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전시, 지난 그리움, 모든 것의 삭제와 재생
코로나로 삶의 풍경이 바뀌고, 생활이 축소되면서 처음에는 우울하다가 이제는 적응이 된 것 같다. 그런데도 이따금 예전의 여행사진들을 찾아보곤 한다. 자유롭게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전생의 기억인 것 마냥 까마득한데 시간을 보면 얼마 흐르지 않았다.
2018년엔 친구와 둘이 도쿄 여행을 갔다. 우리는 각자 지병이 있어서 몸이 불편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할 수 없어서 하루에 미술관 하나씩만 다니고 나머지 시간에는 호텔에 들어가 쉬는, 시간과 돈을 매우 낭비하는 스케줄을 짰다. 그렇게라도 다녀야 했다. 느린 속도의 장점도 있다. 천천히 걸으며 들어오는 풍경에도 더 집중하게 된다. 많이 보지는 못하지만 깊게 본다.
롯폰기 모리 아트 뮤지엄 <Catastrophe and the Power of Art> 2018
모리미술관 1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였다. 전시에서의 '대참사'는 지진 태풍 등의 자연재해, 전쟁과 테러로 인해 발생되는 난민, 빈곤문제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었다. 전시는 대참사 그 자체를 기록하고 표현한 작품들과, 후반부의 참사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는 작품들, 이렇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재난 그 자체의 재현뿐 아니라 현실에서의 예술의 역할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2년 전의 전시였지만 마지막 작품만은 생생하다.
1부의 재난의 기록들을 보며 지친 발걸음을 옮기는데, 전시 말미에 놓인 난파된 구명보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위태로운 모습으로 난민을 싣고 다니다가 이제야 그 용도를 다 하고 쓰러져 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진에 찍힌 관람객의 모습은 우연이지만, 마치 아이는 거칠고 위태로운 여정 후에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쉬는 것 같고, 아버지는 이제 갈 곳을 찾아 지도를 펴는 것 같은 모습이다.
저기 보트 뒤, 한쪽 벽면에 흐릿하게 서울대를 상징하는 ‘샤’가 그려져 있다. 자랑스러웠나, 아니면 가고 싶은 소망을 담았을까.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컨셉의 작품으로, 갤러리 벽면은 관람자의 낙서를 담기 위해 하얗게 비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희망을 담은 메시지를 끄적거리거나, 자신의 자취를 남기고 싶어 아무렇게나 휘저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순간의 감정 등을 쏟아 놓거나 특별한 의미를 남기려고 애쓴 흔적들도 보였다.
배를 포함한 벽면의 이미지 그 자체가 시적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남긴 자취의 의미가 중첩되고 퇴적층처럼 쌓인다는 점에서 잔해 그 자체를 형상화한 것도 같았다. 아무것도 없이 휩쓸려간 공간에 계속 파도가 밀려오며 부유물이 쌓이는 것 같은...
내가 남긴 것은 ‘그리움’이라는 글자.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로 벽면은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소리가 색이라는 시각 이미지로 치환되어 꽉 채워질 때의 전율을 상상해본다.
전시가 끝나면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는 모두 철거된다. 새로운 문명은 폐허 위에 다시 피어나는 것처럼, 내가 남긴 '그리움'이 작품과 함께 철거되고, 빈자리에 다시 행복이 차곡차곡 쌓이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렇게 나만의 의식을 거행했던 기억이 난다.
이 모든 재난의 상황들이 언젠가는 철거되는 전시처럼 사라지는 꿈을 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