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만 어려운 포스트잇! 활용하기
벽면 가득히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토론하고 작업하는 모습은 UX 디자인 과정에서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쉽지만 어려운 포스트잇! 활용'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물론 포스트잇은 특별한 사용법이나 활용법이 따로 있는 툴이 아닙니다. 단순함이 가장 강력한 장점인 포스트잇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용자 조사 후 포스트잇을 활용하여 정리할 때, 특히 사용자의 목소리로부터 인사이트를 도출하고자 할 때 알아두면 유용한 몇 가지 팁들을 정리했습니다.
우선 사용자 조사 데이터를 확보해야 합니다. 직접 진행한 인터뷰나 관찰에 의해 얻어진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직접 조사한 데이터가 없더라도 다른 기관이 조사한 자료나 설문에 의한 사용자의 답변, VOC(Voice of Customer-접수된 고객 의견, 불만), 인터뷰 기사,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 등으로부터 사용자 의견, 행동 등 간접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군가가 판단한 결과가 아니라 직, 간접적 사용자 데이터로부터 UX관점에서 직접 인사이트를 얻고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확보된 자료들을 팀원들이 각자 리뷰하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밑줄 등을 이용하여 표시합니다. 모든 자료는 모든 팀원이 빠짐없이 봐야 합니다. 논의는 공통의 자료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자기만 읽고 온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반칙!)
포스트잇을 잔뜩 늘어놓고 붙이고 옮기며 토론하기 좋은 곳이어야 합니다. 평평한 테이블이 있고 포스트잇을 붙일 벽이 있으면 좋습니다. 이동 가능한 대형 폼보드를 활용하거나 전지를 벽에 붙이고 그 위에 작업을 해도 좋습니다. 작업에 몰입한 후 몇 시간, 하루, 며칠이 지나도 포스트잇이 유지될 수 있어야 합니다. 통찰을 얻기 위한 과정은 논리적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중간의 시간적 텀을 갖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도 포스트잇들이 붙어있던 공간적인 맥락이 유지될 수 있다면 아주 빠르게 재 몰입이 가능해집니다.
공통자료에 대하여 사전에 각자 리뷰를 해 온 상태에서 팀작업을 시작합니다. 공통자료를 차례로 검토하면서 사용자의 목소리를 추출하는 과정입니다.
포스트잇 한 장은 가장 작은 단위의 외장 메모리로 간주합니다. 한 장은 하나의 내용(의미)을 담아야 하고 누가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소 단위들이 연관성과 의미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면서 더 크거나 중요한 의미단위가 되고 또 분화됩니다. 평소 습관대로 포스트잇을 '메모지'로 인식을 하는 순간 포스트잇 한 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말보다는 글이 부담스럽습니다. 이 때문에 포스트잇에 적어서 팀이 볼 수 있게 붙이는 행위를 조심스럽고 어렵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 반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결론을 내야 한다는 강박증을 버리세요! 가능한 모든 것을 적고 어설픈 생각일지라도 남들이 이를 통해 자극받고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나중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구겨서 버리면 그만입니다! 남들보다 많은 것을 적어낸 것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 무엇을 적을지 어떻게 표현하여 적을 지에 대해 생각을 그대로 소리나게 밖으로 말하는 방법이 도움이 됩니다(Think aloud). 이것만으로도 팀원들의 생각을 자극할 수 있고 지금 적으려 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더 좋은 표현을 찾을 수 있습니다.
포스트잇에 표현되는 글은 누가 읽더라도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명료한 문장을 사용해야 합니다. 단어만 나열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동사를 포함한 문장의 형태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행동 중 아침에 일어나 반드시 물 한 컵을 마시는 습관을 포착했고 이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었다면, 단순히 '물' 또는 '물 마시기' 혹은 '갈증'이라고 쓰는 것보다는 '아침에 일어나 항상 물 한 컵을 마신다'라는 표현이 좋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아침에 잠에서 깨면 항상 갈증을 느낀다'라는 것도 별도의 포스트잇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단어 만을 나열했을 때 본인은 그 의미를 알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포스트잇에 적어야 할 내용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관찰된 사실, 행동, 사용자의 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적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실'이어야 합니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담아낸 듯한 사진 한 장의 경우에도 찍는 사람의 의도가 들어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관점을 가지고 사용자 데이터를 이해하고 이에 따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포착해야 합니다.
'사실' 외에도 포스트잇에 표현되는 대상 중에는 '해석'이 있습니다. '사실'을 조합하거나 이면에 있는 의미를 이해하면 '해석'이 됩니다. 여러 행동들과 사실들이 의도에 따라 엮이면서 결국 왜 그렇게 되는지(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오게 되고 이러한 작은 통찰(insight)들이 '해석'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해석'은 조사 데이터에서 중요한 점들을 포착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도 있고 나중에 이를 재분류하고 그룹핑하는 과정에서 유추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사실'과 '해석'에 대한 예시입니다.
상황
중학생 자녀가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방문이 닫혀 있으면 엄마는 음료나 간식을 준비해서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간다. 간식을 전달하고 열심히 하라는 응원의 말을 한 후 방을 나오면서 문을 반쯤 열어둔다.
