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이의 상담일기. 제 0화.
상담일기를 소개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와 가까웠지만 친하진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엄마 따라 각종 글짓기대회에 나가 상도 꽤 받았고, 일기도 꾸준하게 열심히 썼다. 엄마는 매일 내 일기를 읽고 일기장 빈 곳에 늘 코멘트를 달아줬다. 그는 그 글들로 나와 대화를 해왔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내 글이 엄마에게 이해받았다 여기기보다는 엄마 마음에 드는 글을 썼을 때는 안도감을, 그렇지 못할 때는 무엇을 더 감춰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검사수단이라 느꼈다. 엄마에게 말할 수 없는 건 일기로도 쓸 수 없었다. 그러니 나를 위한 솔직한 글보다는 엄마를 위한 글을 썼다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선생님들은 일기검사 때 엄마의 코멘트를 보고는 엄마 정성이 대단하다고 감탄하곤 했다. 내 일기 임무는 엄마를 거쳐 선생님의 최종 검사까지 마쳐야 완료되는 3단 결재 시스템이었다. 언젠가 엄마는 어렸을 적 내 글이 어른의 손을 많이 탄 정형화된 느낌이 있다고 했다. 반면 동생은 지나치게 과감하고 솔직했지만 읽는 재미가 있고 그 나이 아이의 순수함이 담겨있다고 했다. 나도 눈치보지 않는 글을 쓰고 싶었어 엄마. 그러기엔 눈치 볼 상대들이 너무 많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나에게 솔직한 글을 쓰는 것이 어른이 된 후 내 글의 목표였다. 하지만 여전히 내 글에는 제동이 걸린다. 타인의 시선을 지레짐작해 검열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이래저래 글을 쓰면서도 친구들에게 굳이 알리지 않았던 건 보는 눈이 많아질수록 또다시 슬금슬금 나를 속이는 글을 쓸까 두려워서였다. 독자도 코딱지만큼밖에 없으면서 김칫국 들이마시는 걱정부터 하고 있다. 그만큼 내겐 글의 무게가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변명해본다.
최근에 친구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건들에 따라 워너비도 바뀌곤 하지만 늘 유지되는 기조가 있다면 '용기와 온기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우습게 만들지 않는 것, 끝까지 귀 기울여주는 굳건한 청자가 되어 그 이야기를 지켜주는 것. 그러려면 용기와 온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그런 사람으로 자라나기 위한 발판으로 나에게 먼저 용기와 온기를 주려고 한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오롯이 내 시선으로 바라보는 글을 쓰는 일. 용기의 그릇을 간장종지에서 대륙그릇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시작해본다.
[앞으로 기록할 '상담일기'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작년 7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참 좋은 선생님을 만나 지금까지 쭉 이어가고 있으며, 요즘은 마음이 나아져 2주에 한 번으로 주기를 늘렸다. 나는 매년말 친구들과 연말정산을 한다. 그 해를 꼼꼼하게 돌아보는 시간인데, 작년 내가 잘한 일 중 하나로 상담을 꼽고 나서는 '왜'를 구체화하고 싶어졌다. 매주 일요일 김포에 사시는 선생님과의 접선을 위해 늦잠도 마다하고 왕복 2시간 이상의 여정을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은 왜때문인가. 무엇이 그리도 좋아서? 쥬비스 다이어트는 사진으로 비포와 애프터를 확연하게 보여주어 화장실에 앉아서 그 사진만 보아도 다이어트 뽐뿌가 즉각적으로 왔다 가는데, 나의 상담 비포&애프터는 글이 아니고서는 표현할 길이 없으니까. 이 일기는 내 변화과정에 대한 정리이자 자아성찰이다. 이것이 늘 글의 가장 위대한 역할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