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존 카메론 미첼 내한공연

뮤지컬 <헤드윅>에 투영된 내면의 로드 무비

by 정아름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의

[디 오리진 오브 러브 투어 인 서울(The Origin of Love Tour in Seoul)]


뮤지컬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에 투영된 내면의 로드 무비


뮤지컬 <헤드윅>의 원작자 존 카메론 미첼이 11년만에 내한했다(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18년 10월 5일~7일). 1998년에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헤드윅>은 동독에서 자란 한셀이 성전환 수술을 통해 트랜스젠더 헤드윅이 되고 미국에서 토미 노시스를 만나 사랑을 하고 배신을 당하는 헤드윅의 인생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풀어낸다. 우리나라에도 2005년에 초연하여 조승우, 오만석, 마이클리 등 쟁쟁한 뮤지컬 배우들을 거치며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주로 <헤드윅> 원작자로만 알려져 있는 미첼은 사실 TV, 광고, 연극, 영화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는 예술가로 영화 <숏버스(Shortbus)>와 <래빗 홀(Rabbit Hole)>을 연출하기도 했다. 국내에도 지난 2008년에 KT&G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미첼이 연출하고 출연한 영화 총 11편이 소개되는 ‘존 카메론 미첼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필자는 당시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통역 및 미첼 수행통역을 맡았었는데, 오랜만에 한국 관객을 찾은 미첼이 어떤 공연을 선보일지 궁금했다.


『헤드윅』의 내러티브와 음악에 담긴 미첼의 성장배경과 뮤지컬 제작 과정 이야기

“신사 숙녀 여러분, 당신이 좋아하든 말든, 존 카메론 미첼!” 뉴욕에서 활동 중인 인기 카바레 공연자 앰버 마틴(Amber Martin)의 소개가 끝나자, 애국가 반주와 함께 무대 위의 작은 계단식 플랫폼에서 미첼이 천천히 올라왔고, 첫 곡 ‘오리진 오브 러브(The Origin of Love)’로 공연을 시작했다.


첫 곡이 끝나자, 미첼은 관객에게 인사를 하고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작품의 대표곡인 ‘오리진 오브 러브’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에 작곡가 스티븐 트래스크(Stephen Trask)를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만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이 늘 꿈꾸던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당시 뉴욕에서 정통 연기를 하던 미첼은 락앤롤과 브로드웨이 형식을 접목시킨 공연을 만들고 싶어했다. 미첼은 이성애자들은 종족 번식이 가능하지만, 퀴어는 번식을 할 수 없으니 메타포를 통해 유산을 남긴다며 메타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는데, 당시 기획하던 공연 역시 내러티브가 플라토의 <향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사랑의 기원에 대한 메타포가 중점을 이루는 것이었다. 미첼은 게이 등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이 다른 사람보다 이러한 메타포를 더 잘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들처럼 자신의 일부를 숨기는 사람들일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본연의 모습 간의 간극에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미첼은 작곡가 트래스크에게 신이 인간을 반으로 갈라지게 만든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상처는 사랑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전했고 트래스크는 미첼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해 ‘오리진 오브 러브’라는 곡을 작곡했다.


<헤드윅>은 1994년 드랙 클럽 ‘스퀴즈박스!(Squeezebox!)’에서 드랙 공연으로 첫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계기 역시 트래스크의 추천이었다고 한다. 미첼은 당시 그간 자신의 내제된 여성성이 늘 두려웠었으나(물론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당시 ‘스퀴즈박스!’에서 활동 중이던 제인 카운티(Jayne County), 아노니(Anohni), 라번 콕스(Laverne Cox) 등을 보고 배우며 공연을 준비했으며, 첫 드랙 공연 당시 미첼은 여자와 남자 둘 다 동시에 된 기분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 공연을 기점으로 미첼은 트래스크와 환상의 파트너라고 여기게 되었고 그에게 독일과 캔자스 주 정션 시티(Junction City, Kansas)에서 자란 성장배경, 남동생의 베이비시터 헬가(Helga)로부터 영감을 받아 헤드윅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게 되었다는 캐릭터 구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탄생한 곡 ‘위키드 리틀 타운(Wicked Little Town)’을 불렀다.


1980년대 중반 미첼에게 피터 페테르(Peter Fechter) 전시 역시 <헤드윅>이라는 작품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 1962년에 동독 출신의 18살 페테르는 동독으로부터 탈출을 하다가 총을 맞고 비무장지대로 빠져나갔는데 동독과 서독 그 어느 한쪽도 소년을 도와주지 않았고, 소년은 피를 흘리며 죽어갔고 당시 십대 소년이었던 미첼은 그가 죽어가는 사진을 보며 한셀의 캐릭터를 상상했다고 한다. 다른 세상을 꿈꾸며 외롭게 자란 한셀이 미군 루터를 만나면서 금기의 스릴, 그리고 권력의 스릴을 알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 후 ‘슈가 대디(Sugar Daddy)’가 이어졌다.


‘슈가 대디’를 마친 후 숨을 고른 미첼은 뮤지컬 <헤드윅>에 포함되지 않은 미발표 곡 ‘밀포드 레이크(Milford Lake)’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밀포드 레이크’는 복잡한 헤드윅으로부터, 복잡한 헤드윅의 젠더로부터, 그리고 헤드윅을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의 복잡한 마음으로부터 도망친 토미의 후회와 내면을 대변하는 곡이다. 미첼은 캔자스 주 정션 시티 근처에 있는 밀포드 강을 메타포로 사용했는데, 이 곳은 강 댐을 지을 당시 알라이다(Alida)라는 마을을 침수시켰던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 약을 흡입하기 위해 이 강을 찾던 고등학생 미첼은 강 아래에 주민이 하나 없는 마을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미첼은 그 당시 기억을 반영해 토미의 후회와 회상을 담은 밀포트 레이크라는 곡의 가사에 사용되었다.


