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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 치어리더 Jul 14. 2015

숙박료 0원의 칭다오

칭다오,  중국에서 카우치서핑한 이야기 

어느 구석을 가던지 다 거기 사는 사람들이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거길 안가봤고 모르는데, 계획을 다 세우고 갈 수 있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그게 가능하면 인터넷으로 세계일주를 하지 왜 날아가.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칭다오에 관한 것은, (내가 마시지도 않는 ) 맥주가 맛있다는 것과, 그리고 지금 춥다는 것. 


24KG짜리 짐을 부치고 한가하게 비행기에 앉아있던 나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일단은 방송이 다 중국어이며, 볼빨간 사람들이 많으며, 일단 이륙하자 북극곰 파카들을 꺼내서 몸들을 다들 감싸시는데, 나는 민소매 옷에 쫄바지를 입고 아까까지는 정말 많이 더웠던 팔뚝에 닭살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며, 구멍이 숭숭 뚫린 니트 티셔츠 하나에 의지해 있었다. 새벽 1시 이륙 6시간 비행중 5시간 30분을 추위에 떨면서 맞은 비행기에서의 아침은, 벌써부터 홈리스의 기운을 안겨주었다. 


비행기 바퀴가 대륙의 바닥을 끄는 소리가 나자, 벨트 푸는 소리가 300개쯤 들려왔다. 전에 없이 무한경쟁으로 사람들에게 밀리며 비행기를 빠져나와야 했다. 

이런거 정말 오랜만이었다. 다행히 입국심사대는 붐비지 않았다. 긴 내국인 줄과 아무도 없는 외국인 줄. 싱가폴이나 동남아에서 이런일이 있으려고. 


24KG 나의 짐을 찾아 나오니, 짐 한쪽이 열려있다. 감사합니다. 한쪽만 풀려있어서... 다시 줄을 서서 세관을 통과하여 나오니, 약 5발자국 앞에 '이릴리님' 이라는 이름표를 든 효선씨가 나와있었다. 


효선씨와는 처음보는 사이였다. 칭다오에서 중국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에어비앤비의 방들은 맘에 드는 방이 없어서 처음으로 카우치 서핑(https://www.couchsurfing.org)으로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그곳에서 나에게 연락을 해 온 중국인 아가씨다. 


카우치 서핑은 '소파대여' 모임이다. 집에 남는 소파가 있으면 여행객들에게 내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파를 내어주는 경우도 있고 남는 방을 주는 경우도 있다. 돈을 받지는 않는다. 그대신 소파를 자기 집에서 빌려주고 많은 여행객들에게서 좋은 후기를 받으면 본인이 다른 곳을 여행할 때 소파를 빌리는데 좋을 것이다. 상부상조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는 아이들인 것이다. 


효선씨의 프로필에는 아무런 후기가 남겨져 있지 않았다. 아마 카우치 서핑 호스트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내가 칭다오에 간다고 내 프로필을 공개한 후 초청을 한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다고 했고, 방 사진도 올려두었는데 꺠끗하고 좋아보였다. 

싱가폴에서 뭐 갖고 싶은거 없냐고 했더니 엽서한장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 엽서는 내가 떠나오는 날 부쳤으니, 아마 수일 후에 도착할게다.


중국에서 카우치 서핑을 하겠다고 하니, 친구들은, 야 거기 싱가폴 아니야, 누군줄 알고 남의 집에 잔다는 거야? 라고 걱정들을 했다. 나는 물론 3만원짜리 호텔에 머물러도 되었고, 7천원짜리 호스텔을 예약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이나, 중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카우치 서핑 호스트 입장에서도 내가 누군줄 알고 선뜻 나를 집에 들이겠는가? 나도 첫 카우치 서핑이라서 프로필에 나를 보증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남자일 수도 있는거였다.


