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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M Dec 03. 2019

내가 굳이 유튜브를 하지 않는 이유

#2. [내가 굳이] 시리즈 _문화편


바쁘고 각박한 세상에서 굳이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는 이유를 찾아 글로 풀어냅니다.
수많은 결정에 굳이 이유를 붙이고 의미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이유의 공감을 구하는 영혼이기에.


누구나 ‘유튜브 스타’를 꿈꾸는 요즘,
굳이 유튜브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1. 외모에 대한 평가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유튜브 인플루언서가 연예인 수준의 사랑과 대우를 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데 다른 매체와는 다르게 유튜브에서는 외모가 결정적이지 않다고 한다. 나는 외려 유튜브와 외모는 불가분 관계라 생각한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영상이라는 매체를 활용하기 때문에 외모에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주위에서 유튜브를 해보라고 권유할 때마다, 나에게 ‘내 얼굴 지키기’는 일종의 욕구로 자리 잡는다. 이 욕구는 매슬로의 욕구(동기) 이론 최상위에 있는 ‘자아실현의 욕구’보다 한 단계 더 앞선다. 아무리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사람은 등장하기 마련이고, 그 평가의 말은 나에게 강렬한 비수가 되어 꽂힐 것이다. 송곳 같은 혹평을 맹렬히 퉁겨 내며 꿋꿋이 버티는 유튜버를 보면 존경심이 솟아오른다.


 얼굴보다는 능력으로 승부하는 크리에이터도 있다는 사실에 이견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튜브를 하지 않는 이유는, 내 얼굴을 타인에게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의 얼굴로만 살아갈 수 없다. 각색되지 않은 일상의 얼굴도 오래 보아야 그 안에서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가진 다채로움을 영상 몇 편에 모두 담을 수 있을까?

 초록색 얼굴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 ‘슈렉’을 떠올릴 것이다. 노란색 반찬은 어떤가? 단무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사람은 캐릭터나 음식이 아니다. 무릇 사람은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하나의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고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이고 싶다.



2. 아무리 배워도, 어떤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코딩(coding)을 배운다고 한다. 코딩은 프로그래밍의 일환으로 컴퓨터에 C언어로 명령을 내리는 활동이다. 사람에게 한국어, 영어 등 고유한 언어가 있듯이, 컴퓨터도 자바, 파이선 등 컴퓨터만의 언어가 있다. 단 두 문장만 설명했을 뿐인데, 벌써 현기증이 나려고 한다. 어렸을 때, 아주 쉬운 영어 단어만 — 아직도 이유는 모르지만 주로 Apple, Lemon 같은 과일이 대부분이었다 — 외우던 나에게 코딩은 그저 먼 세계로 느껴진다. 그러니 '프리미어 프로'나 '애프터 이펙트' 같은 영상편집 프로그램 따위는 언감생심(焉敢生心). 나는 엑셀에 함수를 적용하는 일조차 가끔은 골치 아파, 셀 하나하나 수기로 작성하며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이니까.

 

 촬영과 녹화뿐만 아니라 영상 편집, 자막, 구독자 수까지,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온전히 새로운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뿐인가. 하울, 썸네일, 브이로그, 플렉스, 이런 말들은 정말이지 어지럽다. 물론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을 충실하게 지킨다면 탁월한 능력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시작한다고 해서 젊은 감각을 단번에 따라잡을 자신이 없다.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내게는 없다.



3. 이제, First Mover가 아닌 Fast Follower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다들 이런 말을 일삼았다. “나도 치킨집이나 해볼까?”, “카페나 차릴까?” 그 말들이 이제는 고스란히 “나도 유튜브나 해볼까?”로 옮겨 왔다. 하지만 유튜브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대상이 아니다. 유튜브의 핵심은 ‘콘텐츠’인데, 먹방, 육아, 브이로그, 연애, 요리, 책 등 웬만한 콘텐츠는 기존 유튜버들이 모조리 선점했다. 어떤 콘텐츠로 시작하든 이제 유튜버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아닌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일 확률이 높다.