모든 시간을 낭비했고 (Wasted all the time)/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어 (Waited for no one)/

너무 조심스러워하지 마 (Don’t be so cautious)/

물은 많은 것을 씻어버리지 (Water washes away many things)/

하지만 나는 고백할 수가 없어 (But I can’t come clean)/

아니 나는 고백할 수가 없어 (No, I can’t come clean)


헤드윅이 토미에게 지어준 이름인 토미 노시스(Tommy Gnosis) 역시 미첼이 사용한 메타포였다. 미첼은 그노시스파의 복음서(Gnostic Gospels)에서 이름을 가져왔는데, 그노시스파의 특징은 예배를 올릴 권위적인 교회가 필요하지 않고, 신도들이 돌아가며 사제를 맡으며, 예배에 있어 남녀가 평등하고, 때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성경에 마리아 막델레나 복음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미첼은 “정말 위험하죠?”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더불어 그노시스파는 창조자의 창조자가 양성의 여신 ‘소피아’라고 믿었는데 소피아가 낳은 아이가 나중에 데미우르고스(demiurge)가 되어 우리를 창조했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중 어떤 이들은 성경의 이브가 소피아를 재현한 것이라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예수가 이브를 재현한 것이라 주장하는데, 그것은 이브와 예수는 모두 사랑과 앎을 세상에 전파했다는 공통점이 있고, 둘 다 오늘날 가부장제와 맥락을 같이 하는 데미우르고스와는 반대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미첼은 트렌스젠더 캐릭터인 헤드윅에 대해 정작 헤드윅 본인은 오늘날 자신을 스스로 트렌스젠더라고 칭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트랜스(trans)’는 무언가를 건너는 것을 뜻하는데 그 행위는 선택을 필요로 하며 그런 맥락에서 한셀은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셀의 성전환은 자책하는 엄마, 기만하는 애인, 아수라장인 정부, 그리고 데미우르고스에 의해 강요당한 것이었다. 타의에 강요된 결정으로 이후 혼자 외로워진 여자 헤드윅은 가면을 통해 본연의 자아를 드러내게 되고, 미첼은 헤드윅의 이러한 심경을 담은 곡 ‘위그 인 어 박스(Wig in a Box)’를 불렀다.


‘롱 그리프트(The Long Grift)’ 와 ‘미드나잇 라디오(Midnight Radio)’ 는 ‘스퀴즈박스!’에서 만났던, 그리고 2004년 세상을 떠난 연인 잭에게 헌사하는 곡이었다. 특히 헤드윅의 피날레곡인 ‘미드나잇 라디오(Midnight Radio)’는 트래스크가 뮤지컬 <헤드윅>을 위해 마지막으로 작곡한 곡으로, 미첼은 이 곡을 한 번도 불러주지 못했던 잭을 위해 부르고 싶다고 했으며, 늘 낙오자와 아웃사이더 동료들을 자랑스러워 했던 잭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잭처럼 싸우고 있으니 서로에게 친절하자는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미첼은 공연 말미에 작곡가 브라이언 웰러(Brian Weller)와 함께 내년에 팟캐스트 형식으로 출시 될 신작 뮤지컬 <앤썸(Anthem: Homunculus)>에 대한 소개를 덧붙이며 이 작품에 포함될 신곡인 ‘End of Love’를 불렀다. 이 작품에서 미첼은 뇌수술을 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주인공 역을 맡을 예정이며, 주인공은 사람들이 기부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음악을 통해 인생을 회상한다고 소개한다는 줄거리다. 그 외에도 미첼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동생과 후생에 만나는 상황을 가정하고 쓴 곡 ‘I Exist’와 입양 보낸 아이에게 엄마가 부르는 노래 ‘Love for Free’ 를 선보였는데 이 곡들 역시 미첼과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이야기들이 주된 모티브로 활용되었다.


개인의 굴곡진 인생사를 통해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미첼과 헤드윅의 이야기

본 공연은 미첼과 헤드윅의 굴곡진 인생사를 통해 미첼 개인과 헤드윅 내면의 로드 무비를 동시에 들여다본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공연의 내러티브는 비단 개인의 특정적인 인생사의 범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 전체의 여러 가지 이슈에 어떻게 수렴하는지를 보여주며 전체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동독과 서독의 비무장지대에 대한 이야기 역시 한국 관객에게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소재였으며, 가부장제와 성별, 성적지향에 대한 억압 등과 같은 이슈 역시 현재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이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사회의 상황과 결코 멀지 않았으며 미첼은 그 가운데서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대안으로서 부드럽게 제시해주는 듯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 옳고 그르다고 여겨지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재고할 수 있는 살아있는 사례를 보여준 셈이다.


2008년 ‘존 카메론 미첼 특별전’ 내한 당시 미첼은 뮤지컬 <헤드윅>의 전세계 팬 중 한국 팬이 제일 많고 열성적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표하며 이에 대한 다큐를 제작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필자는 <헤드윅>이 가진 여러 금기에 대한 주제들이 보수적인 환경에 갇혀 있는 한국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대답했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단순히 금기를 깨는 파격성 외에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굴하지 않는 도전과 용기, 사랑과 위로, 매우 특수한 개인의 내러티브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상황과 고스란히 겹쳐지며 지역과 시대를 건너뛰는 보편적인 주제의식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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