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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Apr 16. 2024

아는 얼굴

반가운 얼굴 되기

 계단에서 내려오던 여자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녀가 반갑게 '언니!' 하는데 어리둥절하다. 나를 보며 반색하는 얼굴이 낯설. 

 서로 팔을 뻗으면 하이파이브가 가능할 만큼 가까운 거리 되자 그가 당황했다. 자기가 아는 사람인 줄 알았단다.

 나를 닮다는 누군가가 꽤 반가운 사람었나 다.

 

 생각지 않은 곳에서 맞닥뜨린 '아는 얼굴' 가운 시람이라면 다행이다.




 

 봄꽃이 한창인 일요일에 동네 산책을 나왔다가 내친김에 멀리까지 걸었다. 꽃나무의 자취를 따라 어 본 우리 옆동네옆옆동네들에도 아는 사람들이 산다.

 이 도시에 산 지 50년이 넘다 보니 아는 얼굴이 살지 않는 동네가 없다.


 집에서 나와서 사촌 시누이가 사는 옆동네를 지나 예전에 살던  쪽으로 걸었다.  동네 언저리는 그 사이 변한 것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아이들과 봄꽃 사진을 찍던 작은 공원은 여전히 벚나무 길이 무성했다.     

걷다가 고개를 들면 G의 집 발코니가 보였고, 재건축이 한창인 L언니네 단지 지나갔다. 중간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내다 뵈는 골목 안에도 아는 얼굴들이 한두 명씩은 산다. 지금 너희 집 앞이야, 하고 메시지를 보내면 반가워해 줄 것이다.


 어딜 가나 아는 얼굴이 는 도시라니, 좋은 건가, 나쁜 건가.

 같은 동네에 15년 이상 살 때다. 놀러 나갔다 온 작은애가 한숨을 쉬며 말다.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사는 이 동네는 어딜 가나 아는 사람이 있어 피곤하다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고.

 나도 어릴 땐 그랬다. 고등학생  나는 이 도시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고 어른이 되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

 전자는 이루었지만 후자는 아직 이루지 못하고 내가 나고 자란 도시에서 질기게 살고 있다.

옛동네의 작은 공원에 가득한 봄

  



 내년, 3년 후에 혹은 10년 후에 내가 어디에서 살지 알 수 없다. 어린 딸들이 성인으로 자라는 내내 살던 집에서도 그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다.

 '도 여전히 살아있'라는 것조차 확신할 수 없는 인생이니 미래에 '어디에서 살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게 우습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아는 얼굴이 도처에 있는 이 도시에 쭉 더 살아도 좋고,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는 낯선 곳도 그런대로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느 타지에 처음 살러 간다 해도 그곳에서 내가 아는 얼굴과 닮은 얼굴을 만날 수도 있다. 아예 모르는 얼굴이라도 새로 사귀면, 아는 얼굴의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는 얼굴은 만나서 반가운 얼굴과 만나면 모른 척하고 싶은 얼굴로 나뉜다.

 다행히 나에게는 아직 반가운 얼굴이 더 많다.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오고 올라가다 조우했을 때 슬쩍 피하고 싶은 얼굴도 몇 있다. 이미 눈이 마주쳤다면 미처 기억이 안나는 척할지도 모른다.

 그런 난감함을 감안하면 "피하고 싶은 얼굴'더 늘리지 않고 싶다.

 

 입장을 바꿔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만나면 반가운, 아는 얼굴'남으면 좋겠다.


 은근히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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