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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Nov 28. 2020

아이의 질문

아슬아슬하다

폭풍우를 맞은 지 어느덧 일 년 반이 지났다. 이제 남자에게서는 무슨 말을 들어도 크게 휘둘리지 않고 단단해진 여자는 스스로 대견하다. 감정적으로 크게 영향받지 않고, 반나절 또는 하루 정도면 일상으로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갖추었다. 전에는 며칠씩 끙끙대며 속앓이를 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얼마 전에도 남자가 갑자기 얘기 좀 하자고 하더니, 아빠가 없어서 문제라도 있는 양 멀쩡히 잘 지내는 아이를 전문가에게 상담받아보자고 하는 것이다. 

 

아빠와 멀리 떨어져 편부모에게서 자라니, 분명 뭔가 결핍이 있을 것이고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네. 이제 ‘편부모’ 아니고 ‘한부모’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아이가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것에 대한 결핍을 왜 이제야 생각하는 걸까요. 이혼을 하자고 할 때는 부부상담도 다 의미 없고 이혼만이 목표인 양 굴었던 남자였다. 여자는 내키지 않았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서 10월부터 학교로 돌아간 아이는 요즘 친구들과 무척 잘 지내고 있고, 영어도 조금씩 편해져서 학교 생활이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가끔씩 엄마와 티격태격 하기는 하지만 일곱 살 아이의 정상적인 성장과정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빠와 하루에 한 두 차례 영상통화를 그것도 한 시간 이상씩 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어느 정도 여자도 인정하는 부분은 있다. 아이가 머리가 커가면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있으면 끈질기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령,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아이가 생기는데, 그 쪼그만 정자가 어떻게 난자에게 갈 수 있냐는 둥, 하도 작아서 공기 중으로 스프레이처럼 가냐는 둥, 엄마는 아빠랑 결혼하기 전에 어떻게 살았냐는 둥, 여섯 살 때와는 다르게 궁금한 것이 무척 많아졌고 내용도 더 구체적이다.  


가끔 한국에 있는 친척과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는, 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냐고, 왜 뜬금없이 호주에 온 거냐고 묻기도 한다. 전에는 받아보지 못한 질문들이지만, 여자는 최대한 솔직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물론 일곱 살 눈높이에서 말이다. 하지만 아빠와의 이혼을 빼놓고는 설명이 어려운 부분도 있어서 그 부분은 설명을 보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곧 이야기해주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남자는 불안한 것일까. 멋지게 싱글 라이프를 살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것도 여의치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일까. 시간이 갈수록 아이가 보고 싶어서 주특기인 혼자 상상의 나래 펴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도 나쁜 쪽으로. 그래서 여자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는 요즘 잘 지내고 있고 그렇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말이다. 아이가 보고 싶고 걱정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니, 아이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좀 더 자주 보내주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혼 사실을 이야기할 때가 오면, 엄마 아빠랑 같이 셋이 있을 때 같이 이야기하겠다고. 여자도 남자가 근처에 와서 살면서 호주의 이혼가정처럼 아이도 같이 보고 하면 모두에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자도 공부가 끝나면 돈을 벌면서 일할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여자는 잠들기 전에, 하루 동안 들었던 아이의 작은 질문들을 떠올리며 가장 나은 설명이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친구들과의 작은 문제들마저도 아이에게는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기에, 여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최대한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려고 한다. 어른들도 인간관계가 가장 힘든 문제인데, 그걸 처음 배우는 친구 관계도 아이에게는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지금 이 과정도 여자는 참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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