효선씨와 함께 나의 거대한 짐을 밀고끌고 버스를 타고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하였다.  외동딸을 위해 부모가 마련해준 방 두 개짜리 아파트는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작년 11월에 이사 온뒤로 혼자 살기 너무 적적해서 카우치 서핑을 시작해보게 되었단다.


-언니 아침 뭐 먹을래요? 빵도 있고 국수도 있고..

-국수요

-아! 중국식 짜장면! 

그녀가 내민 다진 고기 백퍼센트의 춘장은 고기를 안먹는 내게는 너무 한 것이었다. 물론 공짜로 재워주고 먹어준다는데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안먹는 건 안먹는거다. 조심스레 나.. 고기 안먹어요 라고 하자 그녀는 금방 깨 양념으로 바꾼 국수와 함께 팥앙금이 든 새알심 수프를 내왔다.


따뜻한 아침을 마치자, 언니 여기가 언니 방이예요 라며, 심플하지만 두툼한 요가 깔려있는 방으로 나를 보내주었다. 


-언니 사실 오늘 집들이 하기로 해서 회사 동료 두명이 올거예요. 이따 점심때 봐요.


기절한 듯 잠을 자며 꿈을 꾸었다. 중국어를 못해서 눈내리는 산장을 헤매는 꿈이었다. 헤매다가 따뜻한 찜질방에 들어가서 사람들이랑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녀가 나를 불렀다. 

-언니 점심먹어요!


그녀의 회사 동료들 한국어 중국어가 동시에 가능한 중국인 2명과 한국인 1명과 함께, 훠궈 (중국 샤부샤부) 점심 파티가 시작되었다. 

그분들은 나를 많이 신기해하셨다. 나는 중국어로 왈왈 하시는 그분들이 너무 부러울 뿐이고. 

회사 그만두고 돌아다니며 중국어도 배우고 얼후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정말 더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고, 샤부샤부에서 고기를 안 먹는다고 했더니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보시며 자색 고구마를 내미셨다. 이거라도... 좀 드세요.

술을 싫어하는 나지만, 그 유명한 칭다오 맥주가 눈앞에 있는데 한 모금 안 마실려구? 

.....미안하지만 난 술 맛은 잘 모르겠어서..... 


한국어와 중국어가 뒤섞인 샤브샤브 파티. 

그 누가 알았겠는가, 24KG가방을 힘겹게 끌고 싱가폴을 떠난 내가 12시간뒤에 샤브샤브 파티를 하고 있을 줄.


파티 후 효선씨는 친절하게 나를 폰 개통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쏼라쏼라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며, 나 혼자 와서 과연 이 전화카드를 살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내 폰카드는 무려 300MB를 더 제공하는 카드였다. 왜냐고? 중국사람들은 4자가 죽음을 뜻한다고 하여 싫어한다. 폰 번호에 4가 있는것을 선택하면 대박 혜택을 준다고 해도 안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번호를 가져왔다. 12자리중 한자리 4 있고, 심지어 내 싱가폴 폰 번호랑도 뒷자리가 같음....

효선씨 말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상관 안한다고.


두번째 날, 그리고 두번째 카우치 서핑 호스트를 만났다.  

-와, 살사, 스윙, 폴댄스, 벨리댄스... 너 도대체 못하는게 뭐야? 나도 살사 출 수 있고, 스페인어 관심있으면 내가 가르쳐줄 수도 있는데, 우리집 소파에 와서 잘래?

라는 초청장을 받았고, 그의 회사 앞에서 덜덜 떨면서 그를 기다렸고, 머지 않아 핸드폰을 쳐다보던 내 시선이 남자의 구두에 머물렀다. 

고개를 들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추운 겨울 목도리와 긴 검은 코트를 입은 스페인남자, 그가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칭다오에 온 걸 환영해.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이라 했다. 1위안(180원) 짜리가 없어서 초면에 그가 내 버스비를 내야했다. 한 정거장 동안 우리는 서로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마쳤다. 

