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난해 한국인들의 사회적 고립도가 34.1%로 역대 최고에 달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통계청이 2년 마다 조사하는데 2019년(27.7%)보다 6.4%포인트 증가했다 하지요?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장기화가 1인 가구, 고령층 증가와 맞물리면서 고립 정도가 심해졌다는 해석입니다.
지난 해 11월 발표된 <2021 레가툼번영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사회적 자본’ 분야에서 147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전년도(2020) 139위에서 8계단이나 더 하락한 순위입니다. 사회적 자본 분야는 개인 및 사회적 관계, 제도적 신뢰 등을 측정하는 데, 이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레가툼연구소는 이번 지수를 발표하면서 사회적 자본 중 ‘개인 및 가족 관계’ 지표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가족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보고한 사람들의 비율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고 하네요. 보고서는 가족 유대의 약화 징후로 최근 수십 년 동안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이혼율의 급격한 증가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의 이혼율이 1970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가족 유대감의 약화는 번영과 행복의 중대한 위협입니다. 가족은 행복에 커다란 기여를 하며, 모든 비공식 사회 제도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유대감이 강한 가족은 아동의 전반적 성취도와 행복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가족 붕괴의 영향이 특히 미래세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인 가구가 40%를 돌파했다는 데이터는 가족관계가 해체되었다는 단적인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 가족관계가 개인의 불행을 야기해 온 경우도 많아 부정적으로만 볼 것 아니라는 견해도 있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나라들을 보면 가족과 공동체가 살아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탄이나 코스타리카는 아직 저개발 국가이니 그런 전통이 남아있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해도, 북유럽은 어떤가요? 철저하게 개인적 삶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가족과 공동체를 유지함 속에서 행복한 개인과 사회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지요.
레가툼지수에 앞서 지난 해 3월 발표된 <2021 세계행복보고서>에는 한국의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 분야 순위가 100위권으로 나타났습니다. 97위로 전년 대비 두 계단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점수는 0.799로 동일했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었다는 것이지요. 이 지표는 “문제(어려움)가 생겼을 때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률입니다. 이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중 약 8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꽤 높은 응답률로 보이시지요?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세계 최고 행복국가로 알려진 북유럽국가들은? 아이슬란드가 1위(0.983),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가 모두 0.954점으로 공동 2위를 차지했습니다. 모두 0.95점 이상입니다. 이들 나라 국민들은 위 질문에 열이면 열 ‘YES!’라고 답했다는 것이지요.
한국의 위 지표(0.799)를 뒤집어 보면 우리 국민의 20%, 즉 5명 중 1명은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전혀 없어, 완벽히 고립돼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말해주는 가슴 아픈 지표입니다. 저는 이 지표야말로 우리 국민의 행복도를 저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지표라 강조해 왔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도 밀접히 관련 있는 지표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 보다 더 심각한 수치(사회적 고립감 34.1%)가 한국 정부의 통계청에 의해 공식 조사 발표되었으니, 망치로 크게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5명이 아니라 이젠 3명 중 1명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정말, 이 심각한 상황을 어찌해야 할까요?
<참조> 레가툼번영지수(Legatum Prosperity Index)
레가툼번영지수는 영국의 싱크탱크인 레가툼연구소가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2007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지수입니다. 1인당 GDP 같은 경제적 지표에만 의존하는 국가 번영에 대한 전통적인 거시경제적 측정을 넘어, 사회적 웰빙까지 반영하여 개인들이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국가인지 평가하는 프레임워크입니다.
레가툼지수는 번영에 필수적인 세 가지 영역(포용적 사회, 열린 경제 및 자율적 개인: 아래 그림 심볼 색상 구분) 아래, 각 4개의 지표로 모두 합해 12개 지표로 구성돼 있습니다. 안전보안, 개인자유, 거버넌스, 사회적 자본, 투자환경, 기업조건, 인프라 및 시장접근, 경제적 질, 생활환경, 건강, 교육, 자연환경 등 12개 분야(아래 그림 상단 심볼마크 순)를 평가합니다.
그림처럼 2021년도에도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국가들이 최상위권에 올랐습니다. 이는 매년 3월 공개되는 세계행복보고서 순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세계행복보고서에서는 핀란드가 4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레가툼지수에서는 덴마크가 최근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차이 정도인데, 북유럽국가들 간 부러운 순위 경쟁에 불과합니다. 이들 나라는 12개 지표 중 사회적 자본(위 그림 4번째 항목)과 개인자유(2번째), 거버넌스(3번째) 항목에서 항상 1~2위를 다투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건강(2위)과 교육(3위) 경제적 질(9위) 분야에서는 최상위에 속하나, 사회적 자본 분야는 147위로 세계 최저수준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일본도 비슷합니다). 전체 순위는 29위로 GDP 순위와 비슷한데, 세계행복보고서 순위 62위 보다는 높다고 자족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