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스웨덴에 가다.
스웨덴은 멀고 낯선 곳이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길게 자리한 국토 면적은 한국의 5배, 인구는 한국의 1/5.
이제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파란색 로고의 IKEA, 노벨상, 말괄량이 삐삐, 볼보의 나라.
이곳에 삶의 터전을 잡게 될 줄은! 아무튼 인생은 묘한 것이다.
스웨덴 여름은 밤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이고, 겨울은 해를 거의 볼 수 없는 춥고 컴컴한 긴 계절이다.
우리가 스웨덴에 첫 발을 디딘 건 환상적이게 눈부신 여름이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7,8,9월 여름 이 3달을 바라보며 나머지 긴 어둡고 추운 시간을 참는다고...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우린 신발끈을 풀었다. 찬란한 여름은 여행객처럼 들뜨게 만들었고,
낯선 곳에서 살아가야 할 것들에 대한 걱정이나 비장함, 결의 같은 것은 없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은 곳에서 집, 옷, 음식 등 기본적인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내고, 알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생활 지식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외국에서 살게 되면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종종 갖는다. 그런데 나는 진짜 바보가 되어 있었다.
슈퍼에 가면 이것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하며 한참을 들여다보고, 검색을 해도 대부분은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세탁기를 작동하기 위해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한참을 씨름을 해도 직감과 추측으로 사용법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 솔직히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세탁기의 정확한 사용법은 잘 모른다. )
집을 구하기 위해 헤매던 그때를 다시 생각해봐도 막막했던 시간이었다.
스웨덴은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의 소유권이 개인에게 없다. 매매라는 개념은 거기에 살 권리를 취득하는 것이고, 렌트는 소유권을 제3자에게 넘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집들만이 가능하다.
한국처럼 살고 싶은 지역의 부동산을 방문해서 정보도 얻고, 시장에 나와있는 집들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런 시스템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했다.
한국을 떠나오면서 나는 달랑 20인치 캐리어 4개를 들고 왔다. 당장 입을 옷과 먹을 것, 책, 비상약, 그게 다였다. 숟가락 하나부터 다시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집을 구하고 냄비를 사고 최소한의 가구와 이불을 사고 (다행히 스웨덴 가정은 기본적인 전자제품들은 세팅되어 있었다) 숨만 쉬어도 사야 할 게 너무 많았고,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몰라 헤매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나는 여기에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아이랑 단둘이서 조명도 달리지 않은 텅 비고 어둡고 차가운 집에 누워, 안쪽에서 거는 안전 걸쇠 없는 현관문을 째려보듯 지켜보며 잠 못 드는 날이 많았다.
처음 말을 나눈 스웨덴 사람은 동네 할머니. 동네에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어서 우리는 눈에 잘 띄었다.
어느 날 먹을 것을 사들고 터벅터벅 걸어오는데 말을 걸어오셨다.
언어의 장벽으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지만 이 동네에서 60년을 살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께서는 20년 전에 이혼하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고 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왜 스웨덴에 왔는지 궁금해하셨다. 그리고 가족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왜 한국에서처럼 대충 넘어가거나 거짓말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너무도 이상했다.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내 형체가 뚜렷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첫 경험의 상대는 스웨덴의 처음 보는 할머니였고, 그녀도 이혼녀였다!
아이의 학교는 여름방학 중이었다. 방학이 끝나면 아이도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다.
아이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낯선 곳에 가도, 새로운 환경에 놓여도 긴장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얼마 전까지도 깨닫지 아니 들여다보지 않았던 아이의 모습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재능인지 이제는 알게 되었다.
긴 방학을 보내기 위해 말 한마디 통하지 못하는 아이를 체육 클럽에 보냈다.
아이는 즐겁게 다녔고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아이들끼리 노는 거니깐 어려울 게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키면 난 정말 무심했고 아이는 정말 용감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데도 씩씩하게 다녔고, 즐거워했다.
(만약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아이를 정말 크게 크게 칭찬해 주고 싶다. )
개학을 앞두고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전달받았다.
학교 안내장에는 가방, 물병, 체육화, 운동복, 파일, 비 옷, 야외복, 실내용 신발, 사물함 박스 이렇게 적혀있었다. 왜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종류를 사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아무튼 암호를 푸는 것처럼 하나하나 사 모았다.
개학 하루 전 날,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질문이라도 시킬까 봐 잔뜩 긴장하며 앉아 있었다.
모든 자료들은 구글 번역과 함께하며, 굉.장.히 캐주얼한 분위기의 교장선생님과 학교 관계자들을 바라보며
라고 나의 너무도 무모한 결정에 힘을 보탰다.
학교는 한국 학교와 많이 달랐다.
교과서도 없고, 숙제는 아예 없고, 수업 중 교실에서 일부 아이들은 눕거나 책상이 아닌 소파 같은 곳에 앉아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쉬는 시간엔 복도에 누워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학교 안에서 실내화 같은 신발을 신어야 하지만 아이들은 맨발로 돌아다녔다.
내가 알던 초등 교실이 아니라 놀이터 같았다.
안심이 되었다.
- by ELL-