방 세 개 짜리 아파트는 포근하고 따듯했다. 저녁을 사겠다고 하니 그는, 내가 저녁 만들어줄테니까 앉아봐 라고 했다. 

감자껍질을 벗기고 나서 감자가 익어가는 후라이팬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 동양 여자가 들어왔다. 

-아, 네가 여기 사는 중국 플랫 메이트구나 

-아니 나 스페인에서 왔는데.

다시 봤더니 교포 느낌나는 그녀. 감자 냄새를 맡더니 그에게 달려가며 말한다. 

-스페인식 감자 오믈렛 만드는거야? 와우!


그가 스페인식 오믈렛 (뭐뭐 빠따따 라던데...)을 부쳐 내 놓는동안  그와 함께 사는 3번째 플랫메이트 중국 여인이 도착했다. 

스페인 여인은 하몽을 내왔고, 어제 타오바오에서 주문했다는 빵 만드는 기계로 만든 홈메이드 식빵을 썰어놓았고, 중국 여인이 중국 감귤을 꺼내왔다. 

스페인 남자는 라만차(돈키호테의 지방이자 그의 고향)에서 온 치즈에다 토마토에 올리브 오일을 뭍인 샐러드까지 내놓았고, 우리 넷은 식탁에 앉았다. 

2시간전까지 남남이었던 우리가, 함께 밥을 먹는 풍경.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장면. 처음먹어보는 스페인 오믈렛에 감탄하며, 싱가폴, 한국, 중국, 스페인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이제 '친구' 가 되었다. 


소파 불편하면 내 침대로 와서 자도 돼. 라는 그의 친절한 제안은 거절했지만, 소파는 충분히 편안했고, 거실은 반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더웠다. 밤 11 시까지 그들의 소파이자 나의 침대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또 다른 중국 여인이 집에 찾아왔다. 운 좋은 스페인 녀석.


피오나는 캐나다와 프랑스에서 살았던 중국 사람이고, 내일 모레 캐나다로 영구히 떠난다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더니 내가 맘에 들었는지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 내 송별회인데, 와 줄래?

응 물론이지, 초대에 기뻐해야 할지, 네가 떠난다는것에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만, 저번주에 싱가폴에서 열린 내 송별회에서도 담담했던 나다. 


홍콩 스트리트에 가서 스페인 여자 친구를 만나서 놀랍게도 모던한 50여개의 커피숍이 운집한 커피스트리트를 거닐었다. 그리고 약속 장소인 이탈리아 음식 점에 갔다. 그리고 외국인 18명을 만났다. 칭다오에 있는 외국인이 다 니 친구인거니 피오나. 


나에게 중국어를 쓸 기회따위는 없다. 그들 모두 영어를 잘하고, 주문은 그들이 중국어로 한다.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너희들은 어찌 그리 중국어를 잘하냐고 묻고, 애들은 그냥 하면 된다고 한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 중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송별저녁이 끝나고 결국 피오나는 울음보가 터졌고, 어제 그녀를 첨 본 나는 어색하여 옆자리 오스트리아 남자애와 월세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칭다오의 월세는 싱가폴의 4분의 1 수준인걸로. 


앞자리의 이탈리아 남자는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도대체 싱가폴을 떠나서 칭다오로 오는 너는 뭐야?

라고 물었다. 

-칭다오 좋아보이는데 왜...? 

-난 싫어, 공해에, 춥고. 

-그럼 넌 어디가 좋은데?

-칭다오 빼고 다. 


그는 옆자리 다른 애들에게 그 후로 1시간동안 본인이 왜 칭다오를 싫어하는 지 이야기 했고, 더 할 수도 있어 보였다. 저녁 식사가 끝나지 않았다면.


피오나는 울며 우리를 LPG라는 클럽으로 운전해 갔다. 나는 스페인 아이들의 완강한 주장으로 계속하여 미니축구 (베이비풋)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내가 참가하는  팀은 항상 나때문에 졌지만 그들은 항상 즐거워했다. 

