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운명을 타인이 결정하게 할 것인가
미국의 패권 전략은 시대에 따라 변형됐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힘과 돈, 그리고 협상을 가장한 일방적 거래.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 미국은 문명화라는 명분으로 필리핀을 점령했고, 쿠바,푸에르토리코,괌을 식민지화했다. 파나마운하는 경제적,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되었고,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리며 경제와 안보를 이유로 미국 개입의 실험장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트럼프 2.0 시대가 열렸다. 그는 21세기판 제국주의를 실행 중이다. 무력 대신 경제와 외교를 앞세운다. 그린란드를 사겠다고 덴마크에 제안했던 것, 파나마운하의 통제권을 다시 가져오려 하는 것,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푸틴과 종전 협상을 진행한 것. 모두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트럼프의 방식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미국의 힘을 극대화하면서, 필요 없는 동맹은 과감히 정리하는 것. 이번 우크라이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쟁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에 전쟁 지원금 보상으로 희토류 50% 지분을 요구했다. 그들에게 군사적 개입은 도움이 아니라 투자였고, 비용을 회수할 방법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다면, 한반도라고 다를까?
트럼프가 다시 김정은과 마주 앉았을 때, 한국이 협상 테이블의 필수적 파트너가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판단일 것이다. 이미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랬다. 싱가포르, 판문점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개인적인 딜을 선호했고, 한국은 철저히 주변부에 머물렀다. 트럼프 2.0 시대에도 이 패턴이 반복될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미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북한과의 ‘빅딜’을 위해 주한미군 감축,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대북 제재 완화같은 카드가 언제든 테이블에 올라올 수 있다. 그리고 그 협상장에서 한국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초대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한국 정치권은?
국제 감각은 사라졌고, 국익보다 정권 다툼이 우선이다.
여당은 정권을 지켜야 한다며 외치고, 야당은 정권을 찾아야 한다며 외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운다. 정작 국가적 위기에 대한 비전과 대책을 마련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과거에는 한국 정치권이 외교 문제에서 최소한의 초당적 협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와중에도 정쟁만 난무할 뿐이다.심지어 미국이 북한과 직접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국내 정치권은 이 사안을 정권 유지 또는 탈환을 위한 수단으로만 소비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운명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외교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이상, 국가적 전략이 있을 리 없다. 최소한 외교·안보 문제만큼은 정쟁에서 분리해 국가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여야를 보면, 상대 당의 정책이 무엇이든 반대부터 하고 본다. 한미 관계를 강화하면 친미 사대주의라 공격하고, 대북 유화책을 쓰면 퍼주기라고 비난한다. 이럴 거면 트럼프가 한국을 협상에서 빼버리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다.
트럼프는 돈과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한국 역시 군사적·경제적 협상력을 강화해 트럼프와 미국이 한국을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이 거론될 때마다 소극적으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이를 역이용해 한국의 자주적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한국이 미국에 제공할 수 있는 핵심 자산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한국은 가진 힘을 최대한 발휘하여 미국과의 기술 협력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협상 테이블에 반드시 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아닌 누군가의 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내가 트럼프라도 남한보다는 북한과 협상하겠다. 뭐, 얘기를 나눌 사람이 있어야 얘길 하지. 리더가 없는데.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누군가 대신 결정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