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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Nov 27. 2024

크리스마스트리를 둘 데가 없어

 크리스마스가 한 달 후로 다가왔다. 바깥세상은 11월이 되기도 전부터 성급한 성탄 분위기를 조성했다. 쇼핑몰과 상점들은 10월 말의 핼러윈 무드는 건너뛰고 겨울의 대목인 크리스마스에 일찍 집중하는 느낌이다. 크리스마스는 종교와 국경을 초월한 전인류의 이벤트다. 국민의 대부분이 가난하던 내 유년기, 70년대에도 산타할아버지는 잠자는 아이들머리맡에 다녀갔으니까.


 도심의 화려한 연출을 구경하는 것만큼이나 집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은 즐겁다. 딸들이 어릴 때는 높이가 1미터쯤 되는 아담한 트리를 함께 꾸몄다. 트리는 접어서 보관했고 해마다 새로운 오너먼트로 조금씩 변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애들이 좀 컸다고 트리 꾸미기를 시답잖게 여기게 되면서부터는 나 혼자 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네 집에 여럿이 모여서 나뭇가지와 허브, 꽃과 솔방울로 큼직한 리스를 만들어서 시들 때까지 걸어두었었다. 

 올겨울은 평화로운 성탄절 오후에 같이 낮잠을 잘 노견도 없어 쓸쓸할까 봐 크리스마스 트리나 멋지게 할까 싶었다. 폰을 열면 어디에서나 내게 진짜(같은) 전나무 트리 광고가 떴다. 설마 네이버가 내 마음을 읽고 관련 광고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겠지?

 

 그대로 놓기만 하는 풀세트 구성은 비싸지만 아주 근사했다. 그런데 집안을 둘러봐도 놓을 데가 마땅치 않다.

 가구가 많지는 않지만 살림이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집에 이미 있는 것들 중 불필요한 것을 없앤다면 모를까 덩치가 있는 루키를 새로 들여놓으려니 막상 내키지 않았다.

 소파 옆에 개집과 방석이 있던 자리가 비었으니 가장 적당하다. 그런데 길어야 한 달인 성탄 시즌이 지나고 일 년 중 열 달 이상 보관을 하는 아이템이니 새 트리 구입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 작은 집에 많은 살림을 놓기도 하고 큰 집에서 휑하게 살기도 한다.

 그래서 둘 데가 없다,는 판단에는 얼마나 큰 공간에 사느냐보다는 빈 공간에 대한 가치관이 더 크게 작용한다. 가구 배치를 딱 맞추고 그 사이의 여백까지를 인테리어의 완성으로 여긴다면 남들이 보기에는 '둘 데'가 많더라도 본인은 더 이상 둘 데가 없다고 할 것이다.

 우리 거실에도 트리를 놓겠다 하면 몇 군데 가능하다. 그렇지만 나는 여러 가지 고려 끝에 새 트리를 사서 둘 데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두 달 전에 우리를 떠난 반려견의 추모코너에다 꽃 대신 소소하게 성탄의 의미를 꾸미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작은딸이 제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나무에 장식을 하나하나 달았다는데 1인용 소파 옆에 놓은 모습이 제법 커 보인다.

 직장인이 되어 처음으로 독립해서 맞이하는 성탄절이니 예쁜 크리스마스트리는 로망이을 거다. 반짝이는 트리 옆에서 와인도 마시고 캐럴도 들으면 혼자라도 외롭지 않고 좋지.

 나는 주부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저 예쁜 트리는 올해의 역할을 다하면 우리 집으로 가져다 보관해야겠구나 하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작은딸의 공간을 차지하는 크리스마스트리

  

 전용면적이 9평인 딸의 집없는 거 빼고 있는 살림은 다 다.

 우리가 가면 같이 앉을 만한 바닥 공간은 없어서 소파와 식탁 의자에 앉는다. 더 이상 뭐가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집에서도 딸의 눈에는 트리를 놓을 공간이 보인 것이다.


 갑자기 남편의 옛날 자취집이 떠올랐다. 남편도 지금 딸 또래였던 복학생 시절 자취를 했는데 딸의 오피스텔과 비슷한 크기의 복도식 아파트였다.

 비슷한 나이였던 아빠와 딸의 공간은 남녀의 차이에다 30년의 시간 차이가 겹쳐서 서로 다르다. 남편은 빗자루와 걸레로 청소를 했고 딸은 로봇청소기를 쓴다. 딸의 방에는 전신거울과 화장 코너가 있고 남편의 방에는 책장이 가장 큰 가구였다.

 지금 그 방을 바라본다면 남편은 어디다 트리를 놓냐고 할 테고 딸은 이렇게 놀 데가 많은데!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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