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답! 너는 노담!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그것에 끌리진 않았고, 밴드 동아리 사회생활에서 밀리기 싫었다. 합주 중 담타(담배 타임)에 반실에 혼자 남아있는 것이 싫었다. 복도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공유할 수 없단 것이 싫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알고 보니 담타에 나오는 이야기는 금방 휘발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는 가벼운 것들이었다. 심지어 몇몇은 구리구리한 악취까지 남겼다. 하지만 그것이 구리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 나는 더더욱 그 자리에 빠질 수 없었다. 내가 구림의 중심에 서긴 싫었으니까. 스무 살의 나는 그 가벼운 밍글링이 남초 환경에서 살아남는 사회적 기술이라 생각했다. "오빠들"은 담타 때 나를 찾았고, 같이 걸었고, 같이 서있었고, 같이 내뿜었다. 그것이 연대라 믿었으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몸소 배웠다.
시작은 사명이었으나, 모든 나라에서 하지 말란 것들이 그러하듯, 사명은 휘발하고 즐거움이 그 자리를 꿰찼다. 온갖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불화의 구렁텅이에 날 밀어 넣은 시대를 회피하기에 몸을 작살내는 연소물질만 한 것이 없었다. 타인의 존재 하에만 성립되던 흡연이 점점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밀려들어왔다. 흡연이란 구실은 그 시간만큼은 날 혼자 있을 수 있게 했다. 그제야 처음으로 흡연을 통해 '릴랙스'할 수 있단 아저씨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에 괴롭지 않은 시간은 그때뿐이었고, 그 시대에는 괴롭지 않음이 즐거움으로 동치 되었다.
인생은 혈연, 학연, 지연, (흡연)이라는데, 내가 나의 직업사회에서 느낀 바에 따르면 흡연이 (혈+학+지)연을 압도하는 단기적 힘이 있다. 직업사회적 흡연 구역에서는 그곳에선 일어나면 안 되는 상당히 중요한 대화들이 오가며, 그 자리에 존재하여 연기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classified'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듯한 착각이 든)다. 흡연은 나를 잠깐 유능하게 만들어주고 그 유능은 고스트레스, 고강도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근무하는 나에게 거부할 수 없는 달달한 보상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사회적 자리에서 탈여성화 (남성화? 흠, 애매함. 탈여성해도 남자는 못 됨.) 했고, 유능하단 소리를 더 자주 듣게 되었다 (인지편향입니다, 믿지 마세요). 물론 나의 평가된 유능이 담배에서 기인한 건 아니지만, 흡연으로 형성된 라포는 높은 분들로 하여금 나의 실력에 눈길을 주게끔 했다.
타의로 인해 시작된 흡연은 파블로프의 개 마냥 반사적으로 주어진 사회적 보상으로 강화되어 하나의 취향으로 거듭났다. 연초로 시작했지만 궐련형, 액상형 전자담배의 트렌드를 좇아 거의 모든 종류의 제품군을 향유해 보았다 -이런 경험까지도 KT&G에서 강연하는 데 밑거름이 되어 매우 보람차게 생각한다, 음하하. 일단 나는 곧 죽어도 멘솔파. 코를 때리는 자극은 사계절 비염녀에게 (장기적으로 해롭지만 단기적으로) 짜릿한 감각이다. 토바코 맛 - 그러니까, 담배 맛 담배- 은 도저히 역겨워서 피울 수가 없다. 그리고 과일 맛도 그만큼 역겹다. 과일+멘솔은 그나마 견딜만한데, 그 조차 너무 달게 느껴져서 충치가 생기는 듯한 기분이다. 나는 치아보험이 없는 관계로 과일 맛도 패스. 이러한 경험에 입각하여 사회적 흡연을 희망하는 그대들을 위한 추천 간다. 지극히 개인적 관점이지만 그대들 다 MBTI에 미치고 환장하잖아. 그것의 연장선 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궐련형:
1) (아이코스) 아이 러브 필립 모리스. 연초도 필립 모리스 연초가 최고이다. 나는 궐련형 담배계의 대부다. 너네 이제 맛 들여서 릴 피워? 나는 릴의 탄생 전부터 궐련형을 핀 얼리어답터 하입보이다 이놈들아. 그리고 옥수수 찐내 정도는 쿨하게 넘겨줄 수 있지. 기기 안에 재 털어내는 것도 전혀 귀찮지 않지.
