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 도마 원데이 클래스를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 나
코로나 때문에 빈 손으로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한국에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다. 인도네시아에 가기 전에는 분명 서울 한 복판에서 번듯한 목공방을 운영했었는데, 인도네시아에 갔다 오니 내가 운영하던 목공방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고, 고향이 지방 소도시였던 나는 서울에 집은 커녕 이 한 몸 뉘일 방 한 칸 없었다.
인도네시아에 다녀온 5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인 2010년 초반에는 서울에 목공방이 그리 많지 않았다. 서울의 각 구마다 목공방이 한 두 개 정도 있었다. 홍대가 있는 마포구에는 목공방이 좀 많았고, 그 외 다른 구에는 목공방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목공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아서 서울에서 목공방을 운영하는 사람들 한 다리 건너면 알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2021년의 서울에는 목공방이 너무 많이 생겨서 유행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을 정도였다.
요즘 목공방들은 원목가구를 제작을 기본적으로 하지만, 가구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강의, 즉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의 목공방도 많다. 전국의 수 많은 목공방에서 운영하는 원목도마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를, 인도네시아에 가기 전, 나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효창공원 앞에서 목공방을 운영하던 2014년도에는 인터넷에서 '원목도마'라고 검색하면 생선가게에서 쓸 법한 네모 반듯한 나무 도마가 검색 결과로 나왔다. 손잡이가 달린 원목도마를 검색하려면 '이케아 도마'라고 검색해야 비로소 단순하게 생긴 손잡이 달린 도마 사진이 한두 장 나왔다. 우리가 지금 흔히들 알고 있는 손잡이가 있는 예쁜 도마는 인터넷에 검색해도 파는 곳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아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많지 않은 손잡이가 있는 원목 도마를 만들어 놓고는, 참가비, 재료비, 참가시간 등을 공지해서 이런 걸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를 합네~ 하고 수강생을 모집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모였고, 제법 운영이 잘 됐다. 한겨레 신문과 SBS 뉴스 같은데도 나왔고, 원데이 클래스 외에도 목공을 진지하게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2014년 당시만 해도 목공은 한 달 정도는 배워야 뭔가 나무토막 자르는 법 정도의 기초목공은 배울 수 있을법한, 뭔가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거창한(?) 취미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목공 수업을 하루 만에 체험해 볼 수 있는 캐주얼한 목공 원데이 클래스를 대담하게 시작한 것이다. 그랬었던 원목도마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가 지금은 우리나라 전역에 있는 많은 목공방에서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
아무튼 한국에 돌아와 서울에서 목공방을 다시 차리고 예전처럼 주문가구를 만들고, 원목도마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와 같은 목공 수업을 진행할까 해서 상황을 살펴보니, 서울에는 이미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목공방이 너무 많았다.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과는 세상이 너무 많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목공방을 다시 개업하는 것은 포기.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와서는 곧장 고향 안동으로 내려왔는데, 안동에는 운영이 아주 잘 되는 목공방이 하나 있었고, 목공방이 두 개 있기에 안동이라는 도시는 너무 작았다.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ㅠㅠ. 안동이 목공방이 두개 있기에는 비좁은 동네일줄을 친애하는 이육사님도 몰랐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안동에다가 목공방을 차리려는 생각도 일단 접었다.
그러고는 인도네시아에서 만든 원목 도마를 한국에 갖다 파는 일을 했는데, 그렇게 도마를 팔아서 들어오는 수입이 최저임금 수준도 안 됐다. 아무튼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사들고, 싸들고 들어온 도마를 고향집 장롱 위와 옆에 잔뜩 쌓아두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라도 하면 가지고 있는 티크 원목 도마를 하나씩 가져다 선물로 주곤 했다. 한 친구가 결혼한다고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반가운 마음에 친구를 만나러 나갔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도마 중에서 제일 좋은 도마를 찾아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 가지고 나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도마를 결혼 선물로 준 그 친구가 도마 만들기 수업으로 기업체 출강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 친구가 기업체 HRD관련 일을 하는지도 몰랐고(안 친했나봄 ㅎㅎㅎ) 갑자기 훅 들어와서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는 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연히 나의 원목도마 만들기 수업은 다시 시작이 됐다. 이번에는 공방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무토막을 싸들고 외부로 나가서 진행하는 수업이다. 잘 됐지 뭐, 어차피 나는 이제(2021년 당시) 한국땅에 목공방도 없는데(인도네시아에는 있었지... 코로나 때문에 갈 수는 없었지만), 외부에서 목공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친구가 도와주니 기쁜 마음으로 나설 수밖에. 나는 준비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정말 정성껏 준비해서 도마 만들기 수업을 하러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첫 수업 준비를 위해서 얼마나 정성껏 짐을 싸고 준비물을 챙겼는지 누가 봤으면 노총각이 선이라도 보러 나가는 줄 알았을게다. 인도네시아에서 5년 동안 말도 잘 안 통하는 순수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오랜만에 한국에서 한국어로 목공 강의를 다시 진행하니 감회가 정말 새로웠다.
