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세대 조경가,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 정영선. 그의 반세기 걸친 작업 궤적을 담은 전시,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를 전시 종료 일주일을 앞두고 부랴부랴 다녀오게 된 이유는 바로 이 문장 때문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을 말하는 조경가라니. 게다가 전시 제목,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신경림 시인의 시,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에서 따왔다고. 가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서울대학교 주관 신춘문예 당선'
전시회장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그녀의 연혁에서 발견한 이력을 보고 이해했다.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라는 말은 그저 아름다운 글귀가 아니었음을. 그녀는 삶과 일을 통해 진정으로 땅에 시를 쓰는 시인의 삶을 살아왔음을.
사실 지난 5월, 유퀴즈에 출연했던 그녀의 방송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더랬다. 하지만 그 무렵 첫 책 발간과 사업 준비로 몹시 분주했던 탓에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전, 그녀의 전시를 다녀온 분의 인스타 포스팅 속에서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라는 문구를 발견하고서야 전시회에 대해 알게 됐고, 무려 4월부터 시작해 약 6개월여에 걸쳐 진행된 전시의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됐고,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정영선. 그의 이름이나 존재를 알든 모르든 반세기에 걸쳐 진행 중인 그의 작업 궤적을 통해 '조경가는 연결사'라는 그의 말처럼 우리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가 꿈꾸고 구축한 수많은 조경과 공간 속에서 그와 함께 숨 쉬고 살아왔음을.
예술의 전당,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수목원, 완도 수목원, 대전 엑스포,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와 아시아공원, 제주 오설록, 희원, 아산병원, 아모레퍼시픽 사옥 정원 등등... 가본 곳을 대략 꼽아본다. 자꾸만 가고 싶고, 삶에 지친 날 그리워하게 되는 공간의 힘, 치유의 힘을 느꼈던 곳들이다. 그곳에서 느꼈던 색다름과 동시에 이유를 몰랐던 평안함의 이유를 이제 알겠다.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선유도 공원, 경춘선 숲길, 남양성모성지, 사유원 등과 같이 몇 년 전부터 마음속에 담아둔 공간들 역시 같은 맥락일 테다.
정영선에게 조경은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생동하는 모든 것을 재료로 삼는 종합과학예술이다. -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작가 소개의 말 중에서
'패러다임의 전환, 지속 가능한 역사 쓰기' (Paradigm Shift Through Sustainable Storytelling)
정영선은 여러 작업을 통해 환경의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을 주창하는데 'Sustainable Storytelling'은 내 삶과 글쓰기의 화두이기도 하다.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풀잎, 그 곁에 날아드는 나비들의 살랑살랑한 날갯짓을 보며 내 삶과 글의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 김수영의 '풀'처럼 산들바람에도 흔들리나 다시금 일어나고, 콘크리트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나비가 날아드는 잔잔하고 강한 풀잎 같은 삶과 글.
이제는 그렇게 좋아하던 꽃 이름도 생각이 잘 안 나. 그 마당에 내가 무슨 욕심을 부려. 그냥 즐기는 거죠 뭐. -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인터뷰 영상 중에서
마지막으로 전시장 인터뷰 영상에서 발견한 그의여든 삶의 태도,..
울림을 넘어 연결성을 발견하고, 내 삶과 글쓰기의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던 정영선의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