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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sory Jan 17. 2021

삐걱이의 상담일기. 제 1화.

삐걱이임을 받아들이다.

나는 했던 걸 안 했다고, 안 했던 걸 했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거짓을 말해야 할 때 나는 삐걱댔다. 상대는 별 관심없이 지나칠 삐걱임이었을지 몰라도 내 마음에선 녹슨 물건이 작동할 때 생겨나는 기분 나쁜 마찰음처럼 계속해서 소음이 났다. 마음 속 소음을 애써 무시하고 연기해야 할 때만큼 괴로운 상황은 없었다. 나다운 것들과 가장 동떨어진 순간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은 내게 자신의 비밀을 잘 털어놔줬다. 누굴 몰래 좋아하고 있다고, 비밀 연애 중이라고, 집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현재 자신을 옭아매는 내밀한 속내들도. 그럴 때마다 나는 기꺼이 그들의 비밀기지가 되었고 그 역할에 무척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는 이미 알고 있는)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냐고 혹은 사실이냐고 물을 때 내가 택한 전략은 '모르쇠'였다. "아 진짜? 모르겠네." "그렇대? 글쎄."  



사실 내가 택한 전략이라 하기엔 오류가 있으니 정정하면, 친구가 발견해준 사실이었다. "너는 그럴 때마다 '몰라!'라고 하더라." 그 말을 뱉을 때 나의 톤까지 따라해줬는데(몰/라/!!) 요즘도 누군가에게 '몰라'라고 말하게 될 때면 괜히 뜨끔하다. 나의 발연기 모먼트를 자각하며 제발제발 듣는 이에게 티나지 않았음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는 순간이기도 하다.



고 2 때 같은 반에 방송반인 친구가 있었다. 이번 축제 때 짧은 영화 하나 찍을 건데 엑스트라가 많이 필요하니 가능한 사람은 도와달라는 말에, 괜한 도전정신으로 해보겠다 했다. 내 역할은 화장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친구 뒷담화하는 아이 1이었는데, "걔가? 진짜 장난 아니다" 같은 대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머리 좀 만지다가 그 대사 한 줄 자연스럽게 툭 뱉으면 되는 거였는데 축제 때 강당 앞 그 큰 화면으로 내 연기를 보고 있자니 나는 앞으로 연기에는 단 1g의 욕심도 내지 말아야겠다는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결심이 섰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가장 알기 어려운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맞는 게 나는 꽤 오랜 시간 내가 포커페이스가 되는 사람인 줄 알고 지냈다는 것이다(???). 고 2 때 나의 연기를 기억하는 친구들이면 너무도 어이없을 일이지만. 싫은 사람이 있어도 그렇지 않은 척, 상대의 말에 상처를 받거나 놀라도 태연한 척 자신을 잘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면전에서 쏘아붙이거나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것이 예의니까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함을 무기로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사람이 되긴 싫었다. 나 편하자고 타인에게 그렇게 상처를 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발연기 경력 보유자이자 삐걱이인 내 마음이 정말 들키지 않았을까. '저는 지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라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 온몸에 비언어적 표현을 뚝뚝 흘리며 그 자리에 있었을 내가 과연 솔직함으로 상대를 찌른 이들보다 더 무결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속으로 "차라리 말을 해라 이자식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타인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마음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게도 '글쎄. 몰라'를 시전하는 사람이었다. 상대에게 상처를 받아도, 속상한 일이 생겨도 그 감정을 해소하기 보다는 덮어두는 게 편했다. 어떻게 말해야 '잘' 말할 수 있는지 몰랐고, 내 감정을 내 안에만 두는 것에 익숙했다. 어쩌다 입밖으로 나간 마음이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순간을 견디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나를 속이고 또 속였다. 곧 괜찮아질거야. 그냥 넘겨도 될 일이야. 때론 '말해봤자 변하는 건 없어, 나만 힘들 뿐이야'라는 체념의 모르쇠도 있었다.(이러나 저러나 모르쇠네)



내가 평생 가장 솔직하지 못했던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 앞에서 나는 제일 삐걱댔고 때론 무척 나빴다. 엄마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았지만 누구보다 이해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던 유년기를 지나면서 나는 엄마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을 깊숙이 묵혀둔 채로 살았다. 최근 엄마와 나의 관계는 급속도로 나빠졌었다. 내 삶에 가족 하나 빠진다고 큰 문제 있겠냐 싶은 극단적 마음까지 치솟았다. 이대로 영영 보지 않는 것이 더 후련할 것 같다는 못된 마음이 나를 지배할 때면 이런 슈퍼막장불효녀가 다 있나 싶어 자책의 늪에 빠져 괴롭기도 했다.



해피엔딩까진 아니지만 현재진행형으로 말하자면 요즘 우리 모녀는 서투르고 수줍게 관계를 재정립해가고 있다. 그 회복의 중심에는 상담이 있었는데, 올해는 엄마와 나를 여기까지 끌어준 상담의 세계에 대해 꾸준히 기록해보려한다. 이 글은 그 기록의 서문이다.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방치돼있던 우리의 케케묵은 이야기들이 어떻게 꺼내어지고 서로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었는지 솔직하게 써보고 싶다. 그 기록들에 가장 도움받을 사람은 나일 것이고, 누군가에게 읽혀져 그 역시 도움받을 수 있다면 무척 감사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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