2) (릴) 담배는 역시 국산. 사랑해요 코리아, 사랑해요 케이티앤지. 마 으데 일본 담배를 피우노 (아이코스 - 일본 것). 나는 연기를 즐기는 고독한 girl. 500원 더 내고 카트리지 구매? 아이 돈 케어. 그것이 나의 연무량을 책임져준다면 기꺼이 지불하겠어. 찐내, 절대 싫어. 수웁 화아. 담배가 이 맛이지! (국산이라 웬만한 편의점엔 다 입점)
3) (글로) 이거 어디 거임? 이거 뭐임? 글로? 이거 피우는 사람도 있음? 오... 괜찮네... 이거 어디서 팔아? 아 오... 함 해볼까? 흠... 오 괜찮네. 얼마임? 헉 3만 원 (가끔 세일하면 만 원)?? 왤케 쌈? 업계 3위라? 세상에나... 그리고 우리는 영원을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혹은, 나는 던힐만 피운다.
혹은, 나는 마음 속으로 영미권 문화에 대한 엄청난 동경이 있으나 반스 신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고, 아는 사람만 아는 센스 있는 사대주의를 향유하고 싶다.
베이프:
1) 쥴 (망함, 이제 한국에서 안 팜): 쥴의 흥망성쇠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참고.
2) 퍼프 맥스(인터넷 구매 가능):
나는 귀엽고 깜찍한 girl. 하라주쿠 패션도 좋아 girl. 인생의 쓴맛은 시뎌시뎌. 나는 달다구리한게 좋아 girl. 내가 중학생이라면 쉬는 시간마다 초코에몽 (남양유업 소비하지 맙시다) 쪽쪽 빨고 있을 거야 girl.
혹은, 나는 정말 담배라는 존재가 역겹고 너무 삶에서 멀리하고 싶지만 니코틴이라는 화학성분에 사랑과 전쟁 속 불륜남녀처럼 끌려. 이런 날 어떻게 해?
3) 기기 따로 액상 따로 베이프: 나는... 마포구에 거주하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살고, 액상이 입 안에 튀는 것 정도의 리스크는 감당할 수 있으며, 개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달달하며 코 아픈 게 좋고 (멘솔 커스텀 가능) 한 번의 흡입에 니코틴 빡 빡 빡 (니코틴 커스텀 가능)을 원한다. 냄새는 원하지 않는다. 내가 품는 건 그저 여름의 복숭아 향 (자매향: 마이구미, 새콤달콤 딸기 맛 등) 뿐.
연초: 알아서 니 취향대로 사십쇼.
돌아와서, 나는 소셜-패션 스모커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것이 아님을 깨달은 순간이 있다. 베이프만 피던 어느 시대에, 여느 때와 같이 회사에서 시안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정말 전해질 균형이 박살 난 저나트륨혈증 요붕증 휴먼이 소금물을 찾는 것처럼, 연초를 지금 당장 피우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같았다는 말은 모호하지만. 나의 몸은 사고보다 빠르게 움직여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까지 뛰어가 "쿠바나 더블 주세요"를 이 시대 마지막 문명인처럼 외치고, 카드를 꽂고, 결제가 완료되었다는 그녀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가 그 편의점 모퉁이에서 다섯 대 빨았다. 그리고 돌아온 이성과 안정, 그리고 제정신. 히히. 그렇게 베이프와 생이별하고 다시 연초에게 돌아갔더랬다.
하지만 춥디 추운 겨울이 오고 밖에서 손을 호호 불며 담배 피우기 너무 싫었던 나는 베이프-릴-연초 하이브리드 girl이 되었고, 그다음 봄에는 누구의 손을 잡고 솔로 나라를 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지금은 내가 뚱땡글로(글로 하이퍼)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마 뚱땡글로에 당분간 정착할 필이란 것.
여성운동을 너무나 열심히 한 업보(문학적 표현입니다, 투쟁.)로 그 누구의 청첩장도 받지 못하는 29세 (윤 나이 28세)의 나의 객관적 상태는 술담커타 girl이다. 타는 타투. 남자들이 말만 들어도 거른다는 모든 요건 충족! 혼기 찬 남자들 내쫓기 딱 좋은 술담커타 콤보 스매시! 하지만 나의 심장은 나이가 들수록 여성에게만 요동친다. 여성애가 자라난다, 무럭무럭. 아름다운 레이디들, 술담커타 girl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