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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Apr 27. 2023

코로나와 갑작스러운 귀국

인도네시아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인도네시아로 떠난 지 어언 5년이 지난 2020년, 코로나로 인해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2021년에는 한국으로 돌아왔을 터였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귀국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처지가 됐다. 2020년 3월, 자카르타로 떠난 지 4년이 넘어 5년째 접어들고 있던 시점이었다.


 자카르타의 NGO 사회적 기업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는 모두 3명, 내가 직접 가르쳤던 학생들이다. 파이살, 리즈키, 그리고 아롭. 이 세명의 친구들은 열심히 기술을 배워서 손선생님처럼 훌륭한 목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목수라는 직업이 '노가다' 취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직업 인식과 낮디 낮은 임금 수준을 생각하면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인도네시아에서 목수가 되고 싶다니... 한국도 예전에는 목수를 노가다쟁이 취급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한국의 목수는 하루 일당이 25만 원이고, 한 달에 20일을 일하면 500만 원을 버는 어엿한 기술직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아직도 몸 쓰는 일을 천시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는데, 단순히 급여가 적을 뿐만 아니라 안전이나 위생문제 등 업무 환경이 매우 엄청나게 열악하다. 그렇지만 내 제자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좋은 목수가 되고 싶다고 하고 있다. 이런 친구들을 남겨두고 갑작스레 나 혼자 한국으로 떠나오게 됐다.


  보통 자카르타의 가구 공장 노동자는 월급 25만 원 정도고, 주 6일(토요일은 오전) 근무다. 가구 공장의 환경도 열악하고 급여가 너무 낮아서 취직시켜 내보내기에는 우리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가르친 학생들을 직접 고용해서 월급을 주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게 해 주자는 취지로 자카르타에 조그마한 가구 공장을 사회적 기업 형식으로 만들었다. 물론 직업학교도 동시에 잘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가구공장과 직업학교 둘 다 버려둔 채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터진 것이다. 


 직업학교 학생들은 현지 강사 '리코와 젠다'가 맡아서 가르치고 있으니 걱정이 없다. 그런데 현지에서  사회적 기업 가구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들은 갑자기 관리자를 잃어버리고는 자기들끼리 공장을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학교는 잘 돌아가지만, 공장은 매끄럽게 운영되지 못하는 상황.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에 있는 학교와 공장을 원격으로 운영해야 한다.


파이살, 리즈키, 아롭, 든든한 우리 직원들 출근 인증샷 / 다들 인물이 훤하다.


 NGO 가구공장에는 우리 졸업생 친구들에게 월급을 30만 원씩 주고 있었다. 자카르타에서도 나쁘지 않은 월급. 친구들에게 월급을 끊기지 않고 주려면 내가 한국에 있서도 어떻게든 공장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나의 자카르타 가구 공장 원격 운영이 시작됐다. 파이살과 리즈키, 아롭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모인 Whatsapp 단체 대화방이 우리의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접이식 캠핑 테이블 신제품 제작을 위한 문자 소통 장면

 자카르타에 있을 때는 NGO 공장에서 기계가 고장 나면 직접 A/S 를 부르고, 소모품이 떨어지면 직접 사 왔다. 그런데 이제 관리와 운영을 내가 직접 할 수 없게 됐다. 목공 기계가 고장나서 수리를 해야 하는데 아롭에게 직접 기계 회사에 연락해서 A/S 신청을 하라고 했더니, 신청이 접수되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접수 하는데'만 일주일 걸렸다. 그리고 A/S 기사는 한참이 더 지난 후에 공장에 방문했다.


 무엇 보다도 기계 수리와 세팅이 정확하게 됐는지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목공 기계는 그냥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세팅이 제품의 가공 퀄리티를 결정하기 때문에 세팅도 중요한데, 우리 학생들, 아니 우리 직원들은 기계를 정확하게 세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내가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몇 번 본 적이 있으니 직접 한 번 해보라고 엉덩이 토닥토닥해주는 수밖에... 그것도 텍스트 메시지로... 


 하지만 이렇게 원격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공장을 운영하는 것도 한두 달이 지나며 점점 익숙해졌다. 직원들은 아침에 지각하지 않고 제시간에 출근하면 출근 인증샷을 보내왔고, 오후에 퇴근할 시간이 되면 그날 작업한 작업물의 사진을 보내고 퇴근 인증을 했다. 이윽고는 내가 텍스트 메시지로 제품 도면을 보내주고, 제작 순서를 설명해 주면 우리 직원들이 새로운 제품을 스스로 만드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티크로 제작 한 캠핑용 덱체어 완성품이 잔뜩 쌓여있다


 세상 일이란 것이 닥치면 하게 되는구나 싶었다. 불가능할 것 같던 인도네시아의 가구 공장 운영이, 그것도 평균 나이 20살인 아이들 셋이 운영하는 가구 공장이 그렇게 돌아갔다. 우리 학생들에게 일을 맡기니 책임감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등 업무 능력이 껑충 좋아지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이렇게 원격으로 사회적 기업 공장을 운영하면서 이 친구들이 만든 도마를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수출해서, 한국에서 판매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인도네시아 업무를 끝내는 2021년 12월까지 1년이 훌쩍 넘는 기나긴 원격 기간 동안 한국에서 인도네시아 공장을 원격으로 운영하면서 단 한 번도 월급이 끊기거나 밀린 적이 없다.  

 

 그렇게 나는 2020년 초 갑작스레 빈 손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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