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sory Mar 21. 2020

기본에 충실할 때.

골목식당 107-108회를 보고.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1인 가구의 적막함을 달랠 bgm으로 티비를 켜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다 관심도 없던 '골목식당'까지 본방으로 보게 됐다. 이날은 야채곱창, 백반, 구이집까지 총 세 집의 중간점검이 있었는데 백종원에게 컨설팅을 받은 구이집 사장님은 추진력이 무척 강해 그의 조언 전에 새 구이 기계들을 들여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기계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업체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일반구이로는 괜찮으나 양념돼지구이에는 적합하지 않은, 겉은 쉽게 타고 속은 전혀 익지 않는 구조의 장비를 설치해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를 본 백종원 역시 당황했지만 기계를 교체할 순 없으니 임시방편으로 사장님이 좀 더 편할 수 있는 대안들을 몇 개 제시했다. 고기 두께를 최대한 얇게 해라. 그리고 직화시스템은 양념구이에 부적합하니 화구에 커버를 씌워 불이 직접 닿지 않게 조치를 취해라. 그리고 바로 옆집인 야채곱창집으로 갔다. 잡내가 너무 심했던 기존의 곱창을 바꿔 양념을 하니 맛의 기본은 잡혔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며 이 집만의 특색이 필요하다 했다.


잠시 고민하던 백종원은 곱창을 한 바가지 퍼달라고 하더니 갑자기 말도 없이 구이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구이집 직화구이 기계에 곱창을 초벌해서 돌아왔고 곱창 사장님에게 이걸로 다시 양념을 해보라 했다. 요리가 나오고 맛을 본 사장님은 온 얼굴로 활짝 웃었는데 곱창에 불맛이 배어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대단한 요리로 변해 있었다. 결정적 방법을 찾은 곱창집에는 직화 기계가 들어왔다. 하지만 방법을 알았다고 맛이 바로 바뀔 순 없었다. 좋은 것도 몸에 익어야 진짜 내 것이 되니까. 



그렇게 몇 주간 불맛을 내기 위해 수도 없이 연습했지만 그날의 맛이 나지 않아 좌절한 사장님은 엉엉 울기도 했다. 자신들의 노력에 어떤 빈틈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다시 찾아온 백종원은 그걸 보다가 기계의 화구 커버를 벗겨보라 했다. 기름이 불과 직접 만나야 화력이 세져서 불맛도 강해지는데 커버가 그걸 막고 있어 어려웠을 거라고. 기적같이 곱창에 불이 붙으며 불맛이 생겼다. 


꼼꼼하게 방법을 가르쳐준 뒤 잊지 말아야 할 마음가짐도 상기시킨다.


모니터링 공간으로 돌아온 백종원은 기계의 쓰임을 정확히 알아야 응용도 가능한데 그걸 모르니 안되는 거라고, 그런데 가르쳐줘도 해봐야 되는 거라 이제 본인들이 익히는 것밖엔 답이 없다고 했다. 같은 기계를 두 집의 음식종류에 따라 다르게 쓰라는 대안이 척척 나온다니. 너무 신기했다. 심지어 구이집 기계를 곱창집에 응용해서 쓸 생각을?


내가 백종원을 처음 본 건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였다. 그의 첫 티비 출연이었다. 마리텔에서 그는 늘 독보적 1위 채널이었는데 자신의 노하우를 권력처럼 쓰지 않고 시청자들이 진짜 원하는 배우기 쉽고 시도 가능한 꿀팁들을 무척 편하고  재밌게 가르쳐줬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대단한 사람이라곤 생각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나 이번 '골목식당'에서의 그는 대단함을 넘어서서 진짜 멋진 사람이었다. 좋은 멘토는 멘티의 간절함을 읽고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줄 줄 아는 지혜와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구절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늘어놓기 보다는 상대의 어려움을 충분히 듣고 흩어져 있는 그 고민들을 분류하고 범주화시켜 정리해줄 줄 아는 사람. 그는 어떤 문제에도 턱턱 답을 내어놓는데 다양한 문제상황들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기본이 체화돼있는 그 앞에서는 단순해진다. 그렇게 명쾌할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그도 무수한 실패를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실패들이 실패로 남지 않게 어떻게든 끈덕지게 방법을 찾아낸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과거의 본인이 품었던 질문들을 역으로 사장님들에게 던진다. 


그의 조언들에는 진심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답이 늘 옳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기본에 충실한 답을 제시하되 소화하는 건 당신의 몫이라며 늘 일정 부분을 남겨둔다. 왜 그를 수많은 방송에서 부르는지, 무엇이 그를 좋은 멘토로 남게 하는지, 그 많은 방송들을 하면서도 어느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아 100종원(백종원 100명설)이라 불리게 하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 재미들린 크로스핏에서 코치님은 항상 동작에 대한 설명을 무척 꼼꼼하게 해주신다. 어떻게 해야 무리가 덜 오는지, 제대로 된 자세로 했을 때 어느 부위가 아픈지, 지속가능한 동작이 되려면 정자세는 무엇인지 등등. 부분동작으로 천천히 보여주시고 전체동작으로도 몇 번을 보여주신다.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 설명을 듣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동작을 연습한다. 허리가 계속 말썽이라 동작 하나라도 실수하면 또다시 허리가 고장날까 걱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코치님의 말대로만 하면 확실히 덜 무리하게 되고 덜 아프다. 다음날 코치님 말대로 어디어디가 아프면 내가 정확히 배웠구나! 라는 벅찬 뿌듯함도 찾아온다. 


한때 자기계발서를 무시했었다. 다 아는 얘기를 돈 주고 사서  굳이 읽을 필요있냐는 말도 쉽게 했다. 그러다 자기계발서를 위주로 읽는 모임을 몇 달 하고서 깨달았다. 그렇게 다 안다고 여겼던 기본을 실제로도 잘 지키며 무시했던 건가. 전혀 아니었다. 늘 기본 이상의 특별한 무언가를 해답으로 바랐다. 익숙하게 알던 것 말고 진짜 새로운 한 방. 

수학의 정석이 아직까지 존재하는 이유...


그러나 기본없이 빛날 수 있는 건 없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자기계발서는 기본을 행하기 위한 책이지 알기 위한 책이 아니었다. 백종원도 코치님도 탄탄한 기본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것들을 꾸려왔다. 기본에 충실하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와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