 비즈니스 분야에서 패스트 팔로어는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상존하지만, 콘텐츠 분야에서는 패스트 팔로어의 성공 가능성이 훨씬 낮다. 굳이 시간을 들여 다른 콘텐츠와 유사한 영상을 보기에는 이미 신선한 콘텐츠와 편집 기반을 갖춘 유튜버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내 얼굴을 담보로 하는 영상인데, 무작정 뛰어드는 것보다는 펄떡이는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콘텐츠를 찾기 위해 인사이트를 넓히는 시간이 나에겐 더 필요하다.



4.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더욱 자극적인 영상으로 이어진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영상을 촬영하다 보면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거나, 개별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발생한다. 한 예로 어떤 유튜버가 동의도 없이 장례식 현장을 촬영하여 ‘브이로그(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기록한 형태)’로 업로드한 사건을 들 수 있다. 그 유튜버는 ‘나는 잘못된 일인 줄 모르고 했다’고 말한다. 이런 사례가 바로 전형적인 개인 영상의 폐해다. 디지털 기록은 확산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일반성과 수용성(受容性)이 전제되어야 한다. 비윤리적이거나, 허락되지 않은 타인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으로 유명한 테드 창의 단편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는 개인의 모든 일상을 디지털 형태로 기록해 보관하는 ‘라이프로그(Life-log)’ 개념이 등장한다. 영상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할까? 과연 디지털 기록의 혜택이 폐해보다 클까? 나는 ‘브이로그를 기록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이 짧은 소설이 던지는 물음을 곱씹는다.


“우리의 기억은 사적인 자서전의 집합이며, 나의 기억에 할머니와의 오후가 두드러지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그 기억과 결부된 나의 감정들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광경을 찍은 동영상을 통해 할머니의 미소는 사실 건성에 불과했고, 실은 재봉틀이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짜증이 나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게 기억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내게 안기는 행복감 때문이다.”
(테드 창, <숨(Exhalation)>, 김상훈 옮김, 엘리, 2019, 300쪽)



5. 사회의 번영은 상호작용(interaction)에서 시작된다.


 유튜브는 일방적인 영상 매체의 전달이다. ‘유튜브 라이브’ 기능도 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일방적으로 영상을 전달한다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양방향이 아닌 일방향 의사 전달은 소통이 아니다. 내가 전달하려 했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로 잘못 전달됐을 때, 일반향 의사 전달에서는 정정할 방법이 없다. 상대의 기억을 편집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소통'이기 때문이다.


 글과 대화는 영상의 전달과는 다르다. 글에는 문체가 있고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내가 무언가를 쓰고 몇 번씩 다듬어 하나의 글을 지어냈을 때, 독자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말이다. 소설가 김애란은 <잊기 좋은 이름>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하나는 타인의 얼굴에 표정과 온도를 입혀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은 상호작용이다. 즉, 작가의 물음에 독자는 자기만의 답을 찾고, 그 답에 작가가 다른 작품으로 화답하는, 일련의 연결이라고 볼 수 있다. 대화도 글과 마찬가지로 상호 이해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사회는 발전하고 번영한다. 나에게는, 우리 사회에는, 일방적인 정보 전달보다는 면대면(face-to-face)의 가치가 더욱 소중하다.



모든 이유의 중심에는 콘텐츠가 있다.



 유튜브를 하지 않는 모든 이유는 결국 ‘콘텐츠’를 떠나서는 당위성을 갖기 어렵다. 여기, 내가 생각하는 콘텐츠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이 이야기를 끝으로 내가 '굳이' 유튜브를 하지 않는 이유의 공감을 구해본다.


"어느 경우든 진정한 힘은 대중을 콘텐츠 생성에 활용하는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진정한 힘은 연결관계를 최적화하는 데서 온다. 대중을 콘텐츠 생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이 역시 콘텐츠 함정에 빠지는 길이다. 당신이 열어놓기만 하면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콘텐츠가 마구 생성될 거라는 생각도 오산이다. 올바른 기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바라트 아난드, <콘텐츠의 미래>, 김인수 옮김, 리더스북, 2017, 168쪽)






[내가 굳이] 시리즈 #2.

내가 굳이 유튜브를 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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