포스트잇으로 포착 가능한 '사실'
아이가 공부할 때 방문이 닫혔는지 확인한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간식을 준비한다
방문이 닫혀 있을 때는 항상 노크를 하여 허락을 받는다
간식을 주면서 덕담을 한다
아이의 방을 나올 때는 방문을 반쯤 열어둔다
포스트잇으로 포착 가능한 '해석'
아이가 방에 혼자 있을 때에는 무엇을 하는지 내가 알 수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의심받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디자이너들은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훈련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자신과 주변의 크고 작은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작은 문제를 발견하는 즉시 해법으로 연결하는 직관이 발달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분명 해결 과정에서의 능률을 높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복잡한 문제를 협업을 통하여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문제 파악과 정의, 더 나은 해법의 기회를 놓치게 하거나 과정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렵게 합니다. 즉, 판단이나 해법은 사용자를 충분히 이해한 후에 하도록 합니다. 사용자의 말, 행동으로부터 의미를 찾아가는 단계에서 판단과 해법이 뒤섞이게 되면 사실로부터 유추 가능한 의미 있는 해석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다음은 이 단계에서 생각할 수 있는 판단 또는 해법의 예입니다. 나중에는 결국 맞을 수 있겠지만 현재 단계에서는 너무 섣부른 감이 있습니다.
다음은 위의 '상황'에 대하여 성급하게 도출한 '판단'과 '해법'의 예입니다.
불신 해소 방법이 필요
자녀 감시 방법이 필요
IoT 기술을 활용한 자녀방 모니터링 앱
예를 더 들어보면
새 액자를 구입하여 벽에 걸고자 하는데 못은 있지만 망치가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섣부르게 판단을 하면 '망치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망치는 못을 벽에 박기 위한 하나의 해법에 불과합니다. 액자가 벽에 걸려(붙어) 있게 하기 위해 꼭 못에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 못을 박기 위해 꼭 망치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더 사고를 확장해보면 액자를 새로 구입하여 실내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구입한 액자가 꼭 벽에 걸려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무엇을 문제로 채택할 것인가는 사고의 확장에 따라 다양한 수준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디자이너가 임의로 떠올린 해법을 문제 또는 사실로 착각하여 적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면 ^^
'요금제를 바꾸고 싶은데 어떤 게 있는지 몰라서 혼란스럽다'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경우에 대하여 연구자가 '고객지원 서비스가 부실한 거네!'라고 판단한 후 '고객지원의 문제'라고 써 버리는 경우입니다. '요금제를 바꾸고 싶은데 어떤 게 있는지 몰라서 혼란스럽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사용자가 겪는 문제를 공감하기에 좋은 표현입니다. 이후 왜 요금제를 바꾸고 싶은 건지, 왜 혼란스러운지에 대해 논의하고 다양한 해법의 기회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잇으로 표현할 때에는 화자를 사용자로 간주하고 사용자의 목소리로 표현하도록 합니다. 위에 언급한 예시들의 문체를 사용자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용자의 관점, 사용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용자가 직접 한 말을 다듬어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해석을 사용자의 목소리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따옴표"를 붙여보면 사용자의 목소리로 표현이 되었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목소리로 표현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표현 형식을 알아두면 도움이 됩니다.
~가 중요하다.
~가 필요하다.
~를 원한다.
~가 힘들다, 어렵다.
~가 되어야 한다.
다음과 같이 여러 정보를 조합하여 해석이 들어간 표현도 좋습니다.
~하기 때문에 ~가 중요하다.
~인 경우에는 ~를 한다(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면, 누가 보더라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용자 데이터를 팀이 함께 보면서 포스트잇을 붙여나가도 좋고, 각자 말없이 포스트잇을 적은 후 취합을 해도 좋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포스트잇을 작성 후 벽에 붙일 때에는 반드시 팀원들 모두에게 읽어주어 어떤 내용이 벽에 붙는지 알게 해야 합니다. 포스트잇만 보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고 했죠? 가급적이면 부연설명 없이 포스트잇에 적은 문장만 읽어주는 것으로도 설명이 끝날 수 있도록 명확한 문장이면 좋습니다. 팀원들은 새로운 포스트잇의 내용을 확인하면서 이를 통한 연쇄반응으로 추가적인 포스트잇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즉석에서 공감하고 문장을 떠올리며 소리를 내어 작성하고 바로바로 같이 붙여나가도록 합니다.
중요한 사용자 데이터를 포스트잇으로 옮기는 작업을 마쳤다면 이후의 논의는 포스트잇으로 표현된 것만을 가지고 진행하도록 합니다. 나중에라도 추가할 것이 있다면 앞선 방법을 거쳐 추가를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팀과 공유되지 않은 자기 속으로만 알고 있는 내용을 전제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포스트잇으로 표현된 '사실'과 '해석'이 단단한 토대가 되어 이 위에 불완전하지만 다양한 기회요소들, 아이디어들, 가설을 얹고 토의하고 발전시키고 폐기하는 과정을 안정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벽에 붙은 포스트잇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의미와 연관성에 따라 클러스터링을 해 나갑니다. 뭉치고 흐트러뜨리는 과정을 통하여 팀이 발견한 중요한 사항들, 기회, 방향성을 탐색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이후의 과정은 다른 글을 통해 다시 포스팅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사용자 조사 데이터를 팀이 해석을 하는 과정에서 포스트잇을 활용하는 방법, 그중에서도 기본기에 해당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위의 과정을 통하여 남들의 해석이 아닌 여러분들의 팀의 해석을 만들어 나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은 pxd 블로그에도 발행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