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반죽

1장. 엄마가 되기 전, 나라는 반죽

by 권소영


빵집에 가면 늘 생각한다.

적은 재료로도 깊은 맛을 내는 빵이 있고,

많은 재료로 다양한 풍미를 자아내는 빵도 있다는 것을.

그런데 내 삶은… 어떤 레시피에도 없는, 전혀 다른 재료로 반죽된 빵 같았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그날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국가정보원 서기관으로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셨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선택을 하셨다.

그 순간을 나는... 목격했다.

세상은 그대로였지만, 나는 살아 있지만 죽었다.


그날 이후, 나는 오래도록 회색빛 시간 속에 살았다. 기억을 되짚어보려 해도 초중고 시절은 마치 낡은 테이프처럼 끊겨 있다.


기쁨도, 슬픔도, 두근거림도 없이 그냥 그렇게, 아무렇게나 지나간 시간들.

마치 발효되지 않은 반죽처럼, 나는 부풀지도 않은 채 굳어져 있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어 우연히 따라간 수련회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하나님. 그 만남은 내 안의 꺼져 있던 불씨를 다시 켜게 했다.

내 인생에도 빛이 찾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빛을 동서남북으로 전하고 싶다는 열망.

나는 선교사가 되었다. 삶을 건 마음으로, 5년간 전심으로 그 길을 걸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마치 완벽하게 발효된 반죽처럼 부풀어 있었다. 세상을 향해 펼쳐지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빛으로 나아가던 발걸음에, 설명되지 않는 어둠이 찾아왔다.

공황 증상, 불면, 호흡곤란. 몸은 신호를 보냈지만, 마음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을 바쳤던 삶에 왜 이런 고장이 찾아온 건지...

나는 이유 없는 실패 앞에서 무너졌다.

그리고 1년 6개월간, 세상과 단절된 채 내 방 안에 웅크려 있었다. 죽고 싶었지만 죽을 용기도 없었다.

마치 오븐에 들어가지 못한 반죽처럼, 나는 그저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반죽은 시작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커피와 빵을 배우기 시작했다.

제과제빵 학원을 다니며,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빠져들었다.

하루 4시간 수업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선생님께 부탁드려 다음 수업까지 연달아 8시간을 보내곤 했다.

뜨거운 오븐, 손끝의 촉감, 밀가루와 버터의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처음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빵 냄새.

베이킹은 내게 단지 기술이 아니었다. 무너진 마음을 손끝으로 다시 빚는 일이었다.

말로는 꺼낼 수 없던 감정들이, 베이킹을 통해 조금씩 말이 되기 시작했다.

밀가루가 물과 만나 반죽이 되어가듯, 나도 조금씩 다시 나다워지고 있었다.


열정적인 내 모습을 지켜보신 선생님께서 보조강사를 제안해 주셨다.

나는 제과제빵 자격증 강사가 되어 나처럼 새로운 꿈을 품고 찾아온 학생들과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냈다.

반죽을 주무르며, 나는 조금씩 나를 다시 빚어가고 있었다.


함께의 기쁨을 확장시켜 주는 케이크 디자이너가 되기도 하고,

더 건강한 재료를 연구하는 비건 베이커의 꿈도 꿨다. 베이킹은 내 안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꿈들을 하나씩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가게를 열어, 나처럼 마음이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 한 조각을 건네고 싶다는 꿈도 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로 다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을 만났고,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첫아이를 품게 되었다.

기쁘고도 놀라운 변화였다. 하지만 그 기쁨 뒤에 따라온 것은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다시 멈추는 시간이었다.

첫째 아이는 4kg이 넘는 건강한 아이였고, 초산에 자연분만이었던 나는 산후 후유증이 심하게 찾아왔다.

유난히 힘들었던 육아는 손목을 무너뜨렸고, 척추도 휘어졌다.

결국 병원에서는 "몸을 쓰는 일은 하시면 안 됩니다"라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다시 빵을 만들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마치 발효가 멈춘 반죽처럼, 나의 꿈도 그 자리에서 멈춰야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멈춤이 끝이 아니었다.

반죽이 잠시 쉬어야 더 좋은 빵이 되는 것처럼, 내 마음도 그 시간 동안 천천히 다른 모습으로 발효되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 그것도 하나의 반죽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