그리고 다시 나의 소파가 있는 집으로 오는 길. 스페인어 노래가 흘러나오는 차에서 양 옆에 스페인 애들을 끼며, 스페인 노래를 따라부르는 그들을 바라보며, 

난 생각 한것이다. 


난 누군가, 그리고 여긴 어딘가.


칭다오에 가면, 중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쏼라쏼라 나의 중국어를 얼른 향상 시켜야지! 라고 생각했다. 부질없는 계획이여.



 카우치 서핑을 하면서 몇 달간이나 여행을 했다던 태원준씨와 그 어머니 한동익씨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카우치 서핑은 공짜 숙박이 아니예요. 호스트에게 선물도 해야 하고, 요리도 해줘야 해서 돈이 더 들어요. 저희 어머니가 가는곳마다 비빔밥을 만들어서 비빔밥 값만 100만원이 넘게 들었어요' 라고 했는데,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카우치 서핑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건 카르마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타인도 나를 언젠가는 도와준다는 것) 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어느정도는 즉석에서 주고 받는 것이 있다. 

호스트가 게스트에게 배려를 하고 신경을 써주는 것은 말 안해도 당연하므로 논외로 하고, 게스트도 돈 주고 있는 것 보다 돈을 조금은 아낄지 몰라도, 선물을 사가거나, 현지에서 밥이나 선물을 사거나, 본인 나라 요리를 하거나, 호스트가 밤늦게 까지 이야기를 할 때 등등 호스트를 배려 해야 한다.  

카우치 호스트들 (칭다오에서 모두 친구인 그들) 에게 이미 일주일을 신세진 바, 더 이상 신세를 지기가 민망하여 호텔을 알아보는 중에, 전에 나를 호스트 하겠다고 이야기 했고 내가 그냥 흘려버렸던 스페인 청년이 다가와 물었다. 

-릴리야 뭐해?

-응 나 호텔 좀 알아보고 있어

그러자 흐르는 정적.

잠시 후 그는

-왜? 야, 나 너 호스트 하려고 어제 대청소했단말야. 

-아니 난 너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불편하면 왜 너에게 호스트하겠다고 제안하냐? 넌 하루종일 집 청소한 내 생각은 안해?왜 남의 집에선 자면서 우리집에선 안자?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 백배사죄하고 그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빈츠와 카누, 쿠크다스와 떡볶이 고추장, 초컬릿 바등을 수퍼마켓에서 3개씩 샀다. 4만원이 나왔다, 황당한 표정으로 계산대 앞에 서있자 주인 아주머니께서 친절하게 확인해주셨다 4만원 맞았다. (참고로 칭다오에서 3만원이면 이비스 호텔을 잡을 수 있다-불평하는 것은 아님, 그냥 사실이 그렇다고) 


낮에는 일을 하고, 밤까지 커피스트리트를 돌아다니며 칭다오의 차란 차, 디저트란 디저트는 모두 다 씹어 먹고 그가 회사 마치고, 중국어 수업 마치고, 헬스장까지 마치고 나서 그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에게 집앞이라고 메세지를 하고 덜덜 떠는 5분 상간에 그 집앞 샤브샤브집 아저씨가 추운데 들어와서 차한잔 하라고 하셔서 그 집에서 차를 한잔 마셨다. 말이 잘 안통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건 바보처럼 말하거나, 아니면 귀여운척하거나 인데, 난 그냥 후자를 택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공짜로 차도 준다.


들어가니 정말 놀랍도록 반짝 거리고 깨끗한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그는 나를 위해서 요리를 만들려는 참이었다. 

스페인식 저녁을 먹고, 중국 인터넷에서 발견한 스티브잡스 영화를 보고, 빅뱅이론을 보며 웃은 후, 그는 스페인어 스포츠 중계가 흐르는 본인 방으로, 나는 굿나잇 키스는 입에다 하는거라는 그의 말을 못들은 척 하며 그가 곰인형을 얹어놓은 내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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