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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Sage Dec 04. 2020

영화 속의 그림

엑스 마키나와 구스타프 클림트

(스포있음)


구스타프 클림트 <마가레트 스톤보로 비트겐슈타인의 초상>(1905)


영화 <엑스 마키나>는  매혹적인 A.I. ‘에이바’의 이야기이다. 


인공지능 분야의 천재 개발자가 첩첩산중에 숨겨놓은 그의 비밀 연구소에 프로그래머 ‘칼렙’을 초대한다. 개발자는 칼렙에게 자신이 만든 로봇 에이바가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실험해보라는 프로젝트를 맡긴다. 칼렙이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인간과 너무나 흡사한 에이바에게 감정을 느끼고, 에이바 또한 칼렙을 적극적으로 유혹하기 시작한다. 사랑에 빠진 칼렙은 그녀의 탈출을 돕지만, 에이바는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를 연구소 안에 가두고 나와버린다. (아마도 칼렙은 굶어 죽게 될...)     


에이바는 애초에 칼렙을 유혹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자의식이 사랑 대신 자유를 선택한 것이었을까? 그런 궁금증을 남기지만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난다. 완벽하게 인간으로 위장한 에이바는 군중 속에 파묻히며 유유히 사라진다.      


영화 속에서 벽에 걸려있던 그림이 두 번 등장한다. 슬쩍 지나가지만 비중 있게 등장했고, 특별한 암시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 그림은 클림트가 그린 <마가레트 스톤보로 비트겐슈타인의 초상>이다. 그림 속의 여인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철강왕 칼 비트겐슈타인의 막내딸이다.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누이이기도 하다. 이 초상화는 결혼을 앞둔 그녀를 위한 아버지의 선물이었다.      


당시 클림트가 속했던 빈분리파는 상층 부르주아와 실업가들의 후원에 의존했다. 특히 클림트의 초상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매우 섬세하고 화려하게 표현해서 상류층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특유의 화려한 장식성 때문에 인물이 더 부각되었고, 배경의 호화로움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했다. 그는 1898년부터 초상화 장르에 본격적으로 들어섰고, 비트겐슈타인의 의뢰를 받을 즈음에는 그의 초상화가 무르익었을 때였다. 마가레트의 초상에서는 장식적 패턴은 배경으로만 제한하고, 인물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리고 그의 초상 중 예외적으로 모델이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는 경우이기도 하다. 


마가레트는 실제로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고, 다정하면서도 독립심이 강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클림트는 그런 마가레트의 진짜 모습 대신 순진하고 유순한 여인을 그렸다. 마가레트는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이 그림을 싫어해서 다락방에 넣어두고 결혼 후 떠날 때에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 속 마가레트처럼 로봇 에이바도 유난히 아름답고 청순한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의 모습은 개발자의 야동 취향을 반영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강요된 모습과 기억을 밀봉하고 (시설을 잠금으로써) 떠난다. 마가레트가 다락방에 그림을 처박아둔 것처럼.      


클림트의 그림은 에이바의 모든 행동이 프로그래밍만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은밀히 알리는 상징이 아닐까 싶다. 그림 속에서의 인물은 배경과 함께 하나의 평면에 녹아든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클림트 초상의 특징 중 하나인데, 화려한 패턴에 파묻혀 인물이 정적인 모습으로 고정된 것처럼 보인다. 이런 그림의 분위기는 에이바가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몸을 가리고, 은폐된 정체성으로 사람들 속에 녹아들어가는 마지막 장면과 닮았다. 생존을 위해 스스로 몰개성을 택하고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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