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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갱 Nov 19. 2018

나도 힘들어

감정의 쓰레기통




적당한 온도 시즌 1의 내용 중에 민지의 친구 희은과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희은은 주인공인 민지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대한다. “짜증 나.”라는 말을 자주 하며, 민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본인의 불만을 토해 내기 바쁘다. 민지가 희은을 정말 필요로 했을 때조차 희은은 민지를 위해 주지 않았다.
감정의 쓰레기통.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이거야!” 했었다. 정말 잘 붙혀진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으면 ‘감정의 쓰레기통’같은 말이 생겼단 말인가!

감정의 쓰레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쌓인 감정의 쓰레기들을 해소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타인에게 본인의 감정 쓰레기들을 떠밀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 와 같은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이들이 대부분인데 가까운 지인들에게 감정을 호소하며 본인을 보듬어 주기를 바란다.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사람은 괴롭다. 안타까운 마음에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봐도 상대에게 내 조언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 답답해져 본인의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화두를 바꿔 보려 해도 결국 다시 상대로 초점이 맞춰진다.
감정은 너무 쉽게 감염이 되어서 구겨진 감정이 고스란히 본인에게 스며들고 내 이야기는 들은 체 만 체 본인 할 말만 하는 상대 때문에 자존감까지 떨어지게 된다. 꾸깃꾸깃해진 감정을 내게 던져 버리면 마치 용건이 끝났다는 듯이 대화도 끝이 난다.
이러한 대화 패턴은 자주 반복된다. 안 좋은 감정들을 자꾸 떠안게 되고 배려심 없는 상대의 태도에 계속해서 자존감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저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뿐인데 자꾸 감정 소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감정의 쓰레기통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지 않은지 한번 생각해보자. 관계가 틀어질까 봐 혹은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 이타심에 듣기 힘들어도 계속 들어주게 되지 않던가? 하지만 상대는 이를 알아 주지 않는다. 본인의 불행에 심취해 듣는 이가 조금이라도 힘든 기색을 보이면 서운함을 내비친다.
안 좋은 감정을 호소하는 이들에게는 한 발짝 물러서서 이야기를 들어 줄 필요가 있다. 보통은 고민거리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기 마련이다. 좋지 않은 이야기에 깊게 공감을 하게 되거나 해결책을 마련해주려고 애쓴다면 이는 감정 소모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본인의 상태를 살펴보자. 가족이나 지인의 슬픔을 보듬어줄 정도의 심적 여유가 있는가?
타인을 위할 수 있는 마음은 본인의 심적 안정성에서부터 비롯된다. 먼저 본인의 감정 쓰레기들이 정리되고 심적인 여유가 보장이 되어야 타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공감의 힘을 믿는다. 적당한 온도의 기획의도 자체가 내가 얻었던 공감에서부터 오는 위로를 독자들에게도 전달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위로를 받았던 나는 독자들을 위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상황에 속해 있을 때는 문제에 객관성을 갖기 쉽지 않다. 그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문제를 마주할 수 있다.
스스로의 내면에서는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는 방치한 채 타인의 감정이 우선시 된다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다고 느끼게 되기 쉽다. 힘든 얘기를 늘어놓는 친구나 가족 때문에 괴롭다면 그 우울한 상황에서 벗어나 본인의 마음에도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나 먼저 살고 보자 이거다. 자책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타인의 감정을 보듬어 주는 것은 심리상담 전문가가 아닌 이상 힘든 건 당연한 거다. 그러니 감정 쓰레기통을 그만두고자 하는 당신은 잘 못된 게 아니다.
누구보다 본인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를.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엔 스스로가 충분히 가치있는 사람이란 것을 인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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