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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02. 2024

50에 건축사 시험에 합격한 작은형

고등학교 선택에 고민하지 않았었다.

작은형이 2년 먼저 다니고 있던 서울공고 건축과로 정했다.

실업계였지만 인문계 커트라인보다 높았다.

중학교 3년 성적은 정확히 중간이었다.

확신할 수 없었지만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될 줄 알았고 자연히 후배가 되었다.


고등학교 3년 성적도 딱 절반이었다.

졸업 후 취업은 두려웠다.

도망 반 기대 반으로 수능시험을 봤다.

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며 운 좋게 입학했다.

대학 졸업까지 15년 걸렸다.

그 사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직장에 다녔다.

전공과는 거리가 먼 토목 회사였다.

서른에 시작해 여전히 같은 일을 하는 중이다.


작은형은 고등학교 졸업 전 취업을 나갔다.

그때부터 설계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직장에 다니며 전문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도 계속 같은 일을 했다.


우리 형제는 일상을 공유하지 않았다.

각자 먹고살기 바빴다.

직장 생활에 고충을 나눌 만큼 살갑지도 않았다.

각개전투로 살아남았다.


작은형은 꽤 긴 시간 설계회사에 다녔다.

어느 때는 전업해 이 일 저 일 했었다.

펜션 운영, 네트워크 사업, 광어 양식장, 석재시공 회사까지.

그러다 결혼했고, 제주도에 터전을 마련했다.

그곳에서 다시 설계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건축사 시험도 준비했다.


실무 경험은 많았지만 이론과 실기가 부족했다.

매년 시험에 도전했지만 합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필기도 여러 차례 본 후 겨우 붙었다.

이어진 실기 시험도 매년 두세 차례 봤다.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끈질기게 도전했다.

한 과목이 합격하면 다른 과목이 과락이었다.

같은 과목을 세 번 이상 봤던 것 같다.


시험 보러 간다고 웬만해서는 알리지 않았다.

가족들이 기대할까 봐서.

온다는 말도 없이 다녀가길 몇 차례.

지난달 시험도 소리 없이 치르고 갔다.


엊그제 우연히 건축사 시험 합격자 발표 뉴스를 봤다.

내심 기대했지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설레발 떠는가 싶었다.


오늘 아침, 출근 전 우울한 내용으로 글을 남겼다.

그런 글을 쓰면 기분이 더 바닥을 긴다.

일부러 단톡방마다 웃는 이모티콘을 남겼다.

그러는 사이 뜬금없이 작은형에게 카톡이 왔다.

올 것이 왔다.

사진을 열어보고 소리 지를 뻔했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냉큼 전화했다.


형제의 대화는 바짝 마른 나뭇잎 같았다.

"축하해. 애 많이 썼네. 드디어 해냈네."

"고맙다. 턱걸이로 끝냈다."

전화를 끊기까지 2분도 안 걸렸다.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해 단톡방 몇 곳에 소식을 알렸다.

나를 잘 아는 이들은 기꺼이 축하를 전했다.

이 날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내가 이렇게 들뜨는데 형은 오죽할까.


작은형은 올해 50이다.

앞으로 20년만 건축사로 일하겠단다.

그 뒤 남은 시간은 즐기고 싶단다.

제주도에서.


앞으로 어떤 인생이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 와중에도 분명한 한 가지는 있다.

꿈은 언제든 어떤 모습으로든 이루어진다고.

포기하지 않으면 꼭 이루게 된다고.

삶은 믿는 대로 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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