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반죽

2장. 소금 5g이 빠진 빵

by 권소영

베이킹 강사 시절, 잊을 수 없는 실패작이 하나 있다.

밀가루, 우유, 버터, 설탕, 계란... 빵의 모든 재료가 다 들어갔고,

만드는 과정에도 실수가 없었다. 구워져 나온 모양도 그럴싸했다.

그런데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뭔가 이상했다. 맛이 밍밍하고 빵이 힘이 없었다.


다시 찬찬히 되짚어보니 소금 5g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고작 5g. 전체 재료에 비하면 정말 작은 양이었지만, 그 작은 것 하나가 빠지니 빵 전체가 생명을 잃어버렸다.


나라는 사람도 그런 것 같다.


분명 좋은 재료들이 모여있고, 나름 열심히 살았고,

탄탄히 나를 구축해 왔는데 아무 맛이 안 나는 것 같은 내 모습. 내 삶. 그게 지금 나의 모습이 아닐까.


무엇이 빠진 걸까? 내 인생의 소금 5g은 무엇이었을까?


내 마음과 감정을 표현해 본 적이 없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말. "이제 네가 잘해야, 아빠 없는 자식 소리 안 듣는다."


이 말은 나에게 "이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신호였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했고,


늘 반장을 맡아왔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억울하게 몇몇 친구들과 함께 담임선생님께 불려 간 사건이 있었다.


가정 기록부를 보시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잘해야 너희 엄마가 힘들지 않지."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나는 잘못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내 감정이나 억울함을 표현하는 것조차


엄마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안의 소금은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선교 단체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황장애와 불면증이 찾아왔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고, 진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통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 "네가 복음을 아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상태가 될 수 있니?"


그건 질문이 아니라, 판단이었다. 나는 또 입을 닫았다. 고통을 말할수록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 진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다시 한번 금지되었다.


그런 패턴은 엄마가 되어서도 이어졌다.


처음 엄마가 되고 낯선 육아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유 수유, 산후조리, 산후우울감... 나는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뭐가 그렇게 힘드냐? 아이를 위해선 엄마가 그렇게 원래 희생하는 거다. 엄마의 몸보다 아이에게 좋은 걸 해줘야 된다"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나는 또다시 내 힘든 마음을 숨겼다. 그래서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웠고,


아이가 잘 자라 가는 모습을 사진 찍어 올리는 것이 나를 증명하는 듯한 마음도 있었다.

'좋은 엄마'라는 겉모습은 완벽했지만, 내 진짜 마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평생 나 자신이라는 빵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 하나를 빼고 살아왔다.


내 진짜 마음, 내 솔직한 감정,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할 권리. 그 소금 5g이 빠진 채로 살아온 것이다.


엄마가 되고 나를 다시 찾아가는 치유의 여정을 걸어보니,


내가 가장 어둡고 힘겨웠던 청소년기 시절 아이들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그 아이들이 손으로, 베이킹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마음들을 반죽하고 치대고 구우면서 조금씩 꺼내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마음을 들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베이킹을 통해 전하고 싶은 진짜 메시지였다. ​


너의 마음, 너의 이야기, 너의 감정은 충분히 소중하고 표현될 자격이 있다는 것.


내 인생의 소금 5g을 되찾는 일. 그것이 진짜 맛있는 빵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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