외부에서 하는 원목도마 만들기 수업은 공방에서 하는 원목도마 만들기 수업과는 달리 도마의 손잡이를 내 맘대로 자르고 깎는 과정이 과감하게 생략된 채 진행된다. 형태가 이미 잡혀있는 도마 반제품을 사포로 다듬고, 거기에 자기가 원하는 문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이니셜 등을 나무에 각인하고, 오일을 칠해서 작업을 마무리를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미 형태가 만들어져 있는 도마에 사포질을 몇 번 하고 오일 칠을 하는 정도로는 목공 체험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짧은 세 시간의 출강 강의 동안 참가자들이 각자 정성스레 손질한 나무에 이니셜도 새기고 자신만의 정성이 새겨진 물건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들도록 재료를 신경 써서 준비했다. 강의에 쓰이는 티크 원목도마의 반제품이 인도네시아에 있는 우리 학생들 아니, 우리 직원들이 만든 제품이라는 것과 도마가 탄생하게 된 NGO 활동에 대한 이야기, 사회적 기업의 탄생 비화 등을 강의에 버무려 넣었다. 그리고 원목도마 관리법과 목재의 특성에 대한 상식 같은 내용도 강의 중간중간에 포함시켜 그럴듯한 강의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5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나는 다시 한국에서 원목도마 강의를 시작했다. 때는 코로나로 인한 집합제한 규제가 가장 심하던 2021년 중반이었는데, 한 번은 서울도시주택공사에서 도마 만들기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 집합규제가 점점 심해져서 다수의 인원이 한 장소에 모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 모든 강의가 온라인으로 대체될 예정이니 강사들은 온라인 강의를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네?!
목공 강습을 목공방이 아니라 기업체 회의실에서 진행하게 된 것도 생소한 상황인데, 목공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라구요? 또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오기 있기 없기? 그래 뭐, 못 할 것도 없지. 필요한 준비물을 상자에 하나하나 챙겨서 나누어 담고 포장해서 참가자들의 집으로 일일이 택배로 보냈다. 그리고 강의 당일 목공 수업을 들으러 모인 사람들을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만났다. 코로나가 바꾸어버린 이상한 세상이다. 목공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다니.
코로나가 휩쓸고 간 불과 몇 년 사이 세상이 정말 많이 변해서, 이 글을 쓰는 2023년도에는 온라인 목공 강의가 이미 상당히 많이 생겼고, 그중에는 유료 강의도 많다.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를 한 편의 글에서 두 번 쓰게 될 줄이야... 그런데 정말 격세지감을 너무 빠르게, 너무 자주 느끼게 되는 세상이다.
목공이란 무릇 한 달 정도는 배워야 기초 수준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던 세상에서, 목공 원데이 클래스가 어느 순간 우리에게 훅 다가왔다. 그리고 목공 수업의 장소가 목공방을 벗어나 회사 강당 혹은 회의실로 옮겨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온라인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목공이란 톱밥이 날리고 나무 냄새가 나야 하는것 아닌가? 그런데 21세기에는 목공 키트에 준비물을 담아 보내주고 톱밥이 날리는 경험을 온라인 수업을 통해 경험하는 그 것이 된다. 이렇게 목공은 한달은 배워야 한다고 하던 진지한 목공 강의만이 존재하던 세상에서 온라인 목공 강의가 특별하지 않은 세상으로까지 오는데 불과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일들을 직접 헤쳐 나오긴 했지만 폭풍우의 한가운데서 격랑에 흔들린 기분이다. 내 팔자는 왜 이런 걸까?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