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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Emilia Moment May 28. 2024

담담하게, 담담히

깊은 삶을 위한 마흔의 단어들 #1



담담(淡淡)하다

1. 차분하고 평온하다.
2. 사사롭지 않고 객관적이다.
3. 물의 흐름 따위가 그윽하고 평온하다.
4.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
5.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淡 (맑을 담)


(표준국어대사전)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


자신보다 나이 든 옛 노래를 부르며 젊은 여가수는 말했다. 지금껏 젊음의 패기로 온 힘을 다해  노래했지만 이제는 힘을 빼고 담담히 부를 수 있을 거 같다고. 그리고는 한 음절 한 음절 독백하듯 담담하게 불러냈다. 맑고 영롱한 색, 깊고 그윽한 향을 품은 잘 덖어진 차 한잔 같은 담백한 목소리였다. 


문득 최근 뉴스를 장식했던 그녀 관련 이슈가 떠올랐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며 삶에선 때론 힘을 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그녀는 마침내 알아버렸나 보다. 그리고 그건 나약해졌다는 의미도, 실패했다는 의미도 아니라는 것도.  그녀는 지금 온몸으로 삶을 배워가는 중이구나 생각하며 담담하게 박수를 보낸다.






그의 담담한 필치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덩수궁에서 진행 중인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 다녀왔다. 장욱진 화백은 현대미술사에서 한국적 추상화를 확립한 거장 중 한 명으로,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화백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 절정기는 패기 넘치는 젊은 시절이 아닌 바로 삶의 말년 기였다. 그는 평생 730여 점의 유화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80%에 달하는 580여 점이 그의 마지막 15년 동안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그의 화풍은  말년으로 갈수록 깊어진 그의 성찰과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마치 수묵담채화처럼 표현 방식은 물론 붓의 터치와 색감 모두 가볍고 단순해진다. 그림의 색층은 더욱 얇아지고, 물감이 스며드는 듯한 담담한 효과를 통해 가벼움 속 깊이감이 느껴진다.








나의 담담한 태도


젊은 여가수의 담담한 목소리를 듣고, 노화가의 담담한 필치를 보며 담담한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은 바로 그러한 담담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과 함께.


삶에서 피해 갈 수 없는 온갖 고난과 역경이란 재료를 나란 그릇에 담아, 발효와 숙성의 과정을 거치면 진하고 진득했던 감정 찌꺼기는 점차 가라앉는다. 그리고는 서서히 나만의 색과 향이 만들어진다.


맑고 청아한 빛깔, 그윽한 향취를 품은 담담한 색과 향은 가볍지만 약하지 않고, 다른 이의 아픔까지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 같은 다정함어려있다.


나이 듦의 가치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성숙하는 삶 속  그런 담담함의 발현이 아닐까?



*  본 글은 저의 저서 [마흔의 시간]의 부록 [깊은 삶을 위한 마흔의 단어들]에 실린 내용을 기반으로 사진과 함께 확장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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