라 무섭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보통의 고분이 아닌 언덕과 비슷한 느낌이고 주변에 자연경관이 잘 갖춰져 있어 일상과는 낯선 장소에서 유유자적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든달까.
여행지에서의 밤은 또 다른 